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카페의 노래

2015. 4. 29. 23:16 from 읽고




"술맛이 참 부드럽네요, 미스 어밀리어. 역시 이 집 술은 뭔가 달라도 달라."(중략) 직조기와 저녁 도시락, 잠자리, 그리고 다시 직조기, 이런 것들만 생각하던 방적공이 어느 일요일에 그 술을 조금 마시고는 늪에 핀 백합 한 송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손바닥에 그 꽃을 올려놓고 황금빛의 정교한 꽃받침을 살펴볼 때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고통처럼 날카로운 향수가 일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눈을 들어 1월 한밤중에 하늘에서 차갑고도 신비로운 광휘를 보고는 문득 자신의 왜소함에 대한 지독한 공포로 심장이 멈추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 어밀리어의 술을 마시면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

그러나 카페란 것은 전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부자이고 탐욕스러운 늙은 악한도 카페에서는 행동을 조심하고 누구를 모욕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가난한 사람들도 새삼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고 소금병 하나라도 우아하고 겸손하게 집는다. 제대로 된 카페라면 우정과 복부의 포만감, 그리고 흥겨움과 우아한 분위기,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날 밤에 미스 어밀리어의 가게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런 규칙들을 미리 말한 적은 없었다. 그때까지 이 마을에 카페라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규칙과 문화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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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페가 마을의 중심이 된 것은 이런 따뜻함이나 실내 장식들, 그리고 밝은 불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카페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직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모종의 자부심과 관계가 있다. 이 새로운 자부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값어치가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장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가족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옷, 그리고 어느 정도의 고깃기름을 넉넉히 갖다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생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하나의 길고 어두운 싸움일 뿐이었다.(중략) 마을 사람들은 이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있을 때 그런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들은 미스 어밀리어의 카페에 오기 전에 세수를 했고 카페에 들어올 때는 정중하게 문지방에 신발을 문질러 흙을 털었다. 카페에 앉아있는 단 몇 시간이라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세상에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쓰라린 생각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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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는 마빈 메이시를 쫓아내지 못했는데, 이는 혼자 남겨진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과 한 번이라도 같이 살아보고 난 후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지독한 고문이다. 난롯불만 타고 있는 방에서 갑자기 시계의 똑딱거린느 소리가 멈출 때 느껴지는 정적과 텅 빈 집안에 너울거리는 그림자 - 이런 혼자라는 공포와 마주하기보단 차라리 철천지 원수를 들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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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