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17

2018. 7. 18. 00:04 from 흘러가는대로

1. 며칠전에 만 27살이 되었다. 이 숫자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다. 아직 젊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항상 너무 어른인 척하려고 하니까.  만 23살이 됐을 때,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숫자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았지 세상에서 제일 철없이 굴어도 될 나이였는데. 하지만 만 27살은 왠지 그렇지 않아. 주변에 하나둘씩 유부녀가 생기고 애엄마도 보인다. 10년 전에는 같은 교복을 입었던 친구들. 5년 전 시험기간에 징징거림을 함께했던 동기들. 그들이 수능-취업을 넘어서 결혼이라는 또 다른 산을 넘어가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다만 그 이전의 관문들과 달라진 게 있다면 결혼은 정말 선택이라고 느껴진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길을 간다. 이번주에 클럽 갈거야(철없음


2. 정확히 한달이면 입사 만2년이 된다. 이 숫자 역시 도무지 무슨 마음가짐으로 맞이해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2-1. 오늘 우리팀 전 인턴이자 옆팀 신입 막내인 후배가 자기는 이 일이 너무 좋다며 여기 뼈를 묻고 싶다고 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는거냐고 물어봤으면서. 사실 부러웠다. 나도 내 일이 좋지만 이곳에 뼈를 묻고 싶다고 할 정도의 애정은 없다. 그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이 일보다 내게 더 잘 맞는 일은 없을거란 확신. 


나는 내가 더 뛰어나게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봐 무섭다. 직업의 세계에 거의 무지했던 상태로 들어온 첫 직장치곤 생각지도 못하게 적성에 잘 맞아서 운이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엔 더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하는 기대를 놓치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만족을 모르고 스스로 잘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깎아내리는 습관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노력을 하나하면 그건 언제나와 같이 노. 천성적인 게으름 역시 어디 가지 않으니까.


3. 사실 요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프랑스든 미국이든 영국이든, 말은 통하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너무 더워서 그런가보다. 20년을 넘게 살아도 서울의 여름은 적응이 안된다. 오면 오는대로, 피할 수 없으니 꾸역꾸역 견딜 뿐. 그래도 작년 여름은 생각보다 버티기 수월했는데 실제로 더위가 약했던건지, 다른 곳에 마음이 팔려서 더위 따위 의식할 겨를이 없었던건지는 알 수 없다. 


3-1. 프랑스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역시 버틸 수 있었을 거 같지 않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방인의 감각. 친구의 말을 100프로 알아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일상적인 스트레스. 내가 귀국하자마자 샤를리 앱도 사건이 터졌고, 지금은 서양 구석구석으로 우경화가 진행돼서 전반적으로 이민자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아무리 나라도 그 안에서 버틸 수 있었을까. 


4.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요즘은 사고 싶은 것 밖에 없다. 소비의 연속. 나이나 지쳐서가 아니라 더위 때문일거라 믿고 싶다. 여름에는 가족들과 스코트랜드에 가기로 했다. 나 혼자 비행기 타고 프랑스 갔다오고 싶다. 


5. 타투 생각이 간간히 올라온다. 예전에는 옆구리 뒤, 일명 러브핸들에 하고 싶었고 그 이후엔 꼬리뼈 위에 레터링을 하고 싶어했었다. 요즘은 어깨에 하고 싶다. 내가 흐트러짐을 허락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나만의 표식. 방황기를 함께했던 죠미란 친구는 Take my soul and set me free 란 레터링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 안했다. 여전히 그것보다 더 멋진 문구는 듣지 못했다. 그걸 찾는 날엔 결심할 수 있을거 같아.


6. 작년에 내 방의 책상을 없앴다. 위에 짐만 쌓이고 도무지 쓰질 않아서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블로그 글 대다수를 그 책상 위에서 작성했었다. 물론 글을 쓰고 싶을때마다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글을 썼었다. 붐박스가 잘 갖춰진 스피커에 재즈를 틀어놓곤 했다. 이사오기 전에는 베란다가 없어서 창문을 열면 바로 바깥공기가 들어왔다. 사실 그 시절이 가장 그립다. 창문 옆 책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공부하고 글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퇴근하면 침대 위에서 인터넷 쇼핑몰, 트위터랑 웹툰만 보는 으-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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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