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홍세화 지음
출판사
창비(창작과비평사) 펴냄 | 1995-03-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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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프랑스를 그토록 동경하는 이유를 두 가지 꼽으라고 하면 사회에 만연하게 퍼진 '애매함'과 끊임없는 언쟁을 꼽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애매함'돈처럼 계산할 수 없고 자처럼 딱딱 잴 수 없는, 가시적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들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고 있으며 이것이 개인들의 행동에서 사회 전반에서 드러난다는 것. 돈, 명예와 같이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가치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돈이 사회를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더욱 눈에 보이는 것들을 쫓아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전통, 예술, 예의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홀대하였다. 이것은 전세계가 자본주의의 영향 하에 있는 지금 범세계적인 추세일테지만, 왠지 프랑스만은 그 지적이고 고고한 콧대를 여전히 치켜들고 있는 느낌이 든다. 중고등학생들은 모든 과목에서 논술과 작문이 주를 이루는 시험을 치고 대학생들은 철저히 자신의 주장을 쓴 레포트를 요구받는다. 기계가 채점하는 오지선다형의 시험지를 치루고 교수가 강의한 내용과 책에 있는 자료들을 짜집기한 레포트를 제출하는 한국의 교육 실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애매함'이란 '정답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답을 구하기보다 생각하기를 훈련받는 다는 것은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발견하게 하게 하고, 사람마다 더 좋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 연장선으로, 언제나 서로의 의견을 물고 늘어지며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 또한 프랑스인의 특징이다(친구이자 나의 프랑스어 선생님인 Nicolas는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기질에 지쳐서 조국을 떠났다고 내게 고백한 바 있다.) 사회의 전체 분위기상 언쟁이 많다는 건 그 사회에 속한 개인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지 않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언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해당 사안에 대해 뚜렷한 주장이 있고 그걸 앞세워서 남들과 공유할 수 있을만큼의 근거와 지식이 뒷받침되었다는 뜻이다. 그러한 배경 위에서 건강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는, 허물뿐인 주장으로 난무한 언쟁은 개인적인 감정 싸움으로 번지게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쟁이 의견과 의견의 충돌이 아닌 개인과 개인과의 싸움으로 변질될 때 더더욱 '공존'의 자리는 좁아진다. 싸움의 끝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문제로밖에 귀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쟁의 진정한 가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두 의견의 충돌을 통해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굴복시키는 데 목적을 둔 언쟁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상대방 모두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야할 때에만 한 단계 성숙한 결론을 맞이할 수 있다.  

 

위 두 가지 특징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똘레랑스'의 큰 줄기들이다. 똘레랑스에 대한 부연 설명이 첨부된 맨 마지막 장을 읽어보면, 똘레랑스 정신이 프랑스의 역사적 토대 위에 성립했음을 알 수 있다. 서양 역사에서 다름을 배척하기 위해 피가 동원되었던 사건들은 크고 작었던 종교 분쟁들과 나치의 인종주의였다. 전자는 16세기 신교-구교 간의 종교 분쟁으로 프랑스에서도 발생하였고 '성찰적 이성에 눈뜨지 못한 인간이 '다름'을 빌미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고 집단적 광기로 나아갈 수 있는지(p373)'를 되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그 결과 하나의 신념과 행동 방식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똘레랑스 개념이 형성되었고 더 나아가 17세기 인문학자들과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회의론과 이성주의가 발달하였다. 그런 면에서 똘레랑스는 단순히 '관용'만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에 여러가지 이념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름'을 인정하도록 함으로써 소수에 대한 다수의, 그리고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를 막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끄러운 과거는 프랑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똘레랑스 개념이 프랑스에서만 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 않았고 선대의 실수를 후대가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새김질했기 때문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만든 일종의 제어장치. 그것이 바로 프랑스의 똘레랑스이다. 그래서일까. 프랑스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열광하지 않는다.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지만 단단한 뿌리를 지닌,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내가 느꼈던 프랑스의 인상이다.

 

 

*오늘부터 진지하게 역사 공부를 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프랑스의 역사에 대한 얘기보다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작가의 회고록이 더 생소하게 느껴졌다는 건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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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