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교정 수술 이후 ¡절대 안정!의 시간을 가진지 5일. 토실하게 오른 볼살이 증명해주듯 몸은 충분한 안정을 취했을지 모르나 수면과 식사로만 채웠던 지난 며칠을 내게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휴식기'는 언제나 나에게 그 다음 단계에 버텨나갈 힘을 충전시켜주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너무 피폐하게 만들어 버린다. 쉬고 있는 몸으로 인해 잉여로워진 에너지가 모두 뇌로 쏠려버리는 탓인지, 생각의 흐름이 건설적인 단계를 넘어서 반성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자기혐오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대기를 한두달이 지나면 개강을 하고, 드디어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스케쥴을 짜지만 결국 학기의 반도 지나지 않아 주저앉는 이 반복된 패턴이 내 지난 5학기 생활의 한 줄 요약이라 하겠다. 이랬으니 바쁨에도 불구하고 남은게 없는 것인가- 말 그대로 완.전.연.소. 너무 연소해서 남은 것이 없다니! 신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룰 정도로 에너지를 동등하게 배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바쁘면 정신과 감성의 발전이 지나치게 더뎌지고, 몸이 여유로워지면 정신은 풀가동하다 못해 폭주해대는 탓에 나는 정말 쉴틈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유롭게 스스로를 채우자는 글을 썼던 게 불과 한 달 전. 또 스스로의 잉여로움에 잔뜩 겁먹어서 침대에 누워 다음 학기를 구상하다가 또 제어를 걸었다. 도무지 빈 칸이라고는 찾을 수 않는 일과표를 머리 속으로 그리면서 또 이번 학기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 때 떠올랐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정하고 그것만을 파야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의 얼굴이. 그 얼굴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었으나 일상의 바쁨을 따라가는데 지쳐 잊고 있었던 포인트. '바쁘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의 눈을 덮어주며 외면하며 꼭 숨겨두었던 계획을 그가 너무도 쉽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내가 외면해왔던 질문(넌 제대로 하고 있니. 단순히 24시간이 벅차서 헐떡대는게 네가 정말 원하던 대학 생활이니)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당황스러웠고 부끄러웠다. 그에게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목적 없이 꾸역꾸역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2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을 달랐다. 빈틈없이 완벽한 계획을 짜고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그 스케쥴을 소화해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또 다시 엔돌핀이 솟았다.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그 하루가 모여 일년 뒤의 나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그거면 되는거 아닌가.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사람이 되는게 중요한 거라면 나야말로 제대로 살고 있는거 아닌가. 싶다가도. 학교, 학원, 공부와 운동으로 가득 찬 스케쥴에서는 책을 읽을 시간, 영화를 볼 시간, 한마디로 혼자 지식과 감각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시간은 없었다. 지난 봄의 슬럼프는 감각을 충분히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진단했건만! 그렇다고 그러한 시간을 마치 헬스장 가는 시간 정해두듯 '토요일 낮 12시부터 6시까지' 의 방식으로 정해두고 싶진 않았다. 너무.. 안 멋있잖아?

그래서 결국은 원점이다.

두 세계가 충돌하는 느낌. 보이는 것(몸, 학교, 학원)과 안 보이는 것(책, 영화, 글) 

 

어서 오늘밤 이 얘기를 너와 나누고 싶다.

오늘의 혼란에 대해 너는 뭐라고 말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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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