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2

2021. 6. 17. 23:15 from 흘러가는대로 /.

오늘 두번째 상담을 다녀왔다. 한시간 안에 나를 분석하기 위한 기본 사안들은 다 알려주고 나오겠다는 다짐으로 한 마디 한 마디가 다분히 계획적이었던 첫날에 비해 오늘은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다 나왔다. 듣기만 하셨던 첫날과 달리 오늘은 선생님이 중간에 질문을 조금 던지셨고 그 중 깨달음을 준 것들이 있어서 기록한다. 

 

최근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답을 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거짓말했던 사건을 말하자 선생님은 자라면서도 부모님이 원하는 딸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엄마와 아빠는 한번도 나에게 특정한 행동 양식을 강제한 적이 없기 때문에 거짓말로 나를 포장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 손을 타지 않고 무엇이든 나 혼자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엄마가 원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부모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처럼 굴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확실히 벅찼다. 나는 타고나길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내가 응당 부모에게 받아야 하는 간섭을 받지 못한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형태만 다를 뿐,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아이처럼 굴도록 스스로를 채찍질 한 것 역시 내 의사와 반대로 타인이 원하는 모습에 나를 끼워맞춘 행동이라고 했다. 

 

동네와 국경을 오가면서 자주 전학을 다닌 나한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튀지 않는 아이가 되는 것. 어딜 가든 무리에 스며들도록 내 색깔을 지우는 것. 누구도 날 싫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미국에서 영국으로 전학간지 한달만에 발음을 바꿨던 나는 아빠한테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어"라고 했다고 한다. 그게 내 청소년기였다. 

 

잦은 전학으로 얻었던 친화력, 적응력, 포용력과 영어실력은 내 강점이 됐지만 타인의 평가에 대한 취약성, 비판에 지나치게 수용적인 것과 자기의심은 평생의 숙제가 되었다.

 

상담을 하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수록 어렸던 엄마 아빠의 미숙함을 마주한다.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지만 내 예민함과 결핍을 채워주진 못했다. 원망스럽진 않다. 무지를 원망할 순 없으니까. 기질적으로 내가 동생보다 예민한 아이였던 것을 두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듯이.

 

하지만 털어놓을수록 마음이 아프다. 엄마와 아빠는 최선을 다했지만 내게는 충분하지 않았고, 그들이 했던 선택과 행동의 결과로 나는 평생 안고가야 할 짐들이 생겼다는 것이 그렇다. 한때 성인이 되는 것은 부모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고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도 아직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기억들이 있나보다. 

 

그걸 인지하고 내 주변사람들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정도 인거 같다.

 

20년을 "나는 왜 이런 사람인가"를 고민해왔는데도 아직도 나에 대해 배울 게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런 얘기를 한참 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든 생각: 꾸밈없이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한가? 가족들, 남자친구, 친구들 나는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해왔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 억눌려서 사는 사람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외국에만 나가면 해방감을 느꼈던 건가 싶다. 아무도 내게 말로 어떻게 행동하라고 시키지 않는데 알아서 끼워맞추는 삶.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한번쯤은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그 어떤 안전망도 없이 인생의 바닥을 기어봐야 온실 속 화초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제 진짜 독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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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