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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5

2018. 2. 26. 00:48 from 흘러가는대로

오늘도 무기력한 일요일 밤을 보내다가 생각없이 블로그의 링크들을 눌러보았다.


2013년에 가입해서 15년 정도까지 등록했던 사람들이다. 그중엔 아직도 기록을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고, 나와 마찬가지로 2016년을 기점으로 새 글이 안 올라온 것도 있고, 아예 도메인이 사라진 블로그도 있고, 이웃 수를 꽤나 모았는지 어느 한의원에게 팔려버린(!) 블로그도 있었다. 


몇 안 되던 지인들의 블로그는 모두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13-14년 무렵 서로 매일 새 글이 올라오는지 체크하던 대학동기는 바로 어제 우리집 근처에서 웨딩촬영을 했고 나는 도우미로 동행했다. 허리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라 걱정이 됐지만 이상하게 그녀의 부탁은 언제나 거절하기 어려웠다.


친구의 신랑은 둘이 사귀기 이전에 둘이 가까운 친구로 지낼 때부터 몇번 본 사이라서 촬영 자체는 꽤 즐거웠다. 사실 내가 무슨 도움이 됐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전날부터 잠을 설치고 몸 상태가 안 좋았다던 친구는 갈비뼈를 압박하는 드레스에 힘들어하다가도 카메라 앞에서만 서면 눈꼬리가 예쁘게 올라갔다. 나와는 항상 만나서 어두운 고민을 공유하던 사이라, 귀엽게 웃는 얼굴보다 내 머릿속을 읽어버릴 것만 같은 또렷한 눈, 예쁘게 w자를 그리는 입술을 뾰루퉁하게 다문 모습이 훨씬 더 익숙한 친구였는데. 그렇게 화사한 웃음을 몇 시간 동안이나 지속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면 애교를 부리지도 않고 (누가 내 친구 아니랄까봐) 손발이 오그라드는 모든 종류의 행동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웨딩사진 촬영 특유의 포즈들을 부담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웬 걸, 너무 잘하더라. 


촬영장에서는 학교 다니던 시절 즐겨들었던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다. 10cm, 프라이머리, 심규선 등등. 음악은 일부러 떠올리고 싶을때는 돌아오지 않는 과거의 감각들을 깨운다. 심규선을 들을 때 첫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방황하던 시간이 떠올랐고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가 흘러나올땐 대학교 2학년 때 쯤 합정을 걸어다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그제서야 대학 입학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느낀다.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되살아난다. 희미하지만 기억이 날 듯한 봄과 여름날들이 떠오르자 내 앞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너의 모습이 어색해졌다.


학교를 다닐 땐 항상 과 후드티에 옅은 화장만 하고 다니던 친구였다. 유난히 책과 영화를 사랑하고, 어린 나이에 독립해서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고 혼자 귀가하는 빈 집을 버거워하던. 동기들이 뿔뿔히 흩어지는 3학년 이후에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1학년에 처음 봤을 땐 서로를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그 친구가 졸업하기 전 마지막으로 같이 보낸 시험기간이 생각난다. 시험 보는 날 아침 둘이 한 열람실에 마주보고 앉아 편의점에서 파는 1+1커피를 나눠마셨었다. 그 커피 두개를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내 인스타그램에 남아있다.


학생 시절의 너는 예민하고 상처를 많이 받은 새 같았다. 바람을 맞아서 다치고 돌아오면 며칠을 힘들어하다가도 열심히 스스로 일어나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항상 궁금했다. 


그래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서 웃는 네가 예쁘면서도 조금 서운했다. 너에게 서운한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 시간이 서운했다. 너는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됐을까. 너보다 한살이 많은 나 역시 어른이 된걸까. 그 작은 교정에서 공강 사이에 커피를 나눠마시고 지하에 있던 작은 칵테일바에 앉아 세상에 대한 불공평을 쏟아내던 날들이 아직 내 머릿속에 있는데 너는 더 이상 후드티를 입은 대학생이 아니다. 살도 빠지고, 예뻐지고, 너의 옆에 너를 너무 사랑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싶어하는 남자친구가 있다. 


사실 그 남자친구가 생기고 나서 나는 마음을 많이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네가 필요할 때마다 네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미안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고 그동안 너를 대하는 게 죄스러웠다.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면서도 그걸 위해 실천하는 게 없는 내가 위선적으로 느껴졌었다.


너는 올해 결혼을 하면 이민을 간다. 간헐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겠지만 두 집안의 장녀와 며느리가 될테니 나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줄 수는 없겠지. 공강에 짬을 내서 얼굴을 보고 카페를 가던 시절은 갔어. 한때 새벽을 같이 나누던 그 친구도 없지 이젠. 웨딩드레스 입은 네 모습이 잠깐 너무 서운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건 그래서인가봐.


그래도 지수야 나는 네가 아주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한국이 아닌 그곳에도 너의 똘똘함과 재능을 알아줄 사람들이 더 많이 있기를. 그곳의 공기가 한국 특유의 무례함을 싫어하던 너의 숨통을 트여주기를. 그래도 역시, 불이 꺼진 차가운 현관에 들어서는 게 너무 싫었다고 했던 네가 사람의 온기가 있는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 게 나는 가장 기쁘다. 


사실 나는 웨딩드레스 입은 너를 보면서 학생 때 우리가 자꾸 생각나서 기분이 묘했어.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하진 못하겠다. 지나갔으니 내게 아련함으로 남아있는거지, 우리 둘에게 특히 너에게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던 걸 안다. 돌아오지 말고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쭉쭉 나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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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3

2018. 2. 23. 04:02 from 흘러가는대로

1. 너무 오랫만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반년마다 한번씩 웹사이트 개편되던데 티스토리의 편집 박스는 너무 변한 게 없어서 당혹스럽네. 실로 오랫만에, 학부 시절 썼던 글이 하나 읽고 싶어서 들어왔다가 노스텔지어에 휩싸여 버렸다. 헤더에 걸려있던, 목선이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이 그리웠는데 내가 언젠가 바꾼답시고 지워버렸던 게 생각났다. 아쉽다. 좋은 사진이었는데.


2. 요즘 부쩍 나에게 남은 것은 내 명함과 ㅇㅇ의 여자친구라는 포지션 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프랑스어 공부를 하지도 않고 음악을 잘 듣지도 않는다. 퇴근하면 지쳐서 사지도 않을 인터넷 쇼핑몰들과 네이트 판, 네이버와 다음의 흥미성 카페글들을 전전할 뿐.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으면서도 머리를 멈추게 하는 마약에 자꾸 빠져들어서 퇴근 후 꿀같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쏟아부은지 1년 반. 하지만 무채색 인간이 되어가는 그 기분 썩 좋지 않더라. 그래서 올해 목표는 내 mojo를 되찾는 일.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끼자고 다짐한 게 1월 1일인데 이제 구정 지나서 음력 새해에 변신을 시도하겠다는 다짐도 먹히지 않을 2월 말이 왔다. 심지어 겨울 다 가고 봄 직전임. 


3. 고백하자면 텀블러로 옮기려고 했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1) 티스토리 망하면 내 글들 다 날라갈까봐. 근데 용케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 같다. 2) 텀블러가 유튜브 영상 올리기 훠어어어어어어얼씬 편함. 그냥 버튼 하나면 돼. 티스토리는 글 작성-html-url복붙 등 프로세스가 많은데 말이지. 근데 지금 다시 보니 그런 수작업도 너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아님 나도 나이들어가니 점점 빨라지고 쉬워지는 것들에 지쳐가는 걸수도. 아 3) 트위터 중독됨(...) 그러는 동안 가끔 들어와서 쓰는 긴 글보다 생각날 때 짧게 쓰는 개소리 형식의 글쓰기에 더 익숙해진 듯하다. 티스토리 요즘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스마트폰 앱 너무 구렸어.. 인정하잖아...


4. 마지막으로 글을 쓴 날짜로부터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17년은 배신과 수치심으로 얼룩진 해가 되었다. 조금씩 회복 중이지만 나를 상처 준 피해자 옆에서 바로 작년에 있었던 일들을 "과거"로 치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쉽진 않다. 그래도 많이 왔고 정 가슴이 답답할 땐 정신적으로 채찍을 휘두르거나 실제로 싸대기를 날리고 있기 때문에 견딜만하다. 


5. 티스토리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일시적으로 드는데, 왜 그런진 모르겠다. 여기 있을땐 방문자도 그닥 안 늘고 텀블러와 달리 회원 수 자체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 많이 했었는데, 오늘은 애초에 그런 것들이 언제 중요했나 싶다. 애초에 내 안의 목소리와 내 취향, 내 20대를 담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으니까. 없어지지만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도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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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2

2017. 1. 2. 01:03 from 흘러가는대로

1. 입사 4개월 차인데 벌써 매너리즘을 걱정한다. 노력하는만큼 성장하고 인정받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누가 붙어서 일을 가르쳐 주진 않지만 물어보면 대답해주는 선배들이 있고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 반대하지 않는다. 동시에 게으름 피우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나태해지고 묻어갈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개인의 성장이 노력의 정도와 투자하는 시간에 철저히 비례하는 곳. 그래서 더더욱 내 세이프티존을 벗어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도전하고 더 많은 콜드콜을 해야 하는데, 천성이 게으르고 도전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쉽지 않다. 내 성격에 맞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 일이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들어서 포기할 마음은 없다. 더 성실하고 더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날 뿐. 그래서 올해 목표도 "공부"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부를 하는 것. 중학교 때부터 연례목표였고 재수 1년 빼고 현재 10년 째 실패하는 중(...) 독서와 공부가 더 이상 "잘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직업의 일부가 됐으니 진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내 게으름 이걸 대체 어떡하면 좋을까. 


2. 오늘 세배하려고 친가가 모두 모였었다. 기억나는 것 몇가지:

할아버지: 일은 재미있니? (내가 어떻게 일이 재미있겠냐고 하자 인상을 찌뿌리며) 그래도 일은 재미있게 해야돼. 재미가 없다면 재미가 있게 만들어야지.

--> 왜 나는 내 일이 자신있게 재미있다고 말하지 못할까? 어떤 부분이 재미있지 못한거지. 내가 최선을 다 하고 있지 않아서인가. 내 일은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뭘 해야하지

작은 숙모: 너희가 모두 멋진 커리어우먼이 됐으면 좋겠어. 지금도 각자 자기 영역대로 잘 해나가는 것 같지만. 가족, 아이들- 여자는 자기 일을 하면서도 힘들면 도망칠 구멍이 많아. 위기가 오더라도 그 구멍에 빠지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일과 원하는 바를 이루어나갔으면 좋겠어.

--> 손녀들이 절대다수인데다 며느리 넷 중 셋이 자기 일을 하는 우리 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새해덕담이다. 이거와 비슷한 맥락으로 기억나는 조언은 얼마 전 만났던 헤드헌팅 회사 대표님. 내가 구상하는 커리어패스를 들으시더니 젊을 때 꼭 공부하러 나가라고. 그리고 의외로 여자애들이 애인과 남편에게 발목이 잡히는데 절대 그렇게 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돈과 커리어를 쌓아서 꼭 나가서 공부하리라는 계획을 갖고 있는 내겐 새삼스럽게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마음 속으로 떠날 생각을 놓지 못했으면서 20대 후반의 남자친구와 계속 만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일까. 취직 전에 2-3년 뒤에 유학가고 싶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 이후로 어려워졌다. 내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그 계획에서 유학이든 일이 됐든 외국으로 나가는 일은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끼어있는 목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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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18

2016. 12. 18. 22:47 from 흘러가는대로


1. 오늘 오후에 낮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꿨다. 무한도전이 우리 직장에 와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포장지로 싼 선물들을 한 방 가득 채워넣어주더니 선물을 골라가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큰 사이즈의 상자를 내가 들고 가도 되는건가?""두 개 이상 들고 가도 되는건가? 그럼 누군가는 못 가져가게 될텐데.." 등등 뭘 골라야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다 뺏겨서 결국 잔챙이 크기의 상자 하나만 들고 가게 되었다.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모르겠지만 일어나서 여러모로 내 인생이 집약된 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찝찝했다.

2. 저녁을 먹은 이후의 일요일 밤 약 8시 반부터 어떻게 하면 남은 주말의 3-4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내 수 있을지 고민한다. 지난 몇 달 간 매주 고민했지만 그 중 70%는 고민한답시고 누워서 핸드폰하다가 그냥 잠들었음. 오늘은 마음을 고쳐먹고 살짝 화장을 한 다음에 집앞 카페에 왔다. 근데 여전히 뭘 해야할지 모르겠음.. 집을 나오기 전엔 카페에 오면 뭘 해야할지 눈 앞에 쪽 펼쳐질 줄 알았는데.

3. 직장인이 되고 나서 나는 아빠가 내게 것과 같은 수준의 풍요로움을 내 아이들에게 주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 월급과 직군을 생각했을 때 나는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아빠와 비슷한 소득은 얻기 힘들 것이고 무엇보다 아빠와 비슷한 직급까지 올라가는 것도 많이 힘들거란 생각. 돈이 새어나가는 습관을 먼저 고쳐야 할 것 같다. 카페도 줄여야 할 텐데..

4. 블로그를 안 한 기간에 기록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 중에 가장 아쉬운 건 프랑스 여행기를 안 적은 것이다. 내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었는데, 정말 많은 걸 느끼고 정리하고 결정한 시간이라 기록하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지금 기억나는 것들이라도 언젠가 날 잡아서 써봐야겠다. 

5. 사실 많은 지인들에게 얘기 안 했지만, 3개월째 영화 팟캐스트에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남자친구에게도 비밀임) 그거때매 가끔 퇴근 후에 혼자 심야 영화를 볼 때가 있는데, 가장 최근 영화관 갔을 때 급 땡겨서 먹었던 나쵸가 자꾸 생각난다. 그땐 콜라랑 먹었는데 맥주를 시키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다음에 가면 음주영화감상 도전할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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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stic - Moses Sumney

2016. 12. 13. 01:51 from 듣고

사실 요즘 음악을 잘 안 듣는다.
나는 애초에 한 자리에 앉아서 앨범 하나를 틀어놓고 한시간 동안 그것만 음미하는 타입은 아니다.
진짜 음악 애호가 라고 불리려면 그런 방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한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있는 거 자체가 힘든 사람이고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놓인 다른 일들이 항상 너무 많았다. 
오히려 바쁘게 돌아가는 내 일상에 음악은 잠시나마 공상에 빠지게 도와주는 배경음악 같은거였는데
요즘은 절대적인 시간보다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한 변인이었구나 싶다.

대학생 땐 바빴지만 책임질 것도 없었고 조직에 속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뭐 몸은 바빴지만 가끔 음악 들으면서 혼자 내 삶을 영화라고 생각하는 상상이 가능했지. 

하지만 사회인이 된 지금은 데드라인에 쫓기지 않는 순간에도 쉽게 마음이 놓여지지 않아서 배경음악을 까는 것이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조직의 막내란 전혀 영화스러운 구석이 없어.


그래도 근래 들었던 노래 중에 가장 위로가 되었던 곡이라 오늘은 올린다.

My wings are made of pla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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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2016. 12. 6. 23:02 from 흘러가는대로

하루는 아빠한테 카톡이 왔다.


"오늘 아침 먹고 나갔니? 냉장고에 바나나 있는데"


응. 먹고 나왔어! 아침을 안 먹으면 오전 업무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구 그때가 제일 지시도 많고 긴박한 시간이라 흑흑


"흑흑이 뭐야? 일하는 건 행복한 일임"


나도 아빠처럼 철인이었으면 좋겠다.


"아빠는 체질이 좋기도 하지만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듯. 그스도 어딘가 그게 있을거야, 아빠 딸이니까"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대체 어디 숨어있는거지 20년째^^.. 아빠는 스트레스 관리를 따로 해?


"아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기다림 정도.."


어디까지가 최선을 다하는 건데? 무슨 일이든 더 많이 할 수 있고 더 채우고 더 푸쉬할 여지는 있잖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성에 안 찰 때가 많아. 너무 기준이 높아서 스스로 스트레스 받는건가 싶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성에 안 찬 이후에야말로 뭐가 모자랐는지 파고 들어야지. 그래야 그 다음에 성이 차. 사람들은 미진한 게 있더라도 그 순간 지나면 또 넘어가. 매번 다른 일이 있다는 핑계로. 언제나 뒤를 돌아보고 자기 약점을 없애가는 게 프로야."


호오.. 좋아 멋있는 마무리였어.


"지금은 모르는 게 워낙 많아서 다 알아볼 시간이 없을거야. 하지만 하루에 한 가지 의문만 풀어도 1년 지나면 많이 쌓일걸~"



또 명언 하나:

아빠 근데 나 돈 모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펀드나 저축은행 같은 생각함)


"그냥 은행에 넣어."


ㅠㅠ그냥 예금?


"ㅇㅇ벌어서 안 쓰는게 남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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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7. 22:52 from 흘러가는대로



백년만에 근황을 적습니다. 교류하는 사람도 적었고 댓글을 남겨주시던 분도 몇 안 되지만, 요즘 다시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지라 이 근황은 십년, 이십년 후의 제에게 남기는 근황이기도 합니다. 오늘 친구 여지와 오랫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라고 했어요. 아침에 힘들게 일이나서 하루를 견디고 퇴근을 한 후 내 방 침대에서 두시간 스마트폰하는 날들이 쌓이니 한 달, 두 달이 정말 텅 빈 채로 지나가더라구요. 오늘 그 문장을 뱉으면서 다시 블로그를 할 때가 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3년 여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 문장을 썼었거든요. 모래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듯이 지나가는 시간을 한 번이라도 돌아보기 위해 기록을 할거라고. 


마지막 포스팅을 한 이후로 거의 반년이 넘어서 무엇부터 얘기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좋은 소식부터 공유하자면 취*뽀*했습니다. 사실 벌써 3개월 됐어요. 글 쓰는 걸 딱히 좋아한 적이 없고, 친구들과 다르게 독서를 많이 하지도 않지만, 어쩌다 보니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이 많고 한가지에 빠지면 계속 질문을 던지는 제 성향에는 잘 맞지만, 게을러서 독서를 미루고 여전히 정해진 분량에 맞추어 글을 쓰는 일을 스트레스 받아하는 저에게 완벽하게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든 것에 쉽게 싫증을 내고, 업무를 파악할 때 즈음 단점을 찾아 "알고보니 시시한 일"이라며 혼자 마음이 떠나버리는 제 성격을 생각하면, 3개월이나 했는데도 여전히 "잘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일은 많지 않을거라 생각해 감사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여전히 분량을 채우려고 텅 빈 워드 파일을 들여다 볼 때면 한숨이 먼저 나오지만요. 친구 김작가가 "새 문서를 보면 어서 그걸 채우고 싶은 생각 밖에 안 든다. 손가락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잡지 못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 저도 새 문서를 켜서 한숨이 나올때면 김작가 생각을 많이 해요. 나같이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왜 이 일을 하게 됐을까. 한 번은 선배가 저한테 "너는 평소에 어떤 글을 썼니?"라고 물어봤었어요. 당시 블로그를 안 한지 이미 몇 개월이 지난터라 제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자 선배가 "굳이 대답 안해도 돼. 근데 글에선 보여. 이 사람이 평소에 글 쓰는 걸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저한테 대놓고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라고 하시진 않았지만 사실 저한텐 하신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그 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언제부터 글쓰기를 싫어했을까.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얘기를 써서 최우수상을 받은 건 분명 좋은 기억인데, 왜 그 이후로 계속하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게 된걸까. 그러고보니 블로그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한 건 그 날일수도 있겠네요. 


사실 글을 쓰는 걸 좋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정해진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매일 일기를 한 장씩 써오게 시키셨는데, 그때도 아 이 빽빽한 줄들을 어떻게 채우나 싶다가도 한 번 주제 잡고 쓰기 시작하면 나중엔 할 말을 다 적지 못해서 구석에 글씨를 작게 구겨 넣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다음 페이지로 안 넘어가고 굳이 구석에 낑겨 넣었던 이유도 한 장 넘어가면 그 페이지도 다 써야할 거 같아서ㅎㅎ.. 역시 게으름은 어디 가지 않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저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역시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도 저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 시간들을 돌아보지 않고 제가 나아가는 방향을 점검하지 않으면 나중에 지나고 지나 뒤를 돌아봤을 때 과거의 경험과 당시의 제가 너무 낯설어질 것 같아서. 저는 사실 2년 전, 3년 전의 기억이 별로 없어요. 사진도 거의 없고 다이어리는 2개월을 넘게 쓴 게 없고 그나마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건 당시 들었던 음악이지만,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저장해두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기록은 아닌 셈이네요.


아무튼, 다시 기록을 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이 곳이, 제가 태어나서 가장 오래 기록을 남긴 곳이에요. 그마저도 많지 않았어서 민망하지만, 어쨌거나 기록은 누구에게 나 이렇게 많이 썼다 라고 보여주기 위한 공간은 아니니까요. 부수적인 효과로 "텅 빈 흰 창"에 대한 공포증도 조금 이겨내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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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소년이 온다 - 한강

2016. 4. 25. 22:02 from 읽고

* 추천해준 친구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내게 추천해주기까지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첫번째 장을 끝마치기도 전에 친구를 원망했다. 초반부터 먹먹하게 만드는 이런 책을 읽어서 남는 게 슬픔 밖에 더 있나. 픽션은 해피엔딩을 기대라도 할 수 있지. 이미 누구나 끝이 절망임을 알고 있는 사건을 다루는 책에 어떻게 위로가 있고 어떻게 감동이 있을 수 있냐고. 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한 이상 끝까지 읽어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끝까지 읽어야 조금의 위로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다. 괴롭다고 중간에 그만두면 수치심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나라의 국민이 나라는 게 부끄럽고, 국민에게 총을 겨누라 지시했던 추악한 사람이 멀쩡히 살아 자기 통장에 2십만원 밖에 없다고 호소하는 꼴을 봐야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라도 작가가 끝에 무슨 말을 할 지 읽어봐야했다. 후반부에선 너무 울어서 마스카라가 번졌는데 그것마저도 부끄러웠다.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었다. 마음이 아프다고 근현대사 배우기를 피해온 나에게 더더욱 부끄러운 책이었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어도 크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작가 에필로그를 읽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게 한결 수월해지긴 하더라. 읽는 게 힘겨운 이 책을 작가는 단어 하나하나 선택해가며 마주했을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더 잔인하게 기록과 기억들을 파헤쳐야 했을까. 이 책이 엑기스라면, 책에 담기지 못한 진실들, 그리고 진실로 증명되지 못하고 잊혀졌을 수많은 개개인의 이야기가 얼마나 두껍게 5.18 라는 역사를 에워싸고 있을까. 36년이 지났다. 하나의 사건이 역사로 자리잡을 수 있을만한 시간은 못 된다. 그래서일까 20세기에 태어난 내 의식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는 내게 역사보다 정치성향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나라의 군대가 국민에게 총을 겨눈 일을 두고 어떻게 좌파와 우파를 나눌 수 있는가. 잊지 말아야 한다 계속 얘기해야 한다. 50년이 흐르고 100년이 흐르고 광주가 역사가 되는 순간까지. 


* 집단적인 광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은 어디까지 포악해질 수 있는가. 어느 정도까지 폭력에 무뎌질 수 있는가. 맹목적인 복종과 그에 따른 처벌 혹은 보상만이 존재하는 집단에서 개인의 이성은 얼마나 마비될 수 있는가. 전쟁으로 폭력을 내면화한 군대가 총을 자국민에게 겨눴다. 그렇다면 죄는 군대에게 있는가 전쟁에게 있는가. 전쟁은 누가 시작한건가. 전쟁을 결정하고 군대를 파견한 국가의 수뇌부에게 원망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갈등의 당사자도 아니었던 국가가 자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것은 나라가 약해서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라가 약한 것은 누굴 원망해야 하는가. 


*여러모로 삼키기 힘든 소설이었다. 다시 읽을 순 없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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