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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17. 22:54 from 흘러가는대로

1. 어제부터 뜨거운 물에 레몬을 한 조각씩 넣어 한 컵씩 마시고 있다. 고작 어제 시작한거라 현재진행형 '~(하)고 있다'라고 쓰기 약간 민망하지만 앞으로도 그러겠다는 으ㅣ지의 의미로 써주었다. 물을 더 많이 마시면 피부 미인이 될 수 있겠지. 거기다가 레몬까지 넣었으니 비타민C까지 먹는거다. 심지어 맹물보다 맛있어! 헤헤. 이!너!뷰!티!


2. 요새 취미는 뷰티 유튜브 구경하기. 틈만 나면 침대에 누워서 남들 화장하는거 구경한다. 묘한 대리만족이 있다. 근데 생산적인 취미 같진 않은게,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되는지 내 얼굴에는 그렇게 안 해주게 된다. 재료가 없는건 아니다. 영상 보다가 뽐뿌 오는 건 야금야금 사들여서 웬만한 제품은 다 있다. 인턴할 땐 8시 출근이라 엄두를 못 냈고(화장은 무슨 그 시간엔 일어나서 세수하는 것도 내겐 하루하루가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었다), 요즘은 출근이 한참 늦어졌는데도 기상시간까지 덩달아 늦어지면서 여전히 준비시간이 빠듯하긴 마찬가지ㅎ 약속 있는 날엔 메이크업 영감을 받겠다는 핑계로 유튜브 틀었다가 남 화장하는 것만 잔뜩 구경하고 정작 내 얼굴에 분칠한 시간이 부족해진다ㅎ 한심..


3. 요즘 나는 무향무취의 인간 같다. 옷을 예쁘게 입지도 않고, 화장을 예쁘게 하지도 않고, 음악을 듣지도 않고, 책을 읽지도 않고, 신문을 읽지도 않고, 그냥 그날그날의 스케쥴만 따라가고 있다. 어제 김작가에게도 얘기했지만, 인생이 너무 심심하다. 뭐.. 내 인생이 언제 재미있던 적이 있었나. 나는 막상 누가 놀자 그러면 귀찮다. 근데 금요일밤 새벽까지 인터넷이나 뒤적거리는 내가 제 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봐질 때가 있다. 나는 왜 내 20대를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다. 사실 가끔은 아무 스파크 없이 안정적인 연애만 하다가 흘려보낸 내 20대 초반이 아쉬워질 때가 있다. 3월이라 방방곳곳에 신입생 냄새 폴폴 나는 어린애들 보면 저 때로 돌아가고 싶다기 보다는 나는 저 나이때 왜 더 불꽃 같이 보내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벌.써. 든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5년 뒤에도 지금의 날 보며 그 때 한번이라도 더 움직이지 그랬어 이 멍청아 라고 후회할 거 같다는 점ㅎ 그래. 그래야 나지. 고등학교 때 중학생 시절 나를 질책하고, 대학교 때 고등학생 나를 질책하고, 9학기에 신입생이었던 나를 질책하는 일. 심지어 매번 같은 내용이다 "그때는 전혀 늦지 않았어. 너의 장애물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너 자신이었을 뿐" 


가끔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나는 개방적인 집에서 자랐고,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나를 엄연한 인격체로 대해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나는 누구의 시선이 무서워 나의 자유로운 기질을 억누르면서 사는걸까. 


4. 그제 학교를 빼먹고 산부인과를 갔다. 산부인과를 가는 건 언제나 불편한 일이다. 김작가는 산부인과가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미혼여성이 산부인과를 갔을 때 받는 그 부정적인 시선을 오히려 즐긴다고 했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 나는 성인 여성이라면 누구나 산부인과와 친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산부인과가 싫다. 병원 자체를 누가 좋아하겠냐마는, 난 어린 시절 주사도 잘 맞았고 모두가 한번쯤은 공포심을 느낀다는 치과도 굳이 싫어한다고 느낀 적이 없다. 산부인과가 왜 그토록 싫은지 곰곰히 생각해서 얻은 답은 두가지 

1) 생식기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픈지 어떤지 내 눈으로 확인할 길이 전혀 없다. 그렇게 치면 모든 내과 계통이 그렇지만, 산부인과는 처음으로 내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신체 기관에도 질병이 있을 수 있음을 직접 깨닫게 해준 곳이다.

2) 미혼 여성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서 가는 느낌이다. <- 내 안에 숨은 보수성에 흠칫 놀란 부분


5. 역시나 오늘 밤도 너무 심심하다. 텀블러에 물이나 채워야지. 레몬워터나 한 잔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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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