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18

2018. 4. 18. 23:21 from 흘러가는대로

1. 수습 뗀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포기한 케이스가 생길 것 같다. 너무 늦어서. 내가 너무 게으름 부려서. 매일 신문을 읽지 않아서. 패배감이다. 늦은만큼 더 잘하고 싶어서 전전긍긍했지만 역시 늦은 거 같다. 부장은 체념하고 sos를 치는 내게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재미있지만 꼭 필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그러면서 내일 오전까지 문자 3통, 전화 2번 해보고 안 받으면 놓으라고 했다. 


1-2. 내가 일을 많이 잘하고 싶은가보다. 너무 한꺼번에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는 걸 알면서도. 조바심 내고 서두르고 더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미루지만 내 직업은 스피드가 생명이다. 과연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걸까. 욕심과 불안을 이겨내면서 하루하루 넘기는데 진행하는 큰 프로젝트가 없으니 면목이 없다. 그냥 지친걸까. 학생 때는 지칠 때쯤 되면 4개월의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와서 개강 때 각오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데 직장인에겐 주말 뿐이니 어떻게 리셋해야할지 모르겠다. 몸이 편안해질때쯤 월요일이 와버려.


2. 첫 샤넬을 샀다. 새빨간 벨벳 립스틱. 사고 싶은 마음 1/4, 충동 1/4, 미숙함 1/2으로 샀다. 


3. 예쁘고 당찬 여자들을 항상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의 무리에 끼는 걸 무서워하고 또 그런 나 자신을 하찮게 여겼다. 학창시절은 내가 특별하게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아이란 걸 뼈저리게 확인하고 또 재확인한 시간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그릇이 큰 아이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었던 것처럼 빛이 났다. 


4. 엄마와 아빠가 자랑스러운만큼 나는 그 둘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단 생각도 깊어진다. 나는 왜 엄마처럼 학구적이고 책을 사랑하지 않을까. 왜 아빠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받지 않았을까. 내 허영심은 어디에서 오나. 나는 엄마처럼 현명하지도, 아빠처럼 성공하지도 못할거야. 


5. 올해 벚꽃은 허무하게 지나갔다. 춥고 비 내린 주말이 많았다. 잘된 일이다. 작년에 있었던 일 이후로 벚꽃을 맞이하는 게 무서웠어. 아름답지만 반갑지 않은 꽃. 그래서 즐기고 싶어도 즐길 수 없었던 주말이 많은 건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너랑은 벚꽃을 보고싶지 않았어. 아름다운 걸 보면서 추악한 걸 떠올릴 거 같았거든.


6. 절친한 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해방을 느꼈다고 한다. 요즘 자꾸 이별한 사람들이 부럽다. 해방이라니. 나도 그 기분 안다 너무 잠깐 만끽했어서 그렇지. 그런 기분이 들거면 왜 지금 연애를 붙들고 있냐 하고 스스로에게도 반문해보지만, 여전히 만나면 즐거우니까. 난 격렬한 설레임보다 편안한 애정을, 뜨거움보다 미지근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지금 이 상태도 괜찮아. 그리고 다음 질문은 이 나이에 "괜찮은" 정도의 상대를 만나는 게 시간낭비일까? 이건 아직 답 못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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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