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

2013. 12. 23. 23:24 from 듣고



2010년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커버곡으로 인디씬에서 유명세를 타고 2011 무도에 나온 이후로 십센치라는 그룹은 장난스러움과 경쾌함이라는 이미지로 완전히 고정되었다. 나 역시 재수 시절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곡으로 십센치를 처음 알았었고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 노래가 많이 퍼지지 않았을 그 무렵 엄청 뿌듯해하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해준 기억이 있다. 근데 의외로 십센치의 정규 1집은 권정열의 정열정열한 음색 빼고는 지금의 십센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톤다운된 느낌을 강하게 준다.  요즘 나오는 앨범을 보면 전체 곡 중에 한 두곡 정도만 슬픈데 내가 처음 십센치를 알았을 땐 5곡 중 한 곡만이 경쾌한 노래였다. 


뒤늦게 1집을 들었던 2010년 여름, 그 때 나는 재수생이었는데 한참 원인 모를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였다. 여름 방학 무렵 이미 성적은 피크를 찍었고 지식 면에서는 그다지 채울 것이 없었는데, 정보를 모두 습득하고 나서야 나는 그제서야 입시라는 것이 정신력 싸움이란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때였다. 닭장 같은 교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다가도 마치 물 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호흡이 힘들어지곤 했었다. 10시 남종에서 나와 코엑스를 가로질러 집에 걸어 갈때면 "눈빛이 너무 슬퍼보이세요. 눈이 열려 있어요. 오늘이 조상님이 주신 기회에요"라며 날 끌고 가려던 언니들에게 수시로 붙잡히던 시절. 그 때 나는 정말 누가 보기에도 눈이 정말 슬퍼 보였었나보다. 


8월인가 9월 무렵에는 밤에 침대에 누워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음이 불안해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잠이 안 오면 내일 공부가 힘들어질까봐 그게 또 걱정이 돼서 불안해하고.. 밤이 무서웠었다. 그때 반신반의하며 자장가로 들었던 음악이 십센치 첫 앨범 The First EP였다. Good Night - 새벽 4시 - 버벌진트의 무비스타 이 세 개를 간이스피커에 연결해놓고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잠들기 시작한 이후로는 밤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누워서 감각이 확장된 귀로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십센치는 그래서 언제나 나에겐 따뜻한 느낌을 준다. 권정열의 정열정열한 목소리와 잘생긴 철종씌의 기타소리가 뒤섞인 밝은 리듬의 노래들도 좋지만, 그들의 고민이 서린 음악을 들으며 치유 받아서 그런지 난 아직도 십센치만이 낼 수 있는, 듣고 있다보면 몸 아주 깊은 곳으로부터 표피까지 시리게 만드는 그 슬픔이 좋다.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건 긍정이 아니라 공감이 아닐까. 요즘 유난히 십센치 생각이 많이 났다. 그들은 그저 은근히 야한 가사를 쓰고 단순히 재미있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없이 밝고 재미있는 봄 같은 음악도 만들면서,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 수 있는 겨울 같은 음악도 만들 수 있는 아티스트. 바로 십센치이다. 



지금 생각해도 좀 오바 같은데 1학년 때 버스 안에서 이 노래 듣다가 운 적 있다. 그 때 첫 남자친구를 사귄지 2주 된 날이었나...? 그랬는데 이별 노래 들으면서 질질 짜고 있었다. 그 새끼는 결국 40일도 못 만났다. 역시.....


권정열의 목소리는 이런 분위기의 노래에서 엄청난 효과를 낸다. 이 오빠도 오묘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이 노래 듣다보면 정열씨가 귀에 대고 노래 불러주는 거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잇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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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