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장은 죽지 않는다.

 

* 클래식의 의미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트렌디한 산업 중 하나인 대중가요에도 '클래식'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연한 기회로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노래에 감동할 때, 좋은 리메이크곡들을 접할 때(게다가 심지어 직접 찾아본 원곡 버전 조차 좋을 때), 그리고 노장들의 목소리가 시대에 맞는 사운드와 만나서 부활할 때. 마지막 케이스로 성공적으로 돌아온 것이 조용필옹이었다. (개인적으로 조용필의 앨범은 나에겐 살짝 아쉬웠지만. 뭐랄까 조용필옹의 쀨과 사운드의 싱크로율이 85% 정도 밖에 완성되지 않은 느낌..? 물론 그 정도 싱크로율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최근 돌아온 노장들 중에서 갑을 꼽으라면 역시 최백호- 조용필 형님만큼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그의 앨범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평을 들었고 대중음악상 후보에도 거론되었다. 작년 겨울 발매된<다시 길 위에서>는 최백호가 12년 동안 외출하느라 비워두었던 빈 의자에 그가 고스란히 다시 앉은 느낌을 준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화려한 부활을 목적으로 하는 컴백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온전한 자신을 다시 보여주는 기회로서의 컴백. 특유의 쓸쓸한 목소리에서 노장의 고집이 느껴져서 좋았다. 기교가 들어가지도, 힘이 들어가지도 않은 그 목소리에는 시간과 그에 상응하는 인생이 담겨져 있었다. 그렇게 최백호의 노래는 가수의 연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외로움과 고민이 켭켭이 쌓여 나온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지니는데, 21세기의 깔끔한 사운드와 만나 더욱 빛을 낸다.

 

그리고 처음 최백호를 접하게 해준 곡, 박주원 <FIesta> 앨범의 '방랑자'. 사실 난 앨범 속의 노래들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 이 곡이 가장 좋다. 가사와 목소리, 기타소리 심지어 목소리까지 최백호 특유의 우직한 쓸쓸함이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그야말로 '최백호만이 부를 수 있는 곡'이 되었다. 진정한 프로의 작업에선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만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힘'이 들어갔음을 잔뜩 어필하는 종류의 작업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우직함이 한해 두해 쌓이면 연륜이 되고 그렇게 쌓이고 쌓여 확고해진 작가의 색과 정신이 작품에 온전히 드러나 작품만으로도 작가가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는 스타일대로 작업을 하지 않아도 본인의 신념을 따르는 사람은 타인에게 진정한 의미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자신을 보여주려고 구차하게 발버둥치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거 같아서 나는 최백호의 노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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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으르렁(Growl)' MV

2013. 8. 1. 03:31 from 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설마 엑소에 빠질 줄을 몰랐다. 내 나이 23살. 이제 아이돌 이름 따라가기도 벅찰 나이인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쨋든 좋은건 좋으거니까^,~ (비록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는 가급적이면 엠피에 안 넣으려는 snob그스일지라도ㅋㅎㅋㅎ) 남자 아이돌 뮤비에 이 정도로 꽂힌 건 블락비 난리나 이후로 첨인듯ㅇ_ㅇ 음원은 안 나와서 비쥬얼 없이 들어보진 않았는데, 최근 들은 아이돌 노래 중에선 갑이라고 조심스레주장해봅ㄴㅣㄷ....노래도 노래고 사실은 안무랑 뮤비에 완전 꽂혀버렸는데 노래+안무+뮤비 삼박자가 너무 세련되게 잘 어울린다. 가사는 <<<<<나를 자극하지마 으르렁ヽ(`Д´)ノ >>>>> 인데 비트나 사운드는 쟤네가 입은 양복만큼 sleek해....... 섹시하게 짗궂은 꽃미남 늑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핡핡핡핡핡핡핡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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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르렁(Growl) - EXO

2013. 8. 1. 03:23 from 듣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설마 엑소에 빠질 줄을 몰랐다. 내 나이 23살. 이제 아이돌 이름 따라가기도 벅찰 나이인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쨋든 좋은건 좋으거니까^,~ (비록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는 가급적이면 엠피에 안 넣으려는 snob그스일지라도ㅋㅎㅋㅎ) 남자 아이돌 뮤비에 이 정도로 꽂힌 건 블락비 난리나 이후로 첨인듯ㅇ_ㅇ 음원은 안 나와서 비쥬얼 없이 들어보진 않았는데, 최근 들은 아이돌 노래 중에선 조심스레 갑이라고 주장해봅ㄴㅣㄷ.... 가사는 <<<<<나를 자극하지마 으르렁ヽ(`Д´)ノ >>>>> 인데 비트나 사운드는 쟤네가 입은 양복만큼 sleek해..... 섹시하게 짗궂은 꽃미남 늑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핡핡핡핡핡핡

 

*이쯤되니 요즘 아이돌 그룹이야말로 노래, 멤버, 안무, 비쥬얼 모든 요소기 완벽하게만 쿵짝 굴러간다면 종합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뮤비에서 보여지는 것만 해도, 멤버들의 수려한//ㅅ// 외모와 스타일링(비쥬얼), 깔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뮤직비디오(비쥬얼), 최고의 전문가들의 모여서 만들었을 음악(사운드), 안무(비쥬얼_안무가 진짜 쩔) 결국은 비즈니스겠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대중음악과 아이돌 산업도 하나의 예술로 보자면 아이돌 가수들을 진짜 '가수'로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이돌 그룹은 퍼포먼스로 표현할 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이돌 그룹 뿐이지만 그들의 모든 동작 하나하나는 계획된 것이다. 비쥬얼과 사운드를 결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그들이 알맞게 구현해낸다.

순수히 자신의 몸, 성대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사운드로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보컬리스트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하던 시절. 가수는 노래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사람. 라디오와 인쇄 매체가 주. 텔레비전 그러나 가수의 얼굴을 비추는 것이 고작인. 이 때에는 가수가 노래를 잘하는게 것이 맞았다.

디자인, 의류 사람들의 눈을 자극하는 분야들의 성장.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텔레비전. 더 나아가 그러한 텔레비전의 기술도 발달. 귀 외에도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은 눈부시게 발전. 그 시대에는 그래서 목을 쓰는 가수만이 있엇기에 가수를 세분화할 필요가 없었으나 노래는 ㅂ주수적으로 눈으로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가수가 생겨난 지금은 확셜히 보컬리스트와 아이돌 가수의 구분은 필요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가창력을 요구할 수 있나

그들은 보컬리스트와 같은 가수가 아니다. 그들은 애초에 이미 만들어진 곡을 노래할 뿐. 사람들이 아이돌의 형편 없는 가창력에 돌을 던지는 이유는 아이돌도 가수라는 인식이 있어서일 것. 하지만 아이돌은 성대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느냐로 평가받는 대상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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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교정 수술 이후 ¡절대 안정!의 시간을 가진지 5일. 토실하게 오른 볼살이 증명해주듯 몸은 충분한 안정을 취했을지 모르나 수면과 식사로만 채웠던 지난 며칠을 내게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휴식기'는 언제나 나에게 그 다음 단계에 버텨나갈 힘을 충전시켜주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너무 피폐하게 만들어 버린다. 쉬고 있는 몸으로 인해 잉여로워진 에너지가 모두 뇌로 쏠려버리는 탓인지, 생각의 흐름이 건설적인 단계를 넘어서 반성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자기혐오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대기를 한두달이 지나면 개강을 하고, 드디어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스케쥴을 짜지만 결국 학기의 반도 지나지 않아 주저앉는 이 반복된 패턴이 내 지난 5학기 생활의 한 줄 요약이라 하겠다. 이랬으니 바쁨에도 불구하고 남은게 없는 것인가- 말 그대로 완.전.연.소. 너무 연소해서 남은 것이 없다니! 신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룰 정도로 에너지를 동등하게 배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바쁘면 정신과 감성의 발전이 지나치게 더뎌지고, 몸이 여유로워지면 정신은 풀가동하다 못해 폭주해대는 탓에 나는 정말 쉴틈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유롭게 스스로를 채우자는 글을 썼던 게 불과 한 달 전. 또 스스로의 잉여로움에 잔뜩 겁먹어서 침대에 누워 다음 학기를 구상하다가 또 제어를 걸었다. 도무지 빈 칸이라고는 찾을 수 않는 일과표를 머리 속으로 그리면서 또 이번 학기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 때 떠올랐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정하고 그것만을 파야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의 얼굴이. 그 얼굴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었으나 일상의 바쁨을 따라가는데 지쳐 잊고 있었던 포인트. '바쁘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의 눈을 덮어주며 외면하며 꼭 숨겨두었던 계획을 그가 너무도 쉽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내가 외면해왔던 질문(넌 제대로 하고 있니. 단순히 24시간이 벅차서 헐떡대는게 네가 정말 원하던 대학 생활이니)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당황스러웠고 부끄러웠다. 그에게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목적 없이 꾸역꾸역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2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을 달랐다. 빈틈없이 완벽한 계획을 짜고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그 스케쥴을 소화해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또 다시 엔돌핀이 솟았다.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그 하루가 모여 일년 뒤의 나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그거면 되는거 아닌가.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사람이 되는게 중요한 거라면 나야말로 제대로 살고 있는거 아닌가. 싶다가도. 학교, 학원, 공부와 운동으로 가득 찬 스케쥴에서는 책을 읽을 시간, 영화를 볼 시간, 한마디로 혼자 지식과 감각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시간은 없었다. 지난 봄의 슬럼프는 감각을 충분히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진단했건만! 그렇다고 그러한 시간을 마치 헬스장 가는 시간 정해두듯 '토요일 낮 12시부터 6시까지' 의 방식으로 정해두고 싶진 않았다. 너무.. 안 멋있잖아?

그래서 결국은 원점이다.

두 세계가 충돌하는 느낌. 보이는 것(몸, 학교, 학원)과 안 보이는 것(책, 영화, 글) 

 

어서 오늘밤 이 얘기를 너와 나누고 싶다.

오늘의 혼란에 대해 너는 뭐라고 말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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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들 I Sognatori (2003)

2013. 7. 21. 22:59 from 보고

 

 

 

 

 

 

 

 

이런 아지트

 

 

코 큰 남자도 섹시할 수 있구나

 

 

머리에 대걸레를 얹어놔도 여신

 

 

 

 

 

이렇게 멋있게 담배피면서 계란 후라이 해줄 수 있는 남자라면 내 부엌에서 담배 펴도 됨ㅋㅎㅋ

 

미소년이 섹시하게 꿀을 먹는다

 

세 사람 사이의 긴장감. 테오는 이사벨을 보고, 이사벨은 매튜를 보고 매튜는 테오를 본다

 

벨벳 초록색 자켓과 배경의 초록색 병, 타일 벽의 연두색, 소품 군데군데의 노란색이 모두 계산된 걸까.

나도 저렇게 손가락 쫙펴고 담배 펴보고 싶다

 

금발, 핑크색이 도는 도톰한 입술과 민트색 벽 색깔 조화가 너무 예쁘다

 

 

 

 

 

 

 

 

* 배우들에 대한 인상 :  [영화 초반]에바 그린 여신. -> [중반]마이클 피트(블론디)은 입술이 진짜 예쁘네 -> [끝나갈때쯤]루이스 가렐(갈색머리) 핡핡

 

* 본격 흡연 조장 영화  : 등장인물 모두가 하나같이 아름답고 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한결같이 아름답게 담배를 피워댄다.

 

* 너무나 '프랑스'스러워서 감독이 프랑스인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역시나 감독은 이탈리아인) 영화 비쥬얼과 캐릭터가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가지는 '프랑스'라는 이미지에 너무 완벽하게 부합해서 오히려 프랑스 영화스럽지 않았다.

 

* 이사벨과 테오 : 단순히 근친이라는 다분히 자극적이고 성적인 단어로 치부하기에 그들의 관계에물리적인 무언가를 뛰어넘는 화학 작용이 있다. 일란성 쌍둥이로서 세상에 발을 딛기 전부터 둘은 함께였고 그 이후로도 둘은 함께 온 세상을 자기 발 아래에 두며 비웃으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그들은 남매였지만 동시에 그 세계 안에서는 서로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테오는 매튜에게 이사벨과 자신이 뇌로 연결된 샴쌍둥이라는 말을 한다. 둘은 두 사람의 객체로 분리되어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을 각자 부여받았지만 애초에 하나의 영혼, 하나의 몸이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둘이 함께 하는 것, 심지어 알몸으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조차 그들은 의식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연히 다른 두 사람이지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살기를 20년, 남매가 쌓아올린 세계에 매튜가 문을 두드린다. 결국 매튜는 그들의 세계에 발을 담그는 데 그칠뿐 결국 완전히 입성하지 못하지만, 남매의 세계는 매튜가 만들어놓은 균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 매튜와 이사벨 : 둘의 관계를 '사랑'이라 보기엔 어렵다고 느꼈다. 우선 매튜가 이사벨에게 느낀 것은 소유욕에 가깝다. 테오의 벌칙에 의해 치뤄진 첫 섹스 이후로 이사벨에 매튜의 감정 표현은 과감해진다. 한편으로 이사벨에 대한 매튜의 집착은 이사벨과의 관계를 통해 남매의 세계에 더 깊숙히 들어가고자한 욕망이 발현된게 아닌가 싶다. 어쨋든 영화 초반에 매튜가 매료된 것은 이사벨이 아니라 이사벨-테오 세트의 cool함이었으니까.하지만 이사벨과의 육체적 관계만으로 매튜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 셋이 손을 잡고 신나게 루브르를 뛰어다니다가도 남매는 관성적으로 둘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소외감으로 독해진(?) 매튜가 슬슬 이사벨을 독차지함으로써 남매 분리시키고 그들의 세계를 와해시키고자 시도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장면 이후인 듯하다.

매튜에 대한 이사벨의 감정도 사랑은 아니었다. 물론 이사벨에게 매튜는 특별한 남자였을 것이다. 첫 경험 상대였고 테오 외에 자신의 인생에 들어온 첫 번째 남였으니까. 애정, 호기심 그리고 모든 여자가 자신의 첫번째 남자에게 부여하는 특별함. 테오는 그 정도 의미를 지닌 존재였을 것이다. 매튜와 이사벨이 테오의 벌칙에 의해 첫 경험를 치룬뒤 이사벨이 우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섹스는 유일하게 이사벨과 테오가 공유하지 못하는 영역이었고 그래서 이사벨에게 그 사건 단순히 '첫번째 섹스'가 아니라 테오와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예상이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우며 다분히 성적인 신호와 몸짓을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그녀도 테오의 품을 벗어나 여자로 홀로서야 하는 섹스에 있어서만은 한 사람의 여자일 뿐이였음을 그 장면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테오와 구축한 세계를 벗어난 그녀에게서 '한 세계를 지배하는 여자'가 아닌 '평범한 소녀'를 투영해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쨋든, 다시 매튜와의 얘기로 돌아와서 이사벨은 그에게 애정은 있었겠지만 테오와의 세계를 버릴 수 있을만큼의 존재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오히려 매튜에게 느끼는 감정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테오에게 느끼는 감정을 더욱 확고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둘만의 세계에 있을 때에는 너무도 당연해 의식할 수 없었던 감정은, 외부자가 들어왔을때 더욱 객관적으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테오와 매튜 : 개인적으로 이 둘의 관계가 그려진 방식은 좀 아쉬웠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자면 테오와 매튜는 노골적인 대치 관계를 형성해야 말이 된다. 어쨋든 둘 사이는 병적인 시스터 콤플렉스의 오빠와 그 여동생의 연인 아닌가. 그래도 이사벨과 매튜는 여성과 남성으로 관계를 정의하기 쉬운 반면에 이 둘은 동성이기에 더 애매모호하다. 테오는 전반적으로는 매튜에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셋이 잡히는 장면에서는 이사벨과 매튜를 향해 약간의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낸다. 매튜가 자신과 여동생이 구축한 세계에 쉽게 침범하는 것을 경계했던 것은 확실한 사실이면서도, 그의 불만 가득한 시선 이사벨을 두고 매튜를 질투한 것인지, 매튜를 두고 이사벨을 질투한 것인지 애매모호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둘은 여러 공통 주제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논쟁을 한다. 이것을 단순히 대립 구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사벨과 매튜 사이에는 이러한 정치적, 문화적으로 깊은 대화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정신적으로나 적 차원으론 이사벨-매튜 커플보다 이 둘이 더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든다.

더욱 모호한 것은 매튜에 대한 테오의 감정이다. 욕실에서 테오는 매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우리가 널 사랑해'도  '나도 널 사랑해'가 아닌, '나는 널 사랑해'라는 말을 요구한다. 그는 이사벨에게도 사랑받고 싶어하고 테오에게도 독립적으로 사랑받고 싶어한다. 매튜의 감정을 통해 세 사람이 완벽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이걸 보면 매튜가 사랑했던 것은 이사벨이 아니라 이사벨과 테오 두 남매,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세계가 아니었나 싶다. 매튜는 이사벨과는 육체적인 사랑을 테오와는 정신적인 사랑을 지향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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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look around
And when I've found someone
Who laughs like you
I'll know this love
I'm dreaming of
Won't be the old love
I always knew

I know somewhere
Love must fill the air
With sweetness just as rare
As the flower
That you gave me to wear

 

*낮잠같은 노래

멍함과 권태로움 약간의 외로움이 있는 오후엔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비트 있는 노래들도 좋지만, 공백을 여백으로 만들어주는 노래들도 좋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Posted by 극세사 스극 :

 I love you.

 

가진 건 없지만 이별, 기다림과 사랑이 있는 안나와의 삶

물질적으로는 평범하지만 사랑 받지 못하는 알리스와의 삶

수영장이 딸린 큰 집을 가지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완전히 비어있는 진과의 삶

 

자신의 삶이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본 9살의 니모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안나와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삶이 아닌 다른 삶들에서

안나는 어느 오후 니모의 차를 스쳐간 수많은 운전자들 중 하나

혹은 역에서 서로를 알아보며 인사를 하지만 이미 각자의 가정과 아이가 있는 중년의 남성과 여성일 뿐이었다.

힌 인생에서는 서로가 아니면 평생에 의미를 지닌 것은 없다는 식의 사랑을 하면서

어떤 인생에서는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또 다른 인생에서는 길 가다가 서로를 알아보았을때 어색하게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된다.

정말 meant to be인 사랑은 정해진건가

 

영화는 어떤 삶이 더 좋았고 나빳는지 말해주지 않지만 니모가 살면서 가장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상대는 안나 뿐이었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나는 만났을까

아님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삶에선 안나를 찾기엔 이미 틀린걸까

 

 

 

 

 

* best scene

 

 

 

 

 

I want you

forever

whatever happens

There is no life with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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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8. 00:16 from 흘러가는대로

 

 

*

저번 집이 햇살이 비칠 때 빛이 나는 집이었다면 이번 새 집은 비가 올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올해는 끈적끈적한 장마가 싫지만은 않다.

독서를 하기에도 음악을 듣기에도 쨍쨍한 날보다 비오는 날이 훨씬 좋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비 오는 날에는 온갖 음악을 다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눈 앞의 풍경이 어둡고 희미할수록 귀의 감각에 집중하는게 더 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나는 밤에 산책을 나갈 땐 꼭 안경을 벗은 채로 음악을 들었나보다.

 

*

밝은 날엔 햇빛이 막을 틈도 없이 밀고 들어온다.

이런 날에 왜 집에 있냐며 날 재촉하는 느낌

하지만 강렬한 만큼 몇 시간 머물지 않고 한바탕 강렬한 빨강을 쏟은 뒤 순식간에 물러나 버린다.

 

비오는 날의 빛은 은은하다.

아무도 모르는 새에 우중충한 빛으로 하늘을 물들여 하루를 열고 은근히 은근히 빛을 뿜다가

하루가 끝나간다는 신호도 없이 까만 밤에게 조용히 자리를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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