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ost Blue - Chet Baker

2014. 6. 28. 05:51 from 듣고
 

*세번째로 산 재즈 앨범이 쳇 베이커의 베스트 모음집이었다. 고3 수능이 끝난 겨울부터 듣기 시작했고 재수하는 동안 꽤 열심히 들었었다. 차분해지고 싶지만 우울해지고 싶지 않을 때는 쳇 베이커를 찾는다. 멜로디가 아무리 음울해도 목소리 자체가 무겁지 않아서 그런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쳐지지 않아서 좋다. 종종 거실 오디오에 쳇 베이커를 틀어놓곤 했는데, 한 번은 엄마가 듣다가 '쟤는 목소리에 힘이 없는게, 마치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노래한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재수학원을 다니면서 지각하거나 빠진 날이 거의 없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라서 벌점 같은 것도 없었는데, 그땐 결석하는게 뭐 그렇게 큰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근데 하루, 주민등록증 만드는 거 때문에 점심 시각이 지나서 학원에 들어간 날이 있었다. 동사무소에 들렀는데 의외로 너무 일찍 끝나서, 집으로 돌아와 뭘할까 하다가 거실 오디오에 쳇 베이커를 크게 틀어놓았었다. 그리고 나는 소파에 누웠는데, 그 뒤로 한 시간 동안 나는 반 수면 상태에서 쳇 베이커를 듣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었다. 평일 오전 열한시에, 재수생이, 소파에 누워서, 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쳇 베이커를 듣는게 얼마나 감동적인 경험이 될 수 있는지는 정말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학교 생활 동안 내세울게 개근상 밖에 없던 재수생에게 그 한 시간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종류의 자유였다.  


*내게 쳇 베이커를 소개시켜준 사람은 내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그의 추천으로 My funny valentine을 들은 순간부터 나는 그저 ㅄ같이 웃긴 새끼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단박에 쫄아버렸다. 세상에. 이런 노래를 듣는 19살짜리 남자애가 있다니. 당시 나는 내 또래 남자애들을 피시방이랑 허세 밖에 모르는 멍청이들이라고 간주했었다. 요즘도 일년에 한두번씩 연락이 오곤 한다. 나는 쳇 베이커 앨범을 찾듯이 그를 찾았다. 아주 가끔 생각나지만, 잊혀지진 않는. 여전히 토나올정도로 거만한 그는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내게 쳇 베이커를 소개시켜준 남자로 남을거다. 하필 쳇 베이커라니. 재수도 좋다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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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