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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3. 04:30 from 흘러가는대로


* 프랑스에 도착한지 6일째. 애인씨에게 정말 가서 정말 공부만 할거니 걱정말라고 얘기해두긴 했는데, 솔직히 정말로 공부  밖에 할 게 없을 줄은 몰랐다.(...) 6일 내내 어학원 이틀 간 거 빼곤 방 이불 속에 있었다. 흠흠 변명을 하자면, 방이 추웡ㅜ. 차라리 밖이 더 따뜻하다. 그럼 밖을 나가면 되잖아 멍청아. 라고 하신다면, 밖은 무서웡ㅜ. 내가 지금 있는 동네는 촌동네의 촌동네라, 나같이 키 크고 예쁜 동양여자가 드물다. 모두의 시선이 부담스러웡^_ㅠ!.. 은 개뿔, 그냥 무섭다. 회화할 때 단어는 얼추 나열할 수 있는데, 듣기가 잘 안 된다, 머리도 프랑스 오기 직전에 부산 피난민 마냥 민자 단발로 잘라버려서 자신감이 바닥을 기고 있다. 외국에서도 말은 좀 못해도 목소리라도 커야 무시 안 당하는데 말이 자신없다 보니 목소리가 자꾸 기어들어간다. 그래서 며칠째 방 침대에 누워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랑 카톡하다가 홈스테이 집주인인 마리앙쥬가 와서 저녁을 해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까지 와서 집벌레가 됐다. 나는 벌레가 되더라도 프랑스 벌레가 될테야!!!!! La BURLE francaise!!!!! 


그 와중에 레벨테스트 결과는 쓸데없이 좋아서, 우리 반에 한국인 나 밖에 없다.(...) 우리 반은 중국인이 점령했다. 15명 중에 8명이 중국인인 듯하다. 그 와중에 땅덩어리는 진짜 크구나 느끼는 8명 다 다른 도시에서 왔다ㅋㅋㅋㅋㅋㅋㅋ 대륙의 사이즈란! 사실 한국이었다면 "아 쟤네 중국인이구나"라고 생각했을텐데 프랑스에 오니까 "와 쟤도 동양인이다"라고 하면서 묘하게 반가워진다. 게다가 중국애들 착하다. 인사도 잘해주고 옆자리에 앉아서 눈 인사해주고 웃어주고. 오늘 묘하게 이연희를 닮은(아주 눈꼽만큼) 중국 여자애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줘서 나도 중국어로 '니하오'라고 받아쳐줬다. 중국 여자애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줬다. 고마웠엉 내일은 니 이름을 물어볼거야^^ 나는 까탈스러운 도시 여자지만 외로움 앞엔 장사 없나보다. 나도 다음 달에 새 반 편성되서 새로운 차이니즈 걸이 오면 반갑게 맞아줄거다. 미국에서 온 애들이 3명 있다. 그 중 남자애 두 명은 아랍계라서, 당연히 아랍계에서 온 줄 알았는데 미국인이라고 하니까 왠지 이상했다. 미국에서 아랍애들 보면 아 아랍계 미국인이구나 싶은데 여기서 아랍인 보면 아랍인이어야 할 거 같다. 하긴, 여기 있는 프랑스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기 전엔 다 내가 중국인인줄 안다. 이해하기로 했다. 


* 지금까지 배운 것들 >>

- 프랑스 가정에서 밥을 먹을때 주의할 것은 첫째, 밥을 먹으면서 얘기하지 않는다. 둘째, 쩝쩝거리지 않는다.

- 프랑스 가정 내에서는 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녀선 안된다.

- 프랑스 남자들은 생각만큼 잘 생기지 않았다. 잘 생긴 애 있고(난 아직 못 봤지만(...)) 못 생긴 애 있고. 그냥 여기도 사람 사는 나라다. 

- 프랑스 여자애들은 그닥 마르지 않았다. 여기가 파리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의외로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미인도 없음. 

- 생각만큼 최첨단의 패션을 선보여주는 나라는 아니다. 나 있는 그르노블은 대학 도시이고, 내가 공부하는 곳은 대학들이 모여있는 그르노블 대학촌(?) 안에 속한 한 대학에 속한 어학원이다. 우리 나라 대학생들은 잘 꾸미고 유행에 되게 민감한데, 여기 애들은 정말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오고 학교를 오기 때문에 옷을 입는거 같다. 옷을 벗고 학교를 갈 순 없잖아...? 어느 나라를 가든 아 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옷을 입는다 대충 파악할 수 있는데 여긴 아직 잘 모르겠다. 진짜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옷 입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ㅂ쇼퍼백? 보스턴백? 그런거 없음. 여학생들도 닥치고 백팩ㅇㅇ

-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 사람만큼 친절하진 않다. 근데 물어보면 대답은 잘 해준다. 소심한 사람은 와서 공부할 때 고생 좀 할거다. 


* 반 애들이랑은 인사도 하고 그러지만 아직 같이 다니는 친구는 없다. 여기서 한국인들 만나면 불어 안 늘까봐 굳이 친해져야겠다는 생각 안 하고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심심하다. 아직 혼자 돌아다니기는 주눅 들고 외롭기도 하고. 근데 내가 걱정한 것 만큼 외로움 타고 있지는 않다. 초중고 내내 학기 초를 굉장히 힘겨워했던 기억이 난다, 학기 초엔 같이 다닐 그룹이 정해지려면, 얼굴에 철판도 좀 깔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나는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인데다가 여자가 많은 환경을 항상 어려워했다. 게다가 나는 그 시절 아주 길고 얇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소외감을 느꼈었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게 된 건, 내가 혼자 시간 보내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친구가 많아야한다" 혹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거 같다. 그러다보니 남들에게 내 본모습이 아닌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학교에 와서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던 건 더 이상 하루 열두시간 이상을 닭장 같은 곳에 갇혀서 똑같은 아이들과 일 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었던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얻은 친구들만으로도 내 인생은 충분히 풍요로울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지 보고싶다. 

어쨌든 지금은 걱정과 달리 큰 외로움이나 소외감 느끼지 않고 어학원 다니고 있다. 낮에 심심해서 죽을거 같은때 빼고. 아 그래도 여기 미리 정착한 누군가가 알려주면 참 좋을거 같은 사항은 몇 가지 있다. 버스 카드는 어디서 사는지, 체류증 서류를 보낼 봉투는 어디서 사는지, 핸드폰 요금제는 어느 회사 것이 좋은지 등등. 큰 거에서부터 작은 거부터 '이거 다 아는 사람이 옆에 있음 좋겠다'라고 생각하다보면 급 외로워지지만, 이런거 하나하나 다 부딪혀보는 것도 인생 경험이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독고다시 내 인생ㅡ


* 영화 보고 싶은데 아줌마가 와이파이 너무 많이 쓰면 돈 더 나온다고 조심하라고 하셨다. 아... 영화 든 외장하드 안 갖고 온 거 진짜 후회된다. 시간 남을 때 영화 리뷰나 실컷 쓰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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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