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브랜드를 좋아하게 된 개인적인 이야기


유재하와 맥도날드


아빠의 공부 때문에 온가족이 미국에 살던 시절우리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주말을 비워 옆 주에 살던 삼촌에게 놀러 가곤 했었다. 4시간 동안 이어지는 자동차 여행 내내 배경음악은 아빠의 소관이었는데그 덕에 또래 아이들이 한국에서 핑클과 신화에 눈을 뜨는 동안 나는 유재하와 김광석이문세김건모를 먼저 접했다나는 유재하를 좋아해서 종종 dj파파에게 직접 곡 신청을 했었다하지만 제아무리 유재하라도 주구장창 들으면 질릴 수 밖에 없는데음악도 질리고 잠도 너무 자서 하품조차 안 나올 때쯤 고속도로 허허벌판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하던 것이 바로 맥도날드였다.

 

미국에 가기 전아빠는 주말을 반납하는 직장인이었고 엄마는 대학원생으로 심지어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서 네 가족끼리 외식은 커녕 한 자리에 모여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미국에서 엄마는 전업주부가 됐지만 서툰 영어로 대학원 수업을 따라가야 했던 아빠는 여전히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네 명이 4시간 동안이나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게다가 함께 식사하는(심지어 밥을 먹으면 장난감을 주는 식당에서!) 이 여정이 나에게 가족애를 상징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사실 그 시절 맥도날드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는 일화들이 있는 건 아니다엄마 아빠랑 맥도날드에서 해피밀을 먹는 것 그 자체가 나한텐 하나의 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나에게 미국 시절은 대체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후일담을 들어보니 엄마와 아빠는 미국에 살던 시절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우리가 간 지 몇 달이 안 돼서 IMF가 터졌고 아빠는 급격하게 줄어든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규정을 어겨가며 틈틈이 돈을 벌었다한국에서 시댁을 모시면서도 대학원 장학금을 딸 정도로 공부 욕심이 많던 엄마는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3년 동안이나 휴학을 해야 했다하지만 우리 모두 연고도 없는 땅에서 똘똘 뭉쳐 살았던 그 시절이 없었다면 우리가족이 이렇게 끈끈해질 수 없었다는 걸 안다. 3년 뒤 귀국하자마자 아빠는 다시 주말도 없는 회사원이 됐고 엄마도 다시 공부를 시작한데다가 우리 자매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 각자 앞가림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동생이 대학교에 입학했던 해인 2012년의 1월 1일 새벽, 우리 넷은 심야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야식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들렀다새해 첫 식사를 맥도날드에서 한 셈인데넷이 맥도날드에서 식사를 한 건 귀국한 이후로 처음이었으니 12년 만이었다나는 해피밀 대신 양파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아빠는 여전히 치즈버거세트에 디저트를 추가했고 엄마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감자튀김을 한 군데로 모았다우리 가족은 이제 더 좋은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다하지만 내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우리만이 기억하는 시간을 끄집어낼 수 있는 진정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단 하나, 맥도날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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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