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12. 8. 07:25 from 흘러가는대로


1. 귀국이 2주 남았다. 다다음주 일요일 아침엔 한국땅을 밟고 있겠지. 으으 세미멘붕 중. 한국 침대에서 일어나 "프랑스를 갔다온 것은 꿈이었나"하고 허우적거리는 꿈까지 꿨다. 일어나 보니 아직 그르노블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안도감이란..ㅋ 이 정도면 중증ㅎ;; 아무튼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출국 준비를 한다.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친구들과 내가 사랑하던 공간들에 마지막으로 눈도장을 찍어둬야 한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주말을 런던에서 보낼까 하다가, 남은 2주 중 하루라도 그르노블을 벗어나긴 싫다고 결론 내려서 런던행은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차라리 시원하다. 앞으로 살면서 이 작은 도시에 올 확률보단 런던에 갈 확률이 높은거 같았다. 게다가 다음 번에 오더라도 그 땐 Martin네의 하숙생이 아닐테고, 내 바로 옆 방에 애니가 살지도 않을테고, 지금 그르노블에 있는 한국인 친구들도 없겠지. 프랑스를 떠나는 것 자체도 아쉽지만 그보다도 지난 9 개월 동안 여기서 내가 만들어놓은 세계가 사라진다는게 너무 아쉽다. 다시는 이 마을에 24살의 스그스로 돌아올 일은 없을테니... 흐규흐규울ㄴ얼 가기시졍러ㅏㅇ니


2. 8월에 벨기에 지혜네 놀러갔을때 지혜네 부모님께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었다. 아버님의 해외 지사 발령으로 지혜네 부모님은 몇 년 전부터 벨기에에 사신다. 첫 날 밤 저녁식사를 하면서 프랑스 와서 느낀 것들을 지혜 아버님께 열심히 설명드렸는데 아버님은 열심히 들으시더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는 ~가 잘못됐다. 외국은 ~한 것들을 하는데 얼마나 좋으냐"라는 소리만 할 줄 알지, 그 좋은 것들 중 어떤 걸 취할 것인지, 어떤 걸 우리 나라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발전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지적은 불평과 다를 바 없노라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간과하고 있던 점이라 반성이 됐다. 


2-1. 현실적으로 "~이 잘못됐다"라고 말하는 것은 "~보다 ~하게 해야한다"보다 백배 쉽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판단은 거의 본능적이다 싶을 정도로 빨리 이루어진다. 물론 이 모든 과정 속엔 개인의 양심, 가치관, 이익 따위의 계산들이 숨어 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고방식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무엇이 자신을 이런 결론에 도출하게 만들었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래서 우리는 ~을 해야 한다'를 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스케일의 사고를 요구한다. 사안을 다각도로 파악해야 한다. 무엇을 고칠지 설명하기 위해선 무엇이 잘못됐는지 짚어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 주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왜 싫어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싫다"라고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의견이 없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지만 맹목적인 싫음은 그 자체로 악이 될 수 있다는 걸 역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비판하는 것과 불평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대안을 내놓는 것까진 못해도 최소한 자신이 왜 그거에 반대하는지는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2-2. 정치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프랑스에 오기 직전 나는 한국 사회에 불만이 굉장히 많이 쌓인 상태였다. 똥이 쌓인 현실을 부정하고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일종의 도피 심리? 지옥같은 학창 생활을 끝내고(재수까지 해서 +1년) 대학에 들어왔는데 3년 과제와 시험, "자기계발"에 치이고 나니 4학년ㅋ 이제 남은 건 취준? 짜증 펔발ㅋ 솔직히 그 때만해도 막연히 외국에 나가면 모든 게 다 나을 것만 같은 환상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당시에도 프랑스에 대한 꿈이 환상일거란 예상을 안 했던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것이 아닌 걸 갈망하고,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내 경우엔 유학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그건 아마 내가 결국엔 끝까지 국내 교육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거다. 사실 이런 환상의 기본은 무지다. 나는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다 못해 단점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프랑스에 대해선 그렇지 못했다. 단편적이고 긍정적인 정보들만이 내 프랑스에 대한 지식의 정보였고, 그걸 토대로 내 상상력이라는 살을 붙여 만들어낸 프랑스의 이미지는 한없이 핑크빛이었다. 이 모든게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라는걸 알면서도, 외국에 나가 환상을 깸과 더불어 더불어 내 나라 역시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어학 실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얻게 되는 것 아닌가 하며 프랑스행을 결정했다.


예상대로 도착한 직후엔 프랑스의 모든 것이 좋아보였다.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옷 막 입는 것도 좋았고, 책 음악씨디 디비디가 잔뜩 꽂힌 프랑스의 거실이 좋았고, 심지어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까지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단 몇 개월만에 깨달은 건 누가 더 옳고 누가 그른게 아니라 단지 두 나라가 다르단 것이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는 흔하디 흔한 명제를 14시간 떨어진 땅에 도착해서야 제대로 이해한 셈이다. 프랑스엔 있지만 한국엔 없는게 있고, 한국엔 있지만 프랑스엔 없는게 있는거다. 그러나 지구 반바퀴 떨어진 두 나라는 사뭇 다른 기후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다른 음식을 먹어왔으며 접점이 없는 완전히 다른 역사를 갖고 있으니, 이토록 다른게 당연한거 아닌가. 이 당연한 이치가 한 나라에만 갇혀 있을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야를 넓힌다는 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다른거라는 걸 알면 된다, 우리나라엔 없는 것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단순히 아 한국엔 이게 없다 라며 탄식할게 아니라 이 나라엔 왜 그것이 자리잡았는지 이해하면 된다. 이 문제의식이 침투할 수 있는 범위는 엄청 광범위한데,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낱 치즈 하나에서도 새로운 걸 발견한다.


프랑스 치즈는 종류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치즈가 프랑스의 심볼인건 단순히 숫자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로.프랑스인들의 식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Fromagerie라는 치즈 전문 가게가 있으며 대형마트엔 치즈 코너가 따로 있다. 치즈의 근원은 우유고 우유의 근원인 소는 지구 곳곳에 존재하는 동물이지만 유럽 내에서도 프랑스만큼 치즈 문화가 발달한 국가는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소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유/크림/치즈에 대한 문화가 발달하진 않았다. 그 차이는 기후에서 나오는데, 프랑스는 농경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보유한만큼 목초지도 쩌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단순히 목초지가 많은게 아니다. 진짜 겁나 많다. 여기 처음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캠퍼스 안에 조그만 잔디밭들이 많은데 잔디 퀄리티가 무슨 올림픽 축구경기장 뺨친다는거다. 프랑스엔 목초지가 많은만큼 소도 많았고, 잔디를 우걱우걱 먹은 소들은 우유를 쭉쭉 뽑아냈을거다. 냉장 보관 시설이 없던 시절 치즈는 잉여 우유를 장기 보관하는 수단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심어놓은 잔디도 잘 안 자라는 기후였던데다가 소가 그 정도로 흔하지 않았다. 가정에 소 하나 있으면 그게 온 가족을 먹여살리는 중요한 재산이라 됐다 하니 모든 가구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게다가 소는 음식을 위한 동물이었다기보다 농경을 위한 동물이라서, 한국소는 잔디나 뜯어먹으면서 우유나 뿜어내는 프랑스소와는 달리 팔자가 기구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보관할 우유까지 쏟아낼 힘은 없었을거다.


치즈 얘기를 하려고 시작한 포스팅은 아니다.(...기승전치즈?) 다만 치즈에서도 두 나라가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단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이런 차이 하나하나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대개 종교 역사 기후 이렇게 세가지로 원인이 압축되더라. 아무튼 결론은 역시 사람은 자기 세계를 좀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는거다. 그리고 나가서, 단순히 아 외국 좋다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완 어떻게 다른지, 왜 그렇게 달라졌는지, 이 나라의 가치들 중 무엇을 취할 것이고 계속 안고 갈 것인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흘러가는대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 2014.12.23
.  (3) 2014.12.16
전에 그렸던 것들  (0) 2014.11.08
.  (2) 2014.10.14
.  (3) 2014.09.26
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