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 Me A River - Julie London

2014. 2. 16. 00:21 from 듣고




Now you say you're lonely
You cry the whole night through
Well, you can cry me a river, cry me a river
I cried a river over you


Now you say you're sorry
For bein' so untrue
Well, you can cry me a river, cry me a river
I cried a river over you


You drove me, nearly drove me out of my head
While you never shed a tear


Remember, I remember all that you said

Told me love was too plebeian
Told me you were through with me and
Now you say you love me
Well, just to prove you do
Come on and cry me a river, cry me a river
I cried a river over you


* 백인 재즈 보컬들은 애잔함이나 쏘울로는 확실히 흑인 보컬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뭔가.. 후자에게는 아티스트 개인의 성장 배경이나 감성과 독립적으로 그들의 선조부터 뿌리깊게 전해져 내려오는 설움이 목소리에 짙게 베어있는 느낌적 느낌? 하 언병이라서 서글프다. 이 정도로 밖엔 표현 못하겠어요. 물론 에이미 와인하우스 같은 괴물도 한 세기에 한두명씩 나타난다만 역시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재즈나 알앤비 등 흑인 음악의 영역 안에서 백인들은 태생적으로 흑인들보다 쏘울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겐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겪어야했고 지금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은 아픔의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의 역사에 적지 않은 백인 아티스트들이 이름을 올린 걸로 보아 백인 아티스들에게도 정체성은 존재한단 말인데, 그 느낌적 느낌을 굳이 말로 뽑아보라 하면 본인은 emptiness라 하고 싶다. 굳이 한국말로 하자면.. '허무함'? 모든 백인 보컬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가장 유명한 백인 재즈보컬인 프랭크 시나트라는 가벼우면서도 경쾌한 분위기의 곡들을 위주로 냈으니까. 그러나 감성과 힘이 넘쳐 애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흑인 보컬들과 비교했을때 백인 아티스트들에게선 대체로 노래에서 힘과 감정이 절제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쳇 베이커가 그랬고 오늘 포스팅한 줄리 런던도 그렇다. 재즈 피아노의 거장 빌 에반스도 힘 빠진 듯 약간 차가운 연주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끌 수 있었던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 백인 아티스트들이 지닌 감성은 미국의 역사와 결부시켜 설명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이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초토화되고 전쟁 자금으로 인해 엄청난 빚을 축적하고 있을 때, 미국은 전쟁터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들에게 무기를 팔며 순식간에 서방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른다. 미국은 더 이상 영국의 일개 식민국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어머니격인 영국의 왕관을 뺏어온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렇게 미국은 종전 후 1920년대, 개국 이래 최대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사람들은 The Jazz Age라 명명한다.

 

미국을 '미개하다'고 손가락질했던 유럽인들조차 전쟁 후에 미국을 희망의 땅이라 여기며 하나 둘 건너오기 시작했고, 승리의 기운은 미국의 국민들에게도 퍼져 "아무리 출신이 낮은 자라도 열심히 노력한다고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미국 사회 전반에 깔리게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그토록 익숙한, American Dream의 시초이다. 이 긍정적인 에너지는 원칙적으로는 청교도에 기반했던 미국 사회를 '해방'시킨다. 하지만 미국은 갑자기 찾아온 부를 감당할 수 있을만큼 성숙된 사회는 아니었나보다. 세상의 모든 화려함을 모아두었던 그 곳의 이면에는 탐욕, 부도덕함, 이기주의가 팽배해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술'이다. The Jazz Age에는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는데, 당시 가장 돈을 많이 벌며 떠올랐던 신흥부자층은 불법 주류 제조업자와 주류 밀매업자였다고 한다. '새로운 땅'으로 이주했을때부터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미국의 선조 청교도인들이라지만 본래 청교도는 부를 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전히 잔재해있는 청교도적 가치 위에 감당할 수 없을만큼 갑작스레 이루어진 경제 성장과 개방이 더해지자, 미국은 겉으로 화려할지언정 속으론 뼛속까지 썩어갔다. 이러한 미국의 모순적인 현실을 여과없이 제시한 게 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은 바로 귀향 군인들이었다. 나라를 승리로 이끈 '영웅'들, 사실 그들 하나하나는 따지고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다가 전쟁터로 내몰린 청년일 뿐이었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았을 그 청년들에게, 수많은 전투를 살아남아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조금의 돈과 훈장 정도. 이미 미국 땅에 팽배해있던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는 그들의 허무함을 한 층 더 고조시켰으리라.

 

화려한 껍데기.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존재하는 정신적 빈곤. 이 모든 게 그 당시 한창 부흥하고 있던 흑인 문화의 음악적 장르인 재즈를 백인들이 소화하는 과정에 녹아 들어가 White Jazz의 정체성을 형성한 것이다.

 

*<참고>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가 통째로 군수 물자 공장으로 변신했을때 부족한 노동 수요를 채우기 위해 전국의 흑인들이 북부로 밀려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 떠오른 흑인들의 대표 거주지가 뉴욕의 할렘인데 이 지역을 중심으로 재즈 음악을 대표로 한 흑인 문화가 꽃을 피운다. 더불어 라디오의 발달과 함께 라디오에서 주 노동자 층을 이룬 흑인들을 위해 재즈 노래들을 틀어주던 것이 재즈의 부흥에 한 몫하기도 했다.


*(오늘은 포스팅다운 포스팅에 도전하고자, 위키피디아를 검색했습니다아!!!!) Julie London. 1926-2000. 본명 Gayle Peck.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음악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십대에 노래를 하며 대중 앞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엘리베이터걸로 일하던 중 픽업되어 배우 생활을 시작한다. 지금은 가수로 회고되지만 1955년 Cry Me A River로 정식 가수 데뷔를 하기 무려 11년전 영화배우로 먼저 데뷔했고 일생에 걸쳐 2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미모와 쩌는 몸매, 좋은 자세로 세계2차 대전 당시에 군인들이 선호하는 핀업걸 1위였다고 한다. 완벽한 비쥬얼에 노래, 연기까지 잘하는, 스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여자가 줄리 런던이다. 




하.. 저 눈빛으로 "난 론리걸이에요"하는데 어떤 남자가 안 넘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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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