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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3. 04:24 from 흘러가는대로

1. 귀국 완료


2. 출국 준비와 출국일에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요약하자면 1. 배낭 1개 + 짐가방 3개 (23kg, 12kg, 10kg) 2. 기관사의 운행 거부로 기차 취소됨 3. 1.로 인해 기차를 바꾸는 바람에 예약해뒀던 TGV 좌석표가 무용지물이 됨 = 복도에 쭈구려서 파리샤를드골까지 2시간을 감 4.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공항에 사람들이 겁나 많았음 5. 비행기 이륙 지연  


3. 한국이 어색해서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한때 친했지만 한동안 연락을 안 하다가 갑자기 만난 친구마냥 어색하다. 분명히 아는 풍경인데, 내가 있을 자리라는 느낌이 도무지 들질 않는다. 일 년도 안 나가 있었는데, 프랑스에 지나치게 적응을 잘 했던 것일까 생각해본다. 곧 좋아지겠지. 한때 두고 떠났던 이 모든 것들에 다시 익숙해지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지만. 


4.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한국으로 꼭 갖고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했던 가치는'여유'였다. 사실 이건 프랑스에서 배운 가치라기보다 내가 10개월 동안의 휴식기를 가지면서 익힌 거라 해야 맞을거 같다. 


한국에서의 삶은 항상 급박했다. 나는 항상 부족했고 항상 배우고 싶은게 너무 많았고 욕심도 많았고 또 자존심까지 세서 포기할 줄을 몰랐다. 기껏 대학교에 들어와서 야자와 학원에 묶였던 시간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는데,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얻은 자유를 도무지 어디다 써야할지 몰라했다. 결국 수학, 언어 학원에 등록하듯이 피아노, 재즈댄스, 알바, 헬스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로 내 일과표를 채워넣었고, 나중엔 호기롭게 벌려놓았던 일과표에게 오히려 주체성을 뺏겨버리고 말았다. 좋아서 시작했던 것들도 나중엔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내가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끝을 봐야 하는 일'이 되어 오히려 마음의 짐으로 변질되었다. 참고로 나는 휴학계를 내기 전 한 학기 동안, 18학점을 들었고 주5일 최소 3시간씩 프랑스어 학원에 다녔고 일주일에 한 번 보컬 수업(+연습),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수업, 일주일에 한 번 과외, 헬스를 했었다. 


프랑스에선 이 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딱히 프랑스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여유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우선 내가 프랑스에선 일을 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어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데 취미 강좌니 운동이니 할 겨를이 어딨는가. 어차피 일을 벌리지 못할 상황에 처해졌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여유로움=죄악'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좀 해방될 수 있었다. 결과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 실제로 얼굴이 펴지더라. 석회물로 매일 세수를 해댔는데도 피부가 좋아졌고 컨디셔너 없이 샴푸만 썼는데도 머릿결이 좋아졌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올 마음의 준비를 하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내 삶(공부/일)을 영위하면서도 최대한 여유로움을 지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 돌아가면 4학년이랍시고 취업 게시판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채워야할 부분이 뭘까 찾다하다보니 한국에 가서 해야할 리스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나는 영어 말하기 시험 점수가 없었고, 토익이 만료됐고, 엑셀을 다룰 줄 몰랐고 통계학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거기다 여기 와서 운동을 소홀리 해 자세가 안 좋아졌으니 돌아가자마자 요가를 시작해볼까 했고, 좀 더 재미있는 운동을 찾다가 폴 피트니스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한국가면 불어 유지하는 것도 문제일텐데 불어 학원도 알아봐야지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해야할 것들이 뿅뿅 나타났다. 


여유로움을 잃고 싶진 않은데, 정체되는 느낌도 싫었다. 그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사람 두 명에게 조언을 얻었는데, 한 명은 목표를 정하라 그랬다. 졸업 후에 취업을 할 건지, 그렇다면 어디에 취업을 할 건지, 아님 공부를 할 건지, 그렇다면 어느 나라로, 어느 전공으로 갈건지 이런걸 생각해보랬다. 원하는 걸 모두 건드려보기에 나는 시간이 별로 없단다. 그녀의 근거에 모두 동의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주장 자체는 분명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모르니 그냥 좋아보이는건 닥치는대로 해보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지인은 급한 일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라 했다. 다음에 할 수 있는건 다음으로 미루고 필요에 의해 지금 시작해야하는 것들만 고르란 말이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을땐 그냥 인정하고 포기하란다. 그 말을 들으니 막판에 하기 싫은걸 끌고 나가게 한 원동력을 결국 내 고집일 뿐이었단걸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추려낸 건

피아노, 달프 준비(독학), 불어 대화 수업(일주일에 한 번)    +엑셀(옵션)


적고보니 저것도 적진 않네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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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