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비활성화 기념

2014. 3. 5. 02:04 from 쓰고

* 3월 2일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했다.

계기가 된 사건은 있지만, 사실 꽤 오래도록 생각한 일이었다. 딱히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건 아닌데 습관이 되었단 이유만으로 거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감정이 투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랄까. 이로써 나는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SNS 상에서도 내 지인들을 왕따시키는데 성★공!했다ㅋㅎ  

 

페이스북이 뜨기 시작한게 2011년 여름. 갓 새내기가 됐을때 동기들과 '11철수' 같은 일촌명을 지으면서 서로의 미니홈피에 어색한 일촌평을 써줬던 기억이 난다. 으으 여담인데 어제 학교 갔다가 교실 들어갔는데 14라고 적힌 과잠입은 애들이 보여서 새삼 소름돋았다. 14면 나랑 고등학교도 중학교도 같이 다니지 않은 애들이란건데..^_ㅠ 아무튼,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한 기념으로 오늘 대놓고 페이스북을 까보기로 했다.(사실 이러고 언제 다시 활성화할지 모른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 

 

소통의 창구는 더욱 다양해지고 간편해지는 동시에 개인주의는 점점 더 심화되는 이상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구를 한층 더 부유하게 만들어주었고 선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와 삶의 질을 인간에게 가져다 주었지만, 시장과 개인의 선택의 중요성을 설파함으로써 개인주의를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 그래서 나는 자본주의-자유주의-개인주의는 필연적인 인과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한 역사가 길어지면서 개인주의는 더욱 깊숙히 현대인들의 삶 속에 박혔고, 사라진 공동체의식의 빈 자리에는 소외, 아노미, 우울증, 자살 등이 자리잡았다.

 

애초에 SNS의 도래는 자본주의 시대 인간들의 필연적인 외로움으로 인해 발생한 수요에 기인하고 있지 않나 싶다. 페이스북 이전에는 싸이월드였고 싸이월드 이전에는... 뭐였더라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다. 이렇게 늙다리인마냥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나도 SNS는 싸이월드로 시작했다. SNS가 대인 소통에 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효율성으로만 따진다면 SNS가 매우 좋은 인맥 관리 도구라는 것은 인정한다.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손가락 몇번 놀리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 SNS는 사람과 사람 간에 이루어질수 있는 유의미한 소통을 되려 차단해버렸다. 사람들은 급한 용건이 있지 않은 이상 지인에게 전화를 걸지 않게 되었다. 왜? 카카오톡으로 혹은 페이스북 월에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됐으니까. 사람들은 딱 한 번 본, 혹은 전혀 본 적도 없는 '친구'(?)의 담벼락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남긴다. 왜 굳이? (페이스북)친구니까. 유의미한 소통은 줄어들었고 불필요한 소통만 늘어났다.

 

솔직히 나는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인맥을 관리한다'가 뭘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SNS는 유용한 도구이고 적당한 거리의 사람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기에 매우 좋은 도구란건 인정한다. 그치만 그 수단 자체에 사로잡히다 보니 페이스북 친구 말고 진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조차 하향평준화되고 있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은 지적하고 싶다. 나는 관계는 소통의 창구에 따라 규정될 수 있고, 그 틀 안에 갇힐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학교 1학년때, 학기 초 술자리에서 친해져 자주 연락을 주고 받은 동기가 있었다. 나름 '가장 친한 동기'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친구였는데, 사실 얼굴을 마주보고 만나면 좀 어색했다. 온갖 이모티콘을 주고 받고 서로 덕담을 해주고 과제를 물어보고 지금 뭐하는지 줄기차게 물어봐도, 얼굴을 마주본 적이 몇 번 없었기에 그 친구와는 카카오톡으로만 지속되는 관계로 굳어졌다. 그녀는 나의 '카카오톡 친구'가 되었다.

 

최근에 '친구'라는 말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일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어디까지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나랑 페북 친구면 내 친구인가? 나는 그렇게 치면 난 친구 300명인데 그 중 한 번이라도 페이스북으로 메시지 주고 받은 사람은 15명 이하, 그 중 나랑 카카오톡으로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5명, 매주 전화까지 하는 사람은 대략 3명이다. 어느 순간부턴가 페이스북에 무엇이든 올리는걸 꺼리게 된 이유는 그게 아닐까 싶다. 얼굴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 페이스북에 접근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 페이스북 친구의 정의는 딱 그정도가 아닐까 싶다. '내 월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 정도? 그런 사람들에게 내 일거수일투족,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 현재 소속 등을 보여주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솔직히 약간의 찝찝함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것; 나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것에 집착하는 나 같은 인간도 가끔씩은 내 근황, 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 내가 본 멋진 풍경 등을 은근-히 뽐내고 싶어하는걸 보면, 확실히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자기 표현의 욕구가 있는 듯하다. 이게 심해지면 허세가 되고,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 것보다 예쁜 사진을 찍는게 더 중요해지는 단계에까지 이르는거다. 이건 정말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손도 못 대게 하는거 난 싫다. 요약하자면, SNS로 대변되는 현대인들의 소통엔 주객전도 현상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슬슬 지겨워하는거 같다는 신호가 군데군데서 나타나기도 한다. 페이스북으로 국한해서 얘기하자면, 요즘 페이스북 보고 있노라면 개인 맞춤 서비스가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된다. '좋아할만한 페이지'가 뜨질 않나, '00님이 이 페이지를 좋아요 하셨습니다'라며 내 친구가 속옷 회사 좋아요 한게 내 뉴스피드에 꾸준히 뜨질 않나. 나같이 SNS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건지 아니면 내 또래가 SNS에 관심이 없어질만큼 나이가 많아진건지 모르겠지만, 내 페이스북 '친구'들도 글을 잘 올리지 않다보니 요즘은 정말 광고만 난무하는 거 같다. 햇병아리 블로거로 시덥잖은 예언 하나 하자면 페이스북도 얼마 안 남았다고 본다. 지금까지도 페이스북이 SNS를 지배하는 이유는 순전히 페이스북을 대체할만한 플랫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페이스북 자체가 매력을 뽐내서는 아니라고 본다. 싸이월드가 순식간에 전복당했듯이 페이스북도 한순간일거다 아마.

 

* 아무튼 그래요. 비활성화했어요. 그만큼 블로그에 쏟아부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남들이 올리는 음식 사진만 보다 정작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글 못 쓰게 될 거 같아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엄청난 시간 낭비. 하... 여시랑 독도도 끊어야 하는데^^.. 진심 이러다가 내 이십대가 페이스북+독도+여시로 기억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요즘 가장 무서운 건 아무것도 안 한 채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게 너무나 쉬운 일이란 거에요. 기술과 돈으로 세상이 삼년마다 모습을 바꾸고 십년 뒤를 예상하는 것도 어려워질수록 본인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잃지 않는 것, 유행과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기만의 것을 갖고 있는게 더더욱 중요해질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문제는 생각만 한단게 함정ㅋ 나같이 너무 잡다스레하게 관심이 많아서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짬뽕이나 잡탕밥도 정체성이 있는데 나도 언젠가 잡다구레 내 안에 쑤셔넣다보면 맛좋은 짬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아 이 글 쓰다가 냄비 태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러분 블로그질하면서 요리하지 마세요. 저 이번 겨울에 냄비 두 개 태웠어요. 오늘 또 어머니 오시면 등짝 스매싱을..으으ㅜㅜ

 

*

 

 

개인적으로 굉장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광고. 비쥬얼이 화려하다거나 아이디어가 기발하지는 않지만 메시지만큼은 확실하다.

기술의 발전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면 오히려 인간은 되려 기술에 끌려갈 수 밖에 없게 된다. 폭탄이든, 핵무기든, 스마트폰이든, 간혹 인간이 과학적 발전을 누릴 준비가 되어있다고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와 과학자들에 의해 과학이 경쟁적으로 진보하는 동안 인류는 진화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생활이 편리해졌고 전세계적으로 소득이 높아졌는데 우리는 과연 더 나은 인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으으 탄 공기가 자욱한 집안에서 탄 맛나는 닭가슴살 먹고 있노라니 세상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환기시켜야지

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