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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1. 03:21 from 흘러가는대로


1. 어제부터 오늘까지 총 24시간을 상수/합정에서 보냈다. 그 지역은 너무 HIP해서 묘한 박탈감을 준다. 모든 것이 너무 신선하고, 공기에서 걱정이라곤 느껴지지 않아서 모든걸 훌훌 털고 놀 수 없는 나같은 사람은 절대 끼지 못하는 느낌.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상상마당에서 하던 수업을 들으러 다니던 신입생 때도 홍대는 왠지 어려웠다. 용기를 내서 '오늘이야말로 홍대와 친해져보리라'는 기분으로 친구들과 약속을 의도적으로 그곳에서 잡았던 적도 몇 번 있었으나, 어디가 적당한지 고르지 못해 결국 스벅이나 들렀다 오곤 했다. 기껏 홍대까지 가서 스타벅스라니.. 그때마다 나는 이상한 패배감에 젖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도 힙해지고 싶다. 그래도 어제오늘 이틀동안 속성으로 정 붙이러 노력한 덕에 상수 쪽의 메이저 골목들은 얼추 익힌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다녀야지. 


2.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게 너무 어렵다. 우선 평일엔 일하느라 너무 힘이 많이 빠져서 퇴근하고 나면 손가락 움직일 힘만 남는다. 그래서 하루의 끝은 매번 스마트폰을 하면서 한심하게 마무리하게 된다.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지만 정말 어디 앉아있을 힘도 안 남는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오후에 회사에서 일을 겁나 많이 하는 거 같지만 사실 그런건 아니고, 그냥 내 체력이 저질이라 그런듯하다. 그렇게 5일 열심히 일하다 토요일이 온다. 토요일은 남자친구에게 온전히 바치는 날이다. 남자친구랑 실컷 데이트하다 들어오면 새벽 한두시. 일요일엔 오전부터 오후 세시경까지 할아버지 할머니랑 교회에 간다. 저녁에는 온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다. 그것도 매주. 그렇게 일요일의 모든 일정이 끝나면 시간은 어느새 저녁 여덟시. 그나마 일요일 밤은 내 시간이지만, 주말을 너무 달린나머지 힘들어 또 누워서 스맛폰하기 일쑤. 으으 블로그할 시간도 없고 책 볼 시간도 없고 음악 들을 시간도 없고 공부할 시간도 없다. 요즘 들어 느끼지만, 능력있는 직장인의 기본덕목은 체력임. 


2-1. 하지만 괴로운건 이 와중에도 "정말 내게 시간이 없는가? 결국 내가 게으른걸 스케줄을 탓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거다. 사실 물리적인 시간은 항상 존재한다. 누워서 스마트폰 대신 책을 보면 되고 이동할 때라도 신문을 읽으면 된다. 그래서 하루 끝에 침대에 누워 꼬박꼬박 졸면서 하는 한탄은 "스케쥴 핑계 대봤자 결국 내가 한심한심이"인 것이다.


2-2. 나 혼자만의 시간이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도무지 풀리질 않는다. 앉아서 고민하고 음악 듣고 책 읽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나는 정체한 느낌. 남자친구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텐데 나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같이 있으면 에너지가 새어나가는게 느껴진다.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인 시간이 일정기간 확보되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었다. 나 같은 사람도 결혼을 하고 주말을 가족들과 보내는 가정적인 여자가 될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일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오늘은 졸라도 되는 날, 오늘은 안 되는 날'을 구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애교가 철철 넘치는 아줌마가 됐지만, 삼십대 후반까지만 해도 엄마는 많이 방황했었던 것 같다. 시댁을 모시고 사는 상황에서 나와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도 본인의 공부 욕심을 버리지 못 했으니까. 나는 엄마를 많이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학생 때는 엄마 같이 아이들이 눈치 보게 만드는 엄마는 되기 싫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러기에 나는 너무 예민하고 욕심이 많고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나는 엄마와 너무 비슷하다. 그래서 아직은 결혼이 무섭고 아이들을 키우는 게 무섭다. 내 남자친구는 지금도 내 무심함 때문에 상처받곤 하는데, 지금으로썬 이 성격을 고치지 못한다면 남자친구와 더불어 아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주는 비극으로 내 가정생활이 끝이 날 것 같다.


3. 오늘의 결론: 나는 욕심은 있는데 실천력은 없고, 결과물은 없이 스트레스만 이빠이 받는 사람이라서 아이들과 남편을 힘들게 할 것이다.(...) 그냥 평생 혼자 사는게 엄한 남자 안 괴롭히고 지구의 평화를 도모하는 길이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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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