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09

2018.12.09 02:48 from 흘러가는대로

제주도에 와 있다. 쉬고 싶었지만 생각만큼의 힐링 여행은 되지 못했다. 2019년을 앞두고 싱숭생숭한 일들 뿐이다. 28살 끝무렵의 시끄러운 속내를 기록한다. 


1. 대학 동기 김작가가 몇 주 전 드디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나도 바쁘고 집이 가깝지 않아서 졸업하고 자주 보지 못했지만 이문동에 후문 쪽 그 어딘가에 항상 그녀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원래도 몇개월에 한번씩 보던터라 아직까지 김작가의 부재가 크게 실감나지 않는다. 그녀가 학부생으로서 마지막 시험을 치루던 어느 서늘한 아침, 학교 앞 CU에서 1+1으로 산 커피 하나를 건네준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도 같이 치루는 마지막 시험이 될거라는 사실을 머리론 알았지만 실감하지 못 했었다. 


둘 다 원체 욕심이 많아서 항상 각자의 일로 바쁜데다 나 역시 사람을 잘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매일 꾸준히 연락을 하던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는 둘 다 예민하고 호들갑스럽지 않은 인간들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연락을 하는 친구. 그녀는 나에게, 그녀에게도 나는 그런 친구였다(라고 나는 믿고 있다). 전선은 다르지만 하루하루 일상의 전투를 치뤄나가는 동지. 


이번에 나가면 5년 안엔 못 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을 했을 땐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었다. 그런 말들은 너무 무게를 두어 온 몸으로 들으면 속상해지기만 한다. 헤어지면서 손을 흔들때도 다음 만남은 몇년 후가 될 수 있단 사실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 담담하게. 우리의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다음을 기다린다.



2. 가장 친한 고등학교 동창은 결혼을 한다. 며칠 전 혼인신고를 했다는 보고를 들었고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수많은 전남자친구들을 탐탁치 못하게 생각했지만 "결혼만 안하면 돼"라며 크게 말리지 않았었다. 내 기분과는 별개로 누구를 만나든지 결국은 그녀의 선택이란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말고도 쓴소리하는 사람은 많았으니 나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예비 신랑은 얼굴이 선하고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다. 내 마음에 완전히 다 찬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녀의 신랑을 선택하는 건 내 몫이 아니다. 아무리 내가 사랑한다한들, 친구의 인생은 본인의 몫이고 선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뿐. 단편적으로 듣는 일화들만으로 누군가의 현실을 완벽하게 머리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분명 행복한 지점들이 있겠지. 


그럼에도 아쉬운 소리를 하자면 조금만 더 지켜보고 할 수는 없었던 거니 정도,, 근데 그마저도 혼인신고를 한 이 시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말리지 않길 잘했어"라고 후회할 정도로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



3. 재수학원 동기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이곳에 쓰지도 못할만큼 큰 일을 겪었고 꿋꿋하게 후유증을 견뎌내고 있다. 동정하진 않는다. 친구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운이 좋지 않았지만 자존심 강한 그녀 앞에선 안타까움의 ㅇ조차도 티내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 담담함과는 별개로 친구가 너무 몸을 돌보지 않아서 걱정이 많이 됐다. 몸을 잘 챙기고 있는지 계속 물어보니 오히려 조금 불편해하는 기색을 내비췄다. 나름대로 힘이 되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는데 너무 담백하려고 애쓴 나머지 의사선생님처럼 굴었나보다. 


사실 그녀에게 가장 크게 드는 감정은 경이로움이다. 어쩜 그렇게 침착하고 꿋꿋하게 상황을 견뎌내고 있는걸까. 재수학원에서 매일 간식을 나눠주던 너는 언제 어른이 됐을까. 서울 돌아가면서 천해향이라도 사줘야겠다. 말로 하는 위로가 젬병이면 선물이라도 잘해야한다.



4. 드디어 내 이야기를 하자면 직장 생활 2년 4개월 만에 최대의 crisis를 맞이했다. 4명의 팀원 중 한명의 다음주부터 휴직에 들어가고 한명이 갑작스레 퇴사했다. 퇴사한 경력 15년의 ㅅ선배는 팀장이었고 내게도 기둥 같은 분이었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퇴사할거라는 얘기를 들었고 나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기에 제일 가까웠던 내 바로 위 ㅊ선배가 이직할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예스맨인 그 선배에게 너무 많은 일이 돌아가고 있었고 회사는 업무량에 걸맞는 보상을 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ㅅ선배는 달랐다. 대부분이 5년차 이하인 이 부서에서 경력 10년이 넘어가는 두명 중 한명이었고 내가 입사하기 전에 7-8년차 중간급들이 우수수 나갔을 때도 그 선배는 남았었다. 선배가 나가면서 이 회사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의문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왜 이 회사는 5-10년차 인원이 희귀한가? 정말 그 선배들이 의리가 없어서 일을 배우자마자 더 좋은 곳으로 떠난거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사실 그 전엔 대부분의 팀원들이 선배라 해도 나보다 고작 3살 많은 팀에서 일한다는 게 너무 좋았는데 정말 철없는 사고방식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미래에 회사의 핵심인력이 될 허리급 사원들을 묶어두지 못하는 회사인거다.


사람들이 자꾸 나가니 내가 심란해지는 이유는 (1) 적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이 직장이 매력적이었던 아주 큰 이유가 동료들이 너무 좋아서였음 (2) 나 홀로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는 기분 (3) 나는 과연 이직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나? 라는 질문에 대한 자신없음


그리고 이 회사에 대한 의문보다 당장 내 앞에 놓인 숙제는 ㅅ선배의 업무를 내가 메인으로 맡게 된 것이다. 업계 누구나 들어도 웃을 일이다. 이 정도 연차에선 서브로 그 일을 맡는 것도 흔치 않은 케이스다. 당장 금요일에 내가 원래 맡던 업무와 ㅅ선배에게 받은 업무가 한꺼번에 터져서 울면서 보고서를 써냈다. 너무 들여다보고 있는 영역이 많다보니 무언가 터지면 수습하기 급할뿐 이슈에 선재적으로 대응한단 게 아예 불가능하다. 근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나니 잘하고 싶은 욕심이 누그러진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처음 ㅅ선배의 통보를 받은 날보다는 많이 진정된 상태다. 심지어 긍정적인 생각도 든다. 사실 지금까지 막내라는 이유로 일을 설렁설렁하지 않았나 싶다. 내 첫 사수이자 나보다 입사 2년이 앞섰던 ㅈ선배는 2년전부터 팀의 2위로 업무를 해왔는데, 이 팀에 합류한 시기로는 나와 고작 두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 선배가 팀에서 일을 시작했을때만큼 내 연차가 쌓였을때도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비가시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나는 못하겠어요 라고 땡깡 부릴 수 있었고 어리광 부릴 수도 있었지만 내 위의 선배 둘은 그렇게도 못했다. 스스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단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위 (3) 질문이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이리라. 


지구가 이렇게 온 힘을 모아 내 승진(?)을 앞당긴 이상, 떠날때 떠나더라도 나도 한번은 온몸을 던져서 일 을 해보려고 한다. 그런면에선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게 내게도 다행일수도 있다. 기회는 요령 부리지 않고 열심히 몸을 굴린 사람들에게만 오더라. 2019년은 힘들지만 새로운 도전이 넘치는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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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8

2018.09.18 01:28 from 흘러가는대로

1. 블로그에 업로드가 줄어든 시기와 트위터를 열심히 한 된 시기가 묘하게 겹친다. 순간의 욱하는 감정과 지나가는 생각을 기록한 단문들이 마음을 쏟아내던 장문을 대체하게 된 걸까. 요즘 하루하루의 마감을 해치우는 데 급급해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지 않게 됐다고 느끼는 것에도 그 영향이 있을까. 


짧은 실시간의 문장들은 몇 줄이 쌓여도 장문만큼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2. 듣고 싶은 음악이 없다. 귀가 가는 음악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는 곡도 없다. 음악감상이 취미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서른도 안 돼서 젊은 날을 반추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정말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의무가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얼마나 보고 듣고 느끼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프로의식이 떨어진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음.


3. 퇴근 후를 기다리게 만드는 친구가 생겼다. 우리 집에서 30분. 엎어져서 코앞이라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최근 몇년간 사귄 친구 중엔 가장 가까운 거리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각각 한 번, 가장 친한 친구와 이별하면서 우정에 대한 미련을 놓아버렸었다. 대학교 입학 후에도 친구를 사귀기 위한 노력을 멈추었고 무리에 들기 위한 처절함도 졸업했다. 


그럼에도 인연이라는 건 정말 있는지, 타이밍과 마음이 맞아서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은 매년 한두명씩 생겼었다. 매일 붙어있거나 매일 연락하는 종류의 친구들. 동성인데도 혼자 마음속으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이 깃드는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 앞에선 예쁘게 꾸미고 싶고, 맛있는 걸 먹여주고 싶고, 꿈을 나누고 싶고, 어제와 오늘을 얘기하고 싶었다. 나의 가장 추한 부분까지도 고백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여전히 관계가 영원하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대신 그 친구들과 상황이 맞고 마음의 크기가 맞는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 사정이 생겨서 바빠지거나 더 이상 공통분모의 화제거리가 없어져서 멀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붙어 있는 그 시간만이라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게 서로가 맞닿은 인연을 충실히 다 하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그런 친구들이 항상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생겼을 땐 더 소중히 하고 서로가 좋을때 더 많이 봐야 해. 그래서 요즘 퇴근이 기다려지고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가장 예쁜 모습으로 너와 즐거운 걸 하는 그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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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1

2018.07.21 01:40 from 흘러가는대로

일하다가 간혹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았을 거 같단 얘기를 듣는다. 의아하다. 항상 정반대라고 생각했는데. 새 학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여 무리짓는 그 시기가 항상 버거웠다. 나는 어느 면으로 보나 특별히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고 오히려 살짝 차가운 인상 때문에 다들 선뜻 말을 걸지 않았다. 1년 동안 혼자 밥을 먹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와는 짝을 지어야 하는 그 시기가 매 순간 어려웠다. 자석처럼 아이들을 끌어모으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빛이 나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순전히 친구들 옆에 있기 위해 무리의 바보를 자처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예쁘지도 않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고 딱히 재미있지도 않아서 모두에게 무해한 존재로 무리에 붙어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혼자여도 괜찮다"는 걸 깨우치면서 어른이 되었다. 지금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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