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INNE BAILEY RAE

2014. 3. 12. 23:01 from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 감상을 '대중 가요'로 시작한다. 모두가 듣는 음악을 같이 듣다보면 그 중에서 더 유난히 귀에 꽂히는 노래, 더 좋아하게 되는 노래가 생기고, 그 노래와 비슷한 노래를 듣고 싶어서 그 가수의 다른 노래들을 들어보게 되고, 그 가수와 비슷한 가수들의 노래도 찾아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장르가 생긴다. 어떤 예술적 영역이든, 취향은 큰 바다에서 시작한 물고기가 물살을 타고 강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오늘 소개할 아티스트는 나를 음악 감상의 큰 바다에서 강물의 초입으로 이끌어준 파도, 코린 베일리 래Corinne Bailey Rae이다.

 

 

 

 

인기가요에 나오지 않는 음악들을 듣기 시작한 건 2006년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나랑 같이 학원을 다니며 급속하게 친해졌던 여자애는 다이시댄스, 클래지콰이 등의 말랑말랑한 하우스 음악과 파스텔 뮤직에서 나온 홍대 인디씬 음악들을 들었는데, 순위권 차트에 나오는 발라드들만 듣던 나는 그 애가 인기가요에 나오지 않는 노래들을 듣는게 엄청 멋있어 보였다. 그 때 결심했다. 나도 인기가요에 나오지 않는 노래들을 들어보기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다짐은 일탈이라고 해봤자 하루에 만화책 다섯 권 빌려 보는 게 전부였던 범생이 중딩이 할 수 있던 최고레벨 허세였던 거 같다. 그 친구에게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주로 네이버 블로그들을 뒤져가며 좋은 음악들을 찾아 듣곤 했었다.

 

당시만 해도 멜론보단 소리바다가 우세했던 시기였는데, 소리바다에 없는 음악들은 인터넷 쿠키 뒤져가면서 다운받았었다. 그 때 처음 깨달았다. 텔레비전 밖에도 음악이 있고 심지어 거기엔 훨씬 훨씬 더 많은 음악이 있다는 걸. 그 때 내 힘으로 혼자 발견해냈던 가장 첫 노래가 Corinne Bailey Rae의 Like a Star였고 그 노래 하나 듣고 산 Corinne Bailey Rae 1집은 내 용돈으로 산 첫 번째 음반이 되었다. 그 다음해에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매일 아침 스쿨버스의 등굣길에 이 음반을 들으면서 창문에 기대어 잠들었고 이 앨범을 들으면서 첫 짝사랑의 실패를 넘기기도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3년 뒤, 공백기를 깨고 나온 2집은 2010년 1월, 첫 수능의 실패로 인생의 바닥을 온 몸으로 느끼던 그 시기에 발매되어 겨울 내내 나를 위로해줬다. 그리고 신입생이었던 2011년 봄, 코린 여신이 처음으로 한국에 내한했다. 그래서 나는 코린 여신과 나는 DESTINY라고 주장한다.(근데 쓰고 보니 별로 개연성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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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초 발매된 정규 1집 CORINNE BAILEY RAE는 예뻤다. 이렇게 말하면 좀 오그리 토그리한데 진짜 사랑 터지는 앨범이다. 평소 티격태격하던 남자와 썸도 타고(Like a Star) 가슴 벅차게 사랑도 하고(Breathless) 그 놈의 사랑 때문에 잠도 뒤척이고(Trouble Sleeping) 그이의 전화도 기다려본다(Call me when you get this). 당신이 짝사랑을 심하게 하는 중이라면, 이 앨범 듣는거 그닥 추천하지 않는다. 가사에 너무 감정이입하게 되면서 실제보다 상대를 더 미화하게 되는 아주 안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솔직히, 경험담이다. 이 앨범을 듣다보면 왠지 짝사랑하는 자신을 아련하게 여기면서 혼자 하는 그 사랑을 아주 아름답게 여겨 짝사랑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그런 이상한 변태적 결말에 이를 수 있다. 코린을 빵! 터뜨린 데뷔 싱글 Like a Star는 국내에서도 수많은 소녀들의 싸이 BGM으로 명성을 얻었고, '소울메이트'라는 매니아 드라마의 OST 덕분에 더 많은 일반인들에게 유명세를 탔던 기억이 난다.(이 드라마 OST 정말 좋다. 소울메이트 자체가 시청률이 그닥 높진 않았지만 매니아층이 두터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OST 또한 딱 그러했다. 유명한 노래들도 아니고 아티스트도 생소한데 한 번 들으면 찾아서 다시 들어야 하는 그런?) 여중에서 남녀공학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십대 여학생이 사랑을 꿈꾸기에 딱 좋은 앨범이었던 거 같다. 확실히 2집보단 발랄한 1집이 더 귀가 편안하긴 하다. 하지만 2집 The Sea가 아릿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면 코린 여신도 내겐 '1집이 좋은 가수'로만 기억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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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발매된 정규 2집 THE SEA는 오랜 공백기에 종지부를 찍은 앨범이다. 코린이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던 2008년 3월, 남편 Jason Rae가 리즈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난다.(참고로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사인은 만취 상태에서의 약물 과다 복용. 둘은 코린이 22살이던 2001년에 결혼했으며 그녀의 남편은 밴드에 속한 색소포니스트로 마크 론슨, 에이미 와인하우스와도 작업한 적이 있는 뮤지션이었다. 자신이 음악을 하도록 격려해준 남편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은 정규 1집에 그대로 나타나있다. 사실 그거 따로 읽지 않아도, 음악만 들어도 알 수 있지 않나. '아 이 여자가 허벌나게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구나' 라고 앨범 전체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코린은 남편의 죽음 이후 일년 동안은 음악에 손도 못 댔다고 한다. 제이슨은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고, 마약 역시 매우 매우 드물게 했으며 술을 마실 때에만 했다고 한다. 심지어 제이슨 부검 당시 몸에서 나온 약물들은 코린이 알기론 그 밤 이전엔 그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약물이었다고 했다. 이 사건이 그녀에게 얼마나 갑작스러웠는지는 그녀만 알리라. 그래서인지 서른을 갓 넘긴 코린의 2집은 1집보다 무거운만큼 깊다. 1집이 사랑, 애정, 희망이었다면 2집은 슬픔, 극복, 성장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해서 발랄하고 낙천적이었던 소녀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그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고 나서야 진짜 '여자'가 되었다. 인터뷰에 의하면, 코린은 4년만에 발표한 2집을 들고다니면서 전세계의 콘서트장에서 사별한 남편의 얘기를 해야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궁금해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2집 자체가 떠난 남편과 별개로는 논할 수 없는 앨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감정적이지 않게 되려고 대본을 외워서 읽었는데 그것조차도 너무 싫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건지, 자신을 가십거리로 삼으려는 것인지 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시 고삐를 잡은 것은 결국은 남편 제이슨 덕분이다. 그렇게 자신의 음악과 제이슨의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제이슨을 위한 일이라고 그녀가 결론 지었기 때문이다. 4년 새에 그녀가 상처를 극복하고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2집을 들으면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2집은 내게 무척 의미가 크다. 2집이 발매됐을 2010년 1월, 나는 첫 수능을 망치고 떨어질 각오로 넣은 원서들이 진.짜.로. 다 떨어진지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 때 코린의 앨범이 나왔다. 그 앨범을 처음 들으면서 한강 옆 산책로를 걸었었는데데 어째서인지 밤인데도 안개가 자욱히 길을 덮고 있었다. 기다리던 아티스트의 앨범이 나온 날, 흰 안개가 솜이불 같이 내려앉은 산책로를 걸으면서 만물이 나한테 힘내라고 얘기하는 거 같아서 코끝이 찡했다. 그 날 차가운 겨울 밤바람에 맞서 파워워킹하면서 마음이 엄청 따뜻해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1집 활동 당시 한 콘서트에 코린은 자신의 음악이 '힐링하는 음악'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그 코어만은 여전히 2집에도 존재한다고 느꼈다. 1집은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지고 사랑해요@^^@'였다면 2집은 '나도 일어섰으니 당신도 일어설 수 있어요'랄까. 하 우리 여신님 앨범 얘기하니까 오그리토그리한 대사들이 아주 그냥 쏟아진다 쏟아져. 언니 내가 이렇게 사랑해요. Corinne, just in case you're reading this, I love you. You are my ideal M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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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