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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7. 22:52 from 흘러가는대로



백년만에 근황을 적습니다. 교류하는 사람도 적었고 댓글을 남겨주시던 분도 몇 안 되지만, 요즘 다시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지라 이 근황은 십년, 이십년 후의 제에게 남기는 근황이기도 합니다. 오늘 친구 여지와 오랫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라고 했어요. 아침에 힘들게 일이나서 하루를 견디고 퇴근을 한 후 내 방 침대에서 두시간 스마트폰하는 날들이 쌓이니 한 달, 두 달이 정말 텅 빈 채로 지나가더라구요. 오늘 그 문장을 뱉으면서 다시 블로그를 할 때가 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3년 여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 문장을 썼었거든요. 모래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듯이 지나가는 시간을 한 번이라도 돌아보기 위해 기록을 할거라고. 


마지막 포스팅을 한 이후로 거의 반년이 넘어서 무엇부터 얘기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좋은 소식부터 공유하자면 취*뽀*했습니다. 사실 벌써 3개월 됐어요. 글 쓰는 걸 딱히 좋아한 적이 없고, 친구들과 다르게 독서를 많이 하지도 않지만, 어쩌다 보니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이 많고 한가지에 빠지면 계속 질문을 던지는 제 성향에는 잘 맞지만, 게을러서 독서를 미루고 여전히 정해진 분량에 맞추어 글을 쓰는 일을 스트레스 받아하는 저에게 완벽하게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든 것에 쉽게 싫증을 내고, 업무를 파악할 때 즈음 단점을 찾아 "알고보니 시시한 일"이라며 혼자 마음이 떠나버리는 제 성격을 생각하면, 3개월이나 했는데도 여전히 "잘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일은 많지 않을거라 생각해 감사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여전히 분량을 채우려고 텅 빈 워드 파일을 들여다 볼 때면 한숨이 먼저 나오지만요. 친구 김작가가 "새 문서를 보면 어서 그걸 채우고 싶은 생각 밖에 안 든다. 손가락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잡지 못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 저도 새 문서를 켜서 한숨이 나올때면 김작가 생각을 많이 해요. 나같이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왜 이 일을 하게 됐을까. 한 번은 선배가 저한테 "너는 평소에 어떤 글을 썼니?"라고 물어봤었어요. 당시 블로그를 안 한지 이미 몇 개월이 지난터라 제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자 선배가 "굳이 대답 안해도 돼. 근데 글에선 보여. 이 사람이 평소에 글 쓰는 걸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저한테 대놓고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라고 하시진 않았지만 사실 저한텐 하신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그 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언제부터 글쓰기를 싫어했을까.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얘기를 써서 최우수상을 받은 건 분명 좋은 기억인데, 왜 그 이후로 계속하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게 된걸까. 그러고보니 블로그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한 건 그 날일수도 있겠네요. 


사실 글을 쓰는 걸 좋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정해진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매일 일기를 한 장씩 써오게 시키셨는데, 그때도 아 이 빽빽한 줄들을 어떻게 채우나 싶다가도 한 번 주제 잡고 쓰기 시작하면 나중엔 할 말을 다 적지 못해서 구석에 글씨를 작게 구겨 넣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다음 페이지로 안 넘어가고 굳이 구석에 낑겨 넣었던 이유도 한 장 넘어가면 그 페이지도 다 써야할 거 같아서ㅎㅎ.. 역시 게으름은 어디 가지 않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저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역시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도 저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 시간들을 돌아보지 않고 제가 나아가는 방향을 점검하지 않으면 나중에 지나고 지나 뒤를 돌아봤을 때 과거의 경험과 당시의 제가 너무 낯설어질 것 같아서. 저는 사실 2년 전, 3년 전의 기억이 별로 없어요. 사진도 거의 없고 다이어리는 2개월을 넘게 쓴 게 없고 그나마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건 당시 들었던 음악이지만,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저장해두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기록은 아닌 셈이네요.


아무튼, 다시 기록을 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이 곳이, 제가 태어나서 가장 오래 기록을 남긴 곳이에요. 그마저도 많지 않았어서 민망하지만, 어쨌거나 기록은 누구에게 나 이렇게 많이 썼다 라고 보여주기 위한 공간은 아니니까요. 부수적인 효과로 "텅 빈 흰 창"에 대한 공포증도 조금 이겨내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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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