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까르뜨에 있는 장 루이 듀록에게 전보를 보내주세요.

 

"축하해요! 당신을 TV에서 봤어요. 안."

Bravo! Je vous ai vu a la télé. Anne.

 

 

 ...

 

 

잠깐만요!

 

"축하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안"

Bravo! Je vous aime. Anne.

 

 

 

 

 

 

 

 

 

 

*

흔하고 진부한 제목의 영화나 음악에는 왠지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인간, 사랑, 행복 등등. 성의가 없어보여서가 아니다. 그 단어가 담고 있는, 개인마다 다른 냄새와 촉각, 기억으로 인식하고 있을 그 개념들을 하나의 작품이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다. 가장 상투적인 것들일수록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것이고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개개인마다 다른 경험으로 기억에 남게된다. 그 기억을 토대로 우리는 모두 인생의 중요한 개념들에 대해 각자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특유의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사건을 우리는 공통적으로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한 사람은 사랑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빨을 닦지 않고 가볍게 입을 맞출 수 있는"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다르게 알고 있는, 가장 단순해서 개별적일 수 밖에 없는 경험으로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사랑', '행복', '이별' 과 같은 제목을 보면, 제작자가 제목을 제대로 짓기 굉장히 귀찮았거나 아님 정말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있고 깡이 있던가 둘 중 하나일거라는 생각을 한다.(물론 영화건 음악이건 제작에 들어가는 수고를 감안했을때 전자일리는 없을테지만.) 그리고 그 중에는 감상 후 '역시나 별로'에 들어가는 작품도 있고, 의외로 깊은 인상을 남겨 그 제목을 지니기에 합당하다고 인정하게 되는 작품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과 여'는 진부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 딱 제목만큼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특별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들-시작할 때의 설렘, 상대방의 마음에 확신을 갖지 못하며 겪는 기다림, 의미있는 신호를 감지했을 때의 날아갈 듯한 기쁨, 과거의 상처로 인한 망설임,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이후의 맺어짐까지. 영화는 모든 남녀가 이해할 수 있을 이 모든 감정들을 100분이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집어넣었다.

메시지가 진부하면서도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말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선을 말이 아닌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흑백과 컬러 화면의 전환, 배경음악의 가사, 과거 회상 장면, 배우의 독백.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두 남녀의 관계를 그려낸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서로의 목을 부여잡고 야하게 키스하는 장면이 없어도 우리는 차분한 영화가 그려내는 사랑에 조용히 끄덕일 수 있다.(심지어 하나 있는 베드신조차 조용하다) 애초에 사랑은 검은색 바탕에 형광색 글씨로 쓴 "나는 사랑이야!!!!" 따위의 야단시러운(?) 것이 아니니까.

 

*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와 마음을 동시에 굴려가며 사랑을 하는 일에 훈련이 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지르고 있는 실수들이 다 내가 어려서 겪는 시행착오이고 언젠가 상처들이 쌓이면, 그래서 내가 서른 살쯤 되면, 사랑을 하는 데에도 연륜이 쌓이고 도가 터서 에너지를 덜 소모고도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마음과 몸의 조바심을 머리의 지혜가 잠재워 덜 상처받고 덜 지치는 연애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엿볼때면, 감정이 진정하다면 나이불문 누구나 사랑 앞에선 서툴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쟝이 그랬듯 충동적으로 상대를 만나러 갈때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행동을 할지 혼자 머릿속으로 디테일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하고, 반대로 안처럼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 후에도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자신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남녀가 사랑에 있어서 서투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상대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쉽사리 손을 내주지 못한다. 상처받았던 자신이 또 이 과정을 반복하고 싶은건지에 대해 마음을 정하지 못해 내민 손을 거두어본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어지려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양쪽 모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안이 먼저 사랑한다는 전보를 부쳤듯이, 그리고 쟝이 한 번 거절당하고 나서도 안을 붙잡으러 역에 먼저 도착해 있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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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