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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8. 05:13 from 흘러가는대로


1. 시간이 무섭게 간다. 4월 1일엔 기분이 이상했다. 작년 바로 그 날, 프랑스 어학연수 기관에서 첫 수업을 했었다. 만우절이라 프랑스 만우절의 유래를 소개하는 텍스트를 읽었었는데, 집에 와서 모르는 단어를 줄치다보니 무려 프린트의 70%를 색칠해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선생님이 뭐라 하시는지도 안 들리고 일년 동안 공부한 양이 고작 이건가 싶어서 앞에 놓였던 8개월이 막막하게만 느껴졌었다. 이젠 꿈같은 얘기지만 지금도 방 구석구석에서 교통카드라던가 영화표 같은게 삐져나오면 내가 프랑스에 있긴 했었구나 싶다. 12월 말에 돌아왔는데 벌써 4월 중순이라니. 프랑스에선 어떻게 그렇게도 시간이 느리게 갔나 싶다. 그곳에서 품고 오고자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이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 잃어버렸다기보단 그 곳에서의 경험과 생각들도 이젠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떠날 땐 다시 못 돌아올까 그렇게 아쉬웠는데,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했던 것만큼 팍팍하진 않다. 내 집이라 편안하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재충전 이후에 다시 시작해서인지 요즘은 공부도 재미있다. (열심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2 시간이 무섭게 간다2. 얼마전 여지와 얘기하다가 우리가 알고 지낸지 올해로 9년째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9년이라니. 11살짜리가 스무살이 될 수 있는 시간이다. 그중 고등학교 생활이 3년 뿐이었다는 게 더 놀랍다. 그땐 왜 그렇게 다시 시작하는게 늦었다 생각했을까.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나이였는데... 


요즘 고등학교 때 들었던 노래들을 다시 꺼내듣고 있다. 나는 대학 입학 이후로 가요를 잘 듣지 않았으니, 내 평생동안 가장 활발하게 한국 가요를 들었던 시기의 노래들인 셈이다. 하나둘씩 찾아 들으니 그 시기에 들었던 다른 노래들도 꼬리물기식으로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 탐색전의 결과로 찾은 몇가지 팩트 :

- 아이비표 발라드는 7년이 지난 지금도 꽤 들을만함..

- 휘성의 With me는 무려 중1때부터 재수때까지 7년동안 내 엠피쓰리에 있었다.

- 하우스룰즈 1집. 존잘러 바로는 언더 뮤지션은 비쥬얼이 딸린다는 내 선입견을 상큼하게 깨주었었다. 

- 러브홀릭을 좋아했었나보다. 나도 생소함;; 심지어 러브홀릭 1집은 집에도 있더라.

- 클래지콰이 1, 2집

- 거미 노래도 꽤 들었었나보다. 노래는 좋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그닥 내 취향이 아니다.

- 난 거미보단 린이었다. ...사랑했잖아(노래방 가서 검색하려면 앞에 점 세개 붙여야 나온다)는 여전히 내 노래방18번이다.

- 아이돌 곡으로는 소녀시대-키씽유(1학년 겨울, 동아리 선배들 졸업할때 이 노래 맞춰서 춤 췄었음), 빅뱅-눈물뿐인 바보, 원더걸스-텔미(역시 수능 위문 공연으로 준비했었음), Anybody 


난 일기를 안 써서 그나마 과거의 기록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것들이 엠피쓰리 목록이다. 근데 어떤 기기든 한 번 쓰면 망가질 때까지 쓰는 버릇 때문에 들여다볼 수 있는 엠피쓰리가 없다. 고1때부터 재수할때까지 쓴 아이팟 1세대가 먹통인데 안에 기록들이 궁금해서 고칠까 싶다가도 그거 고치는데 돈을 쓸 가치가 있을까 싶어서 무한 보류 중. 


요즘은 어떤 일이든 돌이켜보면 억울하다거나 후회한다는 감정보다 사필귀정이었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크고 작았던 역경들이 지금의 날 만들었다. 현역 때 운좋게 대학을 합격했더라면 난 고등학교 때의 한심한 마인드에 대한 반성 없이 성인이 됐을테고, 그때 그 남자한테 호되게 차이지 않았으면 블로그를 열지 않았을테고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날 의지도 얻지 못했을거다. 다만 지난 15년간 내가 이뤄온 변화들을 긍정하는만큼 그 과정을 기록하지 않은 건 많이 후회가 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그래도 2013년 여름 이후의 기록은 이 블로그에 있다는거다. 더 늦어지지 않은게 다행이지. 요즘 글 쓰는게 소홀해서 미안하다. 시험만 끝나면 다시 예뻐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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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