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한강

2016. 4. 25. 22:02 from 읽고

* 추천해준 친구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내게 추천해주기까지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첫번째 장을 끝마치기도 전에 친구를 원망했다. 초반부터 먹먹하게 만드는 이런 책을 읽어서 남는 게 슬픔 밖에 더 있나. 픽션은 해피엔딩을 기대라도 할 수 있지. 이미 누구나 끝이 절망임을 알고 있는 사건을 다루는 책에 어떻게 위로가 있고 어떻게 감동이 있을 수 있냐고. 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한 이상 끝까지 읽어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끝까지 읽어야 조금의 위로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다. 괴롭다고 중간에 그만두면 수치심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나라의 국민이 나라는 게 부끄럽고, 국민에게 총을 겨누라 지시했던 추악한 사람이 멀쩡히 살아 자기 통장에 2십만원 밖에 없다고 호소하는 꼴을 봐야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라도 작가가 끝에 무슨 말을 할 지 읽어봐야했다. 후반부에선 너무 울어서 마스카라가 번졌는데 그것마저도 부끄러웠다.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었다. 마음이 아프다고 근현대사 배우기를 피해온 나에게 더더욱 부끄러운 책이었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어도 크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작가 에필로그를 읽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게 한결 수월해지긴 하더라. 읽는 게 힘겨운 이 책을 작가는 단어 하나하나 선택해가며 마주했을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더 잔인하게 기록과 기억들을 파헤쳐야 했을까. 이 책이 엑기스라면, 책에 담기지 못한 진실들, 그리고 진실로 증명되지 못하고 잊혀졌을 수많은 개개인의 이야기가 얼마나 두껍게 5.18 라는 역사를 에워싸고 있을까. 36년이 지났다. 하나의 사건이 역사로 자리잡을 수 있을만한 시간은 못 된다. 그래서일까 20세기에 태어난 내 의식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는 내게 역사보다 정치성향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나라의 군대가 국민에게 총을 겨눈 일을 두고 어떻게 좌파와 우파를 나눌 수 있는가. 잊지 말아야 한다 계속 얘기해야 한다. 50년이 흐르고 100년이 흐르고 광주가 역사가 되는 순간까지. 


* 집단적인 광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은 어디까지 포악해질 수 있는가. 어느 정도까지 폭력에 무뎌질 수 있는가. 맹목적인 복종과 그에 따른 처벌 혹은 보상만이 존재하는 집단에서 개인의 이성은 얼마나 마비될 수 있는가. 전쟁으로 폭력을 내면화한 군대가 총을 자국민에게 겨눴다. 그렇다면 죄는 군대에게 있는가 전쟁에게 있는가. 전쟁은 누가 시작한건가. 전쟁을 결정하고 군대를 파견한 국가의 수뇌부에게 원망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갈등의 당사자도 아니었던 국가가 자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것은 나라가 약해서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라가 약한 것은 누굴 원망해야 하는가. 


*여러모로 삼키기 힘든 소설이었다. 다시 읽을 순 없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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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