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522

2022. 8. 5. 14:10 from 흘러가는대로 /NYC

Atul

 

가끔 깜짝 깜짝 놀란다. 내 친구지만 너무 잘생겨서. 특히 눈이 그렇다. 흰 자와 검은 자의 경계가 분명한 또렷한 눈. 나풀거리는 속눈썹이 너무 예뻐서 그대로 뽑아 내 눈에 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창문에 앉아 손으로 말아 만든 대마를 피운다. 짜파게티에 환장한다. 2, 3일에 한번씩 거실 책상에 앉아 한두시간씩 일기를 쓴다. 코로나 도중에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2년째란다. 이제 하루라도 안 쓰면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오늘 8번째 공책을 뜯었다. 내가 좋아하는 탁한 파스텔 초록색이다. 저널리즘스쿨 안에서도 손꼽히는 글 솜씨를 가진 동기였다. 학교가 시시하다고 했다. 이미 읽은 역사서들을 자꾸 과제로 내줘서.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했던 건 아니라고 했다. 대학생 때 꿈의 직장이었던 잡지사에 취직하면서 글쓰기가 직업이 됐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을 뿐. 그걸 들으면서 저런 게 프로구나 싶었다. 나는 생각만 많이 했지 살면서 실제로 책을 많이 읽은 건 31년 인생 중 1년 뿐이었다. 

 

고급진 취향과 안목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재능이다. 돈을 잔뜩 쓰지 않아도 인생의 질 좋은 것들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아툴이 그렇다. 나는 반팔 와이셔츠를 그렇게 세련되게 소화하는 남자는 처음 봤다. J는 아툴의 스타일을 두고 try too hard 한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았다. 옷 아무렇게나 대충 걸치고 다니는 미국인의 시선에선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아툴은 타고나게 세련됐다. 가구, 음악, 옷에 대한 취향이 좋다. 비싸지 않지만 확실하게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사람. 

 

가끔 아툴에게도 사랑이란 단어를 쓸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어딘가 애틋하고, 같이 숨만 쉬어도 편안한 친구. 맛있는 걸 먹여주고 싶은 친구. 봄 무렵, 같이 기숙사 방에서 스피커로 재즈음악을 틀어놓고 창문 밖의 지나가는 구름을 가만히 쳐다보곤 했었다. 정말 사랑하는 친구가 남자인데 스킨십을 하고 싶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건 이상한 감정이다. 하지만 아툴은 특출난 인간이니까. 아툴에게 느끼는 감정이 특출난 건 당연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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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