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브랜드를 좋아하게 된 개인적인 이야기


유재하와 맥도날드


아빠의 공부 때문에 온가족이 미국에 살던 시절우리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주말을 비워 옆 주에 살던 삼촌에게 놀러 가곤 했었다. 4시간 동안 이어지는 자동차 여행 내내 배경음악은 아빠의 소관이었는데그 덕에 또래 아이들이 한국에서 핑클과 신화에 눈을 뜨는 동안 나는 유재하와 김광석이문세김건모를 먼저 접했다나는 유재하를 좋아해서 종종 dj파파에게 직접 곡 신청을 했었다하지만 제아무리 유재하라도 주구장창 들으면 질릴 수 밖에 없는데음악도 질리고 잠도 너무 자서 하품조차 안 나올 때쯤 고속도로 허허벌판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하던 것이 바로 맥도날드였다.

 

미국에 가기 전아빠는 주말을 반납하는 직장인이었고 엄마는 대학원생으로 심지어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서 네 가족끼리 외식은 커녕 한 자리에 모여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미국에서 엄마는 전업주부가 됐지만 서툰 영어로 대학원 수업을 따라가야 했던 아빠는 여전히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네 명이 4시간 동안이나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게다가 함께 식사하는(심지어 밥을 먹으면 장난감을 주는 식당에서!) 이 여정이 나에게 가족애를 상징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사실 그 시절 맥도날드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는 일화들이 있는 건 아니다엄마 아빠랑 맥도날드에서 해피밀을 먹는 것 그 자체가 나한텐 하나의 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나에게 미국 시절은 대체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후일담을 들어보니 엄마와 아빠는 미국에 살던 시절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우리가 간 지 몇 달이 안 돼서 IMF가 터졌고 아빠는 급격하게 줄어든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규정을 어겨가며 틈틈이 돈을 벌었다한국에서 시댁을 모시면서도 대학원 장학금을 딸 정도로 공부 욕심이 많던 엄마는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3년 동안이나 휴학을 해야 했다하지만 우리 모두 연고도 없는 땅에서 똘똘 뭉쳐 살았던 그 시절이 없었다면 우리가족이 이렇게 끈끈해질 수 없었다는 걸 안다. 3년 뒤 귀국하자마자 아빠는 다시 주말도 없는 회사원이 됐고 엄마도 다시 공부를 시작한데다가 우리 자매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 각자 앞가림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동생이 대학교에 입학했던 해인 2012년의 1월 1일 새벽, 우리 넷은 심야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야식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들렀다새해 첫 식사를 맥도날드에서 한 셈인데넷이 맥도날드에서 식사를 한 건 귀국한 이후로 처음이었으니 12년 만이었다나는 해피밀 대신 양파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아빠는 여전히 치즈버거세트에 디저트를 추가했고 엄마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감자튀김을 한 군데로 모았다우리 가족은 이제 더 좋은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다하지만 내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우리만이 기억하는 시간을 끄집어낼 수 있는 진정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단 하나, 맥도날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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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오늘도 저녁 식탁에서 홈스테이 가족들과 아주 흥미로운 대화를 했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자녀가 여섯이신데, 다들 장성하고 집을 떠나서 집에 빈 방이 많다. 그래서 우리 집엔 특이하게도 하숙생이 셋이나 되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명은 미국에서 온 대학생 여자애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카타르 남자애다. 나이대 비슷한 한국 여자애, 미국 여자애, 아랍계 남자애가  한 집에 살고 거의 매일 저녁 밥을 먹는거다. 다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서 어떤 주제든 대화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는데, 특히 IS가 전세계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 이 시기에 보수적인 종교 성향을 가진 카타르 남자애는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다.(기회가 되면 따로 얘기하도록 하겠다) 기본 한 시간, 길면 두 시간까지 이어지는 밥성머리 대화는 "우리 나라는 ~한데, 프랑스는 어떠하냐?"의 형식으로 자주 시작한다. 기록하진 않았지만 이 집에 있었던 5개월 동안 엄청나게 다양한 주제들이 식탁에 올라오곤 했었는데, 어제의 주제는 특히 재미있어 기록해보고자 한다.


프랑스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의 아랫도리에 크게 상관을 안한단 것은 한국에도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무리 문화가 다르다곤 하지만, 성추문에 휘말린 정치거물들이 사퇴까지 하는 나라의 국민인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정서였다. 하지만 가장 최근 역임한 두 대통령, 사르코지와 올랭드의 스캔들에는 국민들도 어느 정도 반응하는 듯 했고, 이게 직접적인 영향이 되진 않았지만 하필 이 두 대통령은 엄청나게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모든 것에 대해 트집을 잡으려고 하고 맘에 안 드는 점이 있으면 시위를 하고 보는 프랑스인들의 국민성을 감안하고서라도 사르코지와 올랭드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태도는 과하다 싶었다. 특히 사치와 여성편력으로 점철된 사생활을 보여준 사르코지는 진짜 여기서 장난 취급 당한다. 심지어 이젠 대통령도 아닌데 여전히 농담 따먹기의 대상이다. 오히려 일상 생활에서 현 대통령인 올랭드보다도 사르코지의 이름을 더 많이 듣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역사 시간 中 "~왕은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어요. 복장만 봐도 알 수 있죠. 사르코지처럼요. 우리 사르코지횽은 왕같은 대통령이었죠^^" 그냥 졸라 자연스럽다. 


정치인들의 사생활에 관대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이 왜 사르코지의 사생활에 대해선 이토록 비판적일까? 이 주제에서 사르코지와 대척점에 있는 예시가 바로 프랑소와 미떼랑 대통령이다. 1981-1995년 연임으로 무려 14년 동안 프랑스를 지휘한 사회당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이미 65세였던 그는 국민들에겐 '아버지'로 기억되는,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하나다. 그런 그에게 퇴임을 코 앞에 둔 1994년 한 유명 타블로이드지가 그에게 딸뻘의 여자와의 외도로 낳은 딸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당시 미떼랑은 지목된 대학생 뻘의 젊은 여자에 대해 '내 딸이 맞다' 라고 쿨하게 인정해버리면서 그의 두집살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


Mazarine Pingeot(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미떼랑의 딸. 


그렇다면 대통령 재임 중에 영부인과 이혼하고 인기 연예인 카를라 브루니와 재혼한 사르코지와 미떼랑이 다른 점은 뭘까. 오히려 사르코지는 이혼하고 결혼했으니 두집살림한 미떼랑보단 윤리적으로 떳떳하다고 봐야하는거 아닌가. 홈스테이 가족들에 의하면 우선 그새 프랑스인들의 가치관이 변한 것이 첫번째 이유란다. 타블로이드가 사진을 뿌리기 이전에도 그에게 숨겨진 딸이 있음을 아는 기자들이 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기사를 퍼뜨리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팔리지 않을 기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러니 프랑스 유권자들의 정치인들의 사생활과 정치적 역량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경향은 거짓말이 아닌 셈이다. 대통령도 결국은 인간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일 뿐이며, 그런거에 관심 가질 시간에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 프랑스에 대한 비전 등을 살펴보는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거다. 물론 미떼랑도 비판을 받긴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함구할 것을 요구받은 어린 딸과 그의 본처인 다니엘 미떼랑을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는 명목이다. 특히 영부인이었던 다니엘 미떼랑은 사회적 활동과 기품으로 굉장히 존경을 많이 받았으며, 프랑스 영부인의 표본으로 그려지는 인물이었다. 우리에겐 육영수 여사같은..? 


Gerard 아저씨에 의하면 대통령의 숨겨진 딸은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긴 했지만 그녀의 존재가 대통령의 명예를 더럽히진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한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었고(처음 만났을 때 여자는 18살, 미떼랑은 45살이었다함;;;), 여자가 어느 순간 아이를 원해서 둘은 아이를 낳았으며 미떼랑은 이쪽 가족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금전적 지원을 했음은 물론 어린 딸이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심지어 어린 소녀와 잡고 파리 거리를 거닐기도 했고(모두가 손녀딸이려니 했다 함), 최측근들에게 딸이라는 언급은 하지 않은채 소개도 시켜줬다는 얘기가 있다;; 그는 퇴임 다음 해인 1996년 죽는데, 장례식에선 본처와 아들 둘, 그리고 작은 댁(?)과 그 딸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당시 이 대통령의 두집살림 얘기는 흠집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로맨틱한 스토리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왼쪽이 퍼스트 레이디 다니엘 미떼랑&아들, 오른쪽이 딸&내연녀였던 Anne Pingeot


이 모든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미떼랑이 사르코지와 달리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은 또다른 이유는 적어도 십년이 넘는 재임 기간 동안엔 이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했고 조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블로이드지에 사진이 실리기 전, 미떼랑은 지인을 시켜 기자를 매수하려고 했다 한다) 우리로선 기자를 매수하려고 했단 것도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를 사르코지와 비교하면 또 프랑스인들의 입장에선 그렇지도 않다. 사르코지의 별명은 mr. blingbling이다. 과시적이고 재임기간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려 했으며,본인이 돈을 좋아하고 사치를 좋아하고 명품을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것을 전혀 숨기지 않아하는, 그러면서 맨날 말은 삐꺼뻔쩍하게 하는 한심한 대통령. 임기 첫 날부터 세금으로 사치 부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의 과시적인 성향은 점점 프랑스인들의 반감을 샀고 임기 후 5개월 째에 터진 카를라 부르니 사건은 결정적으로 그의 지지율을 실추시켰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열세살 연하의 연예인과 사귄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대통령이 연예인과 밀회를 벌인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사르코지의 문제는 대통령임에도 불구 카를라 부르니와의 로맨스를 너무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서 본인의 명예와 함께 프랑스의 품위까지도 실추시켰다는 데 있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하루가 멀다해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그를 보며 국민들은 '품위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저런 놈을 대통령이랍시고 앉혀 놨다니 쪽팔리기 그지없다'며 혀를 찬 거다. 특히 시민의 손으로 혁명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확립한 민족의 후손으로, 국민들의 높은 정치적 참여를 자긍심으로 여기는 프랑스인들에게 사르코지 대통령은 크나큰 수치였을거다. 정치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경거망동하며 국가 망신이나 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르코지의 자세한 연애담은 여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96500&cid=42145&categoryId=42145)


사르코지에게 실망한 국민들은 공화당의 사르코지를 떨구고 미떼랑 이후 17년 만에 사회당 출신 대통령을 당선시킨다. 사회당 대통령 후보였던 올랭드는 선거 캠페인 당시 '서민 대통령/국민을 닮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어필함으로써 사르코지와 자신이 차별화해 당선에 성공한다. 하지만 결과는ㅋ 올랑드는 프랑스 최초의 동거녀 퍼스트레이디로 화제를 모았던 7년 여친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와 결별하고 올해 40대 초반의 여배우 줄리 가예와 열애를 시작했다. 심지어 최근 둘이 결혼한다는 기사들이 나오는데, 더 어이가 없는건 올랑드의 퍼스트 걸프렌드 역시 한 번 갈아탔던 여자였으며 그 이전에 만난 여자(역시나 정치계의 거물)와의 사이에는 아이가 넷이었음에도 불구, 이 관계도 동거였기 때문에 이 유명 여배우와의 결혼이 그의 첫 결혼이 될거란 사실이다. 물론 프랑스에서 동거 커플은 서류상으로 결혼식만 안 올린 부부 사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우리 나라완 제도적으로 다르다고 해도 한국에선 정치계에 발도 못 들일 스펙이 아닌가. 참고로 올랭드는 밀회를 위해 경호원 한명만을 대동하고 직접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여배우의 집에 드나들었다 하니 그 꼴을 본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지는 그들만 알찌어다ㅋ 심지어 지금 프랑스는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걸 해결하지도 못하는 대통령의 복잡한 사생활이 그들에게 달가울리 없다. 


개인적으로 올랭드가 사생활에 트집 잡히는거는 좀 불쌍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는게, 하필이면 문제의 BADBOY 사르코지의 바로 뒷 타자라서 더더욱 언론에 의해 감시받게 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사르코지가 단순 여자 문제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신임을 잃은 건 아니다, 당선 직후 제기된 대선 캠페인 자금 관련 비리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고 국민의 돈으로 사치를 부린 사례가 당선 첫 날 밤부터 목격되어, 사실 그의 여자 문제는 그 자체로 사르코지를 몰락시켰다기보다 화룡점정을 찍어준 사건일 뿐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미디어에 등장하길 과하게 좋아하는 사르코지는 대통령이라는 위치에 걸맞지 않는 천박한 언행으로 재임 기간 내내 더더욱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전례없이 높여 놓았다. 사르코지가 워낙 미움을 받던 와중에 그 화룡점정을 찍어준 것이 사생활 스캔들이라는 점 + 게다가 그 스캔들의 대상이 하필이면 유명 연예인 카를라 부르니 + 게.다.가. 그 카를라 부르니도 만만치 않게 과시하길 좋아하고 사치스러운 여자였다는 점 = 대통령의 사생활 노출 UPUP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을테고 무의식 중에 언론도 국민도 이 패턴에 익숙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치 가십에 눈을 뜨게 된거지. 


좌 전 동거녀 Valerie Treierweiler, 우 현 약혼녀 Julie Gaye



결론을 내리자면 세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는 이유는 첫째 프랑스인들의 가치관이 변해서, 둘째 사르코지 올랭드가 미떼랑과 달리 기본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능력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기 때문이다. 사르코지.올랭드 / 미떼랑을 구별짓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비교점은 퍼스트 레이디들이다. 카를라 부르니는 자신이 대통령을 꼬셔내서 영부인이 되었단 걸 괴앵장히 만족스러워했고 또 그걸 전혀 숨기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였다. 다시말해 그녀는 연예인이었고 과거 행적으로 봤을 때도 이런 성향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반면 올랭드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는 기자 출신으로 정치 활동도 하는, 한마디로 품격이 기대되는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여자에게 올랭드를 뺏긴 게 어지간히 분했는지 그와의 동거 생활에 대한 책을 출판+홍보하며 국제적인 놀림감으로 만들고 있다. 미떼랑의 퍼스트 레이디 다니엘 미떼랑은 단 한 번도 공개석상에서 작은 댁을 입에 올린 적이 없으며, 숨겨진 딸의 어머니였던 여자 역시 미술사가이자 루브르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던 본인의 커리어에 집중했을 뿐 미디어와는 먼 인생을 살았다.(대신 소설가가 된 그녀의 딸이 첫 작품으로 자서전을 내긴 했다) 


이로써 글을 마감한다. 이 글은 프랑스 정치에는 무지한, 가십 좋아하는 여대생이 쓴 글이니 너무 그 쪽으로 태클걸지 말아주길 바란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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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페이스북 비활성화 기념

2014. 3. 5. 02:04 from 쓰고

* 3월 2일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했다.

계기가 된 사건은 있지만, 사실 꽤 오래도록 생각한 일이었다. 딱히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건 아닌데 습관이 되었단 이유만으로 거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감정이 투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랄까. 이로써 나는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SNS 상에서도 내 지인들을 왕따시키는데 성★공!했다ㅋㅎ  

 

페이스북이 뜨기 시작한게 2011년 여름. 갓 새내기가 됐을때 동기들과 '11철수' 같은 일촌명을 지으면서 서로의 미니홈피에 어색한 일촌평을 써줬던 기억이 난다. 으으 여담인데 어제 학교 갔다가 교실 들어갔는데 14라고 적힌 과잠입은 애들이 보여서 새삼 소름돋았다. 14면 나랑 고등학교도 중학교도 같이 다니지 않은 애들이란건데..^_ㅠ 아무튼,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한 기념으로 오늘 대놓고 페이스북을 까보기로 했다.(사실 이러고 언제 다시 활성화할지 모른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 

 

소통의 창구는 더욱 다양해지고 간편해지는 동시에 개인주의는 점점 더 심화되는 이상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구를 한층 더 부유하게 만들어주었고 선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와 삶의 질을 인간에게 가져다 주었지만, 시장과 개인의 선택의 중요성을 설파함으로써 개인주의를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 그래서 나는 자본주의-자유주의-개인주의는 필연적인 인과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한 역사가 길어지면서 개인주의는 더욱 깊숙히 현대인들의 삶 속에 박혔고, 사라진 공동체의식의 빈 자리에는 소외, 아노미, 우울증, 자살 등이 자리잡았다.

 

애초에 SNS의 도래는 자본주의 시대 인간들의 필연적인 외로움으로 인해 발생한 수요에 기인하고 있지 않나 싶다. 페이스북 이전에는 싸이월드였고 싸이월드 이전에는... 뭐였더라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다. 이렇게 늙다리인마냥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나도 SNS는 싸이월드로 시작했다. SNS가 대인 소통에 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효율성으로만 따진다면 SNS가 매우 좋은 인맥 관리 도구라는 것은 인정한다.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손가락 몇번 놀리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 SNS는 사람과 사람 간에 이루어질수 있는 유의미한 소통을 되려 차단해버렸다. 사람들은 급한 용건이 있지 않은 이상 지인에게 전화를 걸지 않게 되었다. 왜? 카카오톡으로 혹은 페이스북 월에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됐으니까. 사람들은 딱 한 번 본, 혹은 전혀 본 적도 없는 '친구'(?)의 담벼락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남긴다. 왜 굳이? (페이스북)친구니까. 유의미한 소통은 줄어들었고 불필요한 소통만 늘어났다.

 

솔직히 나는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인맥을 관리한다'가 뭘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SNS는 유용한 도구이고 적당한 거리의 사람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기에 매우 좋은 도구란건 인정한다. 그치만 그 수단 자체에 사로잡히다 보니 페이스북 친구 말고 진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조차 하향평준화되고 있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은 지적하고 싶다. 나는 관계는 소통의 창구에 따라 규정될 수 있고, 그 틀 안에 갇힐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학교 1학년때, 학기 초 술자리에서 친해져 자주 연락을 주고 받은 동기가 있었다. 나름 '가장 친한 동기'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친구였는데, 사실 얼굴을 마주보고 만나면 좀 어색했다. 온갖 이모티콘을 주고 받고 서로 덕담을 해주고 과제를 물어보고 지금 뭐하는지 줄기차게 물어봐도, 얼굴을 마주본 적이 몇 번 없었기에 그 친구와는 카카오톡으로만 지속되는 관계로 굳어졌다. 그녀는 나의 '카카오톡 친구'가 되었다.

 

최근에 '친구'라는 말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일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어디까지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나랑 페북 친구면 내 친구인가? 나는 그렇게 치면 난 친구 300명인데 그 중 한 번이라도 페이스북으로 메시지 주고 받은 사람은 15명 이하, 그 중 나랑 카카오톡으로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5명, 매주 전화까지 하는 사람은 대략 3명이다. 어느 순간부턴가 페이스북에 무엇이든 올리는걸 꺼리게 된 이유는 그게 아닐까 싶다. 얼굴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 페이스북에 접근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 페이스북 친구의 정의는 딱 그정도가 아닐까 싶다. '내 월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 정도? 그런 사람들에게 내 일거수일투족,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 현재 소속 등을 보여주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솔직히 약간의 찝찝함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것; 나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것에 집착하는 나 같은 인간도 가끔씩은 내 근황, 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 내가 본 멋진 풍경 등을 은근-히 뽐내고 싶어하는걸 보면, 확실히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자기 표현의 욕구가 있는 듯하다. 이게 심해지면 허세가 되고,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 것보다 예쁜 사진을 찍는게 더 중요해지는 단계에까지 이르는거다. 이건 정말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손도 못 대게 하는거 난 싫다. 요약하자면, SNS로 대변되는 현대인들의 소통엔 주객전도 현상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슬슬 지겨워하는거 같다는 신호가 군데군데서 나타나기도 한다. 페이스북으로 국한해서 얘기하자면, 요즘 페이스북 보고 있노라면 개인 맞춤 서비스가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된다. '좋아할만한 페이지'가 뜨질 않나, '00님이 이 페이지를 좋아요 하셨습니다'라며 내 친구가 속옷 회사 좋아요 한게 내 뉴스피드에 꾸준히 뜨질 않나. 나같이 SNS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건지 아니면 내 또래가 SNS에 관심이 없어질만큼 나이가 많아진건지 모르겠지만, 내 페이스북 '친구'들도 글을 잘 올리지 않다보니 요즘은 정말 광고만 난무하는 거 같다. 햇병아리 블로거로 시덥잖은 예언 하나 하자면 페이스북도 얼마 안 남았다고 본다. 지금까지도 페이스북이 SNS를 지배하는 이유는 순전히 페이스북을 대체할만한 플랫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페이스북 자체가 매력을 뽐내서는 아니라고 본다. 싸이월드가 순식간에 전복당했듯이 페이스북도 한순간일거다 아마.

 

* 아무튼 그래요. 비활성화했어요. 그만큼 블로그에 쏟아부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남들이 올리는 음식 사진만 보다 정작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글 못 쓰게 될 거 같아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엄청난 시간 낭비. 하... 여시랑 독도도 끊어야 하는데^^.. 진심 이러다가 내 이십대가 페이스북+독도+여시로 기억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요즘 가장 무서운 건 아무것도 안 한 채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게 너무나 쉬운 일이란 거에요. 기술과 돈으로 세상이 삼년마다 모습을 바꾸고 십년 뒤를 예상하는 것도 어려워질수록 본인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잃지 않는 것, 유행과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기만의 것을 갖고 있는게 더더욱 중요해질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문제는 생각만 한단게 함정ㅋ 나같이 너무 잡다스레하게 관심이 많아서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짬뽕이나 잡탕밥도 정체성이 있는데 나도 언젠가 잡다구레 내 안에 쑤셔넣다보면 맛좋은 짬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아 이 글 쓰다가 냄비 태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러분 블로그질하면서 요리하지 마세요. 저 이번 겨울에 냄비 두 개 태웠어요. 오늘 또 어머니 오시면 등짝 스매싱을..으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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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굉장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광고. 비쥬얼이 화려하다거나 아이디어가 기발하지는 않지만 메시지만큼은 확실하다.

기술의 발전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면 오히려 인간은 되려 기술에 끌려갈 수 밖에 없게 된다. 폭탄이든, 핵무기든, 스마트폰이든, 간혹 인간이 과학적 발전을 누릴 준비가 되어있다고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와 과학자들에 의해 과학이 경쟁적으로 진보하는 동안 인류는 진화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생활이 편리해졌고 전세계적으로 소득이 높아졌는데 우리는 과연 더 나은 인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으으 탄 공기가 자욱한 집안에서 탄 맛나는 닭가슴살 먹고 있노라니 세상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환기시켜야지

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