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장은 죽지 않는다.

 

* 클래식의 의미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트렌디한 산업 중 하나인 대중가요에도 '클래식'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연한 기회로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노래에 감동할 때, 좋은 리메이크곡들을 접할 때(게다가 심지어 직접 찾아본 원곡 버전 조차 좋을 때), 그리고 노장들의 목소리가 시대에 맞는 사운드와 만나서 부활할 때. 마지막 케이스로 성공적으로 돌아온 것이 조용필옹이었다. (개인적으로 조용필의 앨범은 나에겐 살짝 아쉬웠지만. 뭐랄까 조용필옹의 쀨과 사운드의 싱크로율이 85% 정도 밖에 완성되지 않은 느낌..? 물론 그 정도 싱크로율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최근 돌아온 노장들 중에서 갑을 꼽으라면 역시 최백호- 조용필 형님만큼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그의 앨범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평을 들었고 대중음악상 후보에도 거론되었다. 작년 겨울 발매된<다시 길 위에서>는 최백호가 12년 동안 외출하느라 비워두었던 빈 의자에 그가 고스란히 다시 앉은 느낌을 준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화려한 부활을 목적으로 하는 컴백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온전한 자신을 다시 보여주는 기회로서의 컴백. 특유의 쓸쓸한 목소리에서 노장의 고집이 느껴져서 좋았다. 기교가 들어가지도, 힘이 들어가지도 않은 그 목소리에는 시간과 그에 상응하는 인생이 담겨져 있었다. 그렇게 최백호의 노래는 가수의 연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외로움과 고민이 켭켭이 쌓여 나온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지니는데, 21세기의 깔끔한 사운드와 만나 더욱 빛을 낸다.

 

그리고 처음 최백호를 접하게 해준 곡, 박주원 <FIesta> 앨범의 '방랑자'. 사실 난 앨범 속의 노래들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 이 곡이 가장 좋다. 가사와 목소리, 기타소리 심지어 목소리까지 최백호 특유의 우직한 쓸쓸함이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그야말로 '최백호만이 부를 수 있는 곡'이 되었다. 진정한 프로의 작업에선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만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힘'이 들어갔음을 잔뜩 어필하는 종류의 작업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우직함이 한해 두해 쌓이면 연륜이 되고 그렇게 쌓이고 쌓여 확고해진 작가의 색과 정신이 작품에 온전히 드러나 작품만으로도 작가가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는 스타일대로 작업을 하지 않아도 본인의 신념을 따르는 사람은 타인에게 진정한 의미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자신을 보여주려고 구차하게 발버둥치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거 같아서 나는 최백호의 노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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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