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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9.11.24 kennytheking - Lemonade

210713

2021. 7. 13. 04:42 from 흘러가는대로 /.

1. 만 서른이 된지 4시간하고도 30분이 지났다.

 

2. 새벽을 사랑한다. 모두가 잠들고 나와 어둠만 내려앉는 시간. 같은 음악을 들어도 밤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울림이 다르다. 귀가 예민해지고 머리에 구름이 꼈듯이 몽롱해지는 이 구간은 너무 짧다. 3시를 넘기면 해는 금방 뜬다. 4시 반을 넘기면 그 다음날은 30% 실패한 하루가 된다. 잠만 제때 잘 잤어도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을텐데 새벽의 유혹은 너무 크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온전히 나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 모두가 잠들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미안할 필요도 없고 기대에 부응할 필요도 없고 수행해야할 역할도 없다.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감각, 내 욕망에만 집중할 수 있다. 망가진 수면패턴 때문에 노화가 빨리 오는 한이 있어도 새벽은 포기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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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2

2021. 6. 17. 23:15 from 흘러가는대로 /.

오늘 두번째 상담을 다녀왔다. 한시간 안에 나를 분석하기 위한 기본 사안들은 다 알려주고 나오겠다는 다짐으로 한 마디 한 마디가 다분히 계획적이었던 첫날에 비해 오늘은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다 나왔다. 듣기만 하셨던 첫날과 달리 오늘은 선생님이 중간에 질문을 조금 던지셨고 그 중 깨달음을 준 것들이 있어서 기록한다. 

 

최근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답을 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거짓말했던 사건을 말하자 선생님은 자라면서도 부모님이 원하는 딸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엄마와 아빠는 한번도 나에게 특정한 행동 양식을 강제한 적이 없기 때문에 거짓말로 나를 포장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 손을 타지 않고 무엇이든 나 혼자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엄마가 원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부모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처럼 굴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확실히 벅찼다. 나는 타고나길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내가 응당 부모에게 받아야 하는 간섭을 받지 못한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형태만 다를 뿐,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아이처럼 굴도록 스스로를 채찍질 한 것 역시 내 의사와 반대로 타인이 원하는 모습에 나를 끼워맞춘 행동이라고 했다. 

 

동네와 국경을 오가면서 자주 전학을 다닌 나한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튀지 않는 아이가 되는 것. 어딜 가든 무리에 스며들도록 내 색깔을 지우는 것. 누구도 날 싫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미국에서 영국으로 전학간지 한달만에 발음을 바꿨던 나는 아빠한테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어"라고 했다고 한다. 그게 내 청소년기였다. 

 

잦은 전학으로 얻었던 친화력, 적응력, 포용력과 영어실력은 내 강점이 됐지만 타인의 평가에 대한 취약성, 비판에 지나치게 수용적인 것과 자기의심은 평생의 숙제가 되었다.

 

상담을 하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수록 어렸던 엄마 아빠의 미숙함을 마주한다.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지만 내 예민함과 결핍을 채워주진 못했다. 원망스럽진 않다. 무지를 원망할 순 없으니까. 기질적으로 내가 동생보다 예민한 아이였던 것을 두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듯이.

 

하지만 털어놓을수록 마음이 아프다. 엄마와 아빠는 최선을 다했지만 내게는 충분하지 않았고, 그들이 했던 선택과 행동의 결과로 나는 평생 안고가야 할 짐들이 생겼다는 것이 그렇다. 한때 성인이 되는 것은 부모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고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도 아직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기억들이 있나보다. 

 

그걸 인지하고 내 주변사람들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정도 인거 같다.

 

20년을 "나는 왜 이런 사람인가"를 고민해왔는데도 아직도 나에 대해 배울 게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런 얘기를 한참 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든 생각: 꾸밈없이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한가? 가족들, 남자친구, 친구들 나는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해왔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 억눌려서 사는 사람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외국에만 나가면 해방감을 느꼈던 건가 싶다. 아무도 내게 말로 어떻게 행동하라고 시키지 않는데 알아서 끼워맞추는 삶.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한번쯤은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그 어떤 안전망도 없이 인생의 바닥을 기어봐야 온실 속 화초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제 진짜 독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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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0

2021. 6. 11. 00:56 from 흘러가는대로 /.

1. 상담을 다녀왔다. 50분 안에 마음에 담아놓고 있던 얘기를 얼마나 꺼낼 수 있을지, 앞으로 이어질 긴 대화들의 화두 정도만 풀어놓고 와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초석 정도는 깔고 나온 거 같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이걸 어떻게 다 혼자 안고 지냈냐고. 나는 평소에 친구들과 많이 얘기했기 때문에 괜찮았다고 항변하다가, 문득 내 이야기에 등장한 당사자들과는 한번도 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2. 어제 백신 맞았다. 주변 사람들, 건너건너 맞은 사람들 다 조금씩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 없었다. 다만 오늘 오후가 되니 몸이 무거워져서 드디어 백신효과가 나오나 했는데 밤에 비가 와서 원인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열이 안 난 걸로 보아 비 영향이 더 컸던 거 같은데 백신 맞은 덕에 오늘 유급휴가를 받았으니 예상치 못한 꿀빨데이였다고 할 수 있겠다. 

 

3. 퇴사가 한달 남은 시점. 이제 신변 정리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어벙벙하다. 이러다가 인사도 다 못하고 떠날 거 같다. 하나같이 고마운 사람들. 

 

4.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려고 한다. 사는 공간이 주는 삶의 만족도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다. 오디오, 1인 소파, 큰 창에 하늘이 보이는 깔끔한 집. 방은 두개 정도. 이 정도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많이 어려운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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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7

2021. 5. 27. 18:38 from 흘러가는대로 /.

강남 CGV 뒤 코코이찌방야로 시작하는 작은 골목 카페에 앉아있다. 이 골목에서 2013년을 통째로 보냈다. 대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방학부터 골목 초입 건물 2층이었던 학원에 주5일 나가면서 프랑스어를 배웠다. 이문동에서 역삼동까지 버스를 타고 다시 갈아타는 1시간의 강행군을 감행하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는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뭐에 홀려 그렇게 불어를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이듬해 8개월 간의 어학연수 끝에 애정은 시들해졌지만 아직도 이곳에 오면 그렇게 2013년이 애틋하다.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다. 프랑스어보다 학원을 간다는 그 행위 자체에 집착했던 거 같다. 생애 첫 남자친구와의 이별, 강렬했던 짝사랑, 자기혐오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빼먹지 않고 학원을 다녔다. 최후의 보루. 이것마저 포기하면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게 아무것도 안 남을터였다. 매일 보는 선생님, 3명의 친구들 모두 사랑했다. 무언가에 몰두할 동안에만 심장박동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계속된 다이어트 때문에 몸이 망가져도 사투를 벌이듯이 학원을 갔다. 중간에 입원했던 8월의 딱 일주일 빼고 그 다음해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3월까지. 그 시간을 같이 했던 사람들은 지금 봐도 애틋하다.

 

벌써 8년이 넘게 흘렀다. 이 골목에만 들어서면 그때로 돌아갈 수 없어서 아쉽다. 학원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1층엔 코코이찌방야가 있다. 아직도 그 계단을 올라가면 선생님이 검지를 들어 불어 테이프를 켜실 거 같다. 그건 젊음이 부러운 것과는 확실히 다른 감정이다. 그리움.

 

그 이후로 20대를 통째로 보낸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 온전히 혼자 20대를 보낸 짧은 8개월.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나를 온전히 사랑하려고 애썼던 시간이라 더 길게 보내지 못해서 아쉽다. 외로웠던 감정만큼 책, 음악, 영화 모든 종류의 컨텐츠를 스펀지마냥 흡수하고 빠져들었었다. 그 나락에서 겨우 혼자 힘으로 설 수 있게 됐을 때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됐을까. 

 

궁금하지만 가정일 뿐이니까 답은 평생 알 수 없겠지. 2014년엔 되돌릴 수 있는 가정이었겠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아니다. 그때 했던 결정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학원을 다니다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 프랑스 어학연수 중 이 업에 종사할 꿈을 처음 품었고 그 해 만난 남자친구와는 너무 오래 만나 나는 이제 그에 대한 설명없이 묘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2013년은 전반적으로 그런 해였다. 충동적으로 했던 결정들이 지금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정해버린. 나는 그 이후로 인생을 계획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어떤 우연이 미래를 만들지 알 수 없으니까. 인생은 그때그때 한 선택들의 결과를 책임지고 수습하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 

 

이 골목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거 같다. 나의 2013년과 현재가 항상 뒤섞여 있는 공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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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8

2021. 2. 19. 00:08 from 흘러가는대로 /.

스스로 글 쓰는 걸 즐긴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빈 종이는 항상 바다 같았다. 너무 광활해서 막막한. 초등학생 땐 백일장 원고지, 고등학생 땐 논술답안지, 대학생 땐 한글 프로그램을 띄운 컴퓨터 화면, 내겐 다 똑같았다. 텅 빈 종이라는 건 너무 힘들어서 한 자도 안 쓰고 멍 때리는 시간으로 시작했다. 글 쓰는 게 직업이 된 지금도 이 고사 지내는 시간은 변함없다. 김작가가 머리 속에서 단어와 문장이 마구 떠오르는데 그걸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못 따라간다고 했을 땐 충격적이었다. 쟤는 종이가 넓다고 느낄 새도 없겠구나. 

 

그래도 기억 나는 순간들은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 탔던 백일장 최우수상. 내 초중고 통틀어 가장 큰 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내내 숙제로 쓴 일기장. 줄 간격이 1센치 남짓한 공책을 처음 쓰는거였는데 주제 하나 잡아 한두줄 쓰다보면 한 페이지 꽉꽉 채워지는 게 신기해서 열심히 써 냈었다. 대학교 1학년 땐 서양 문화와 영화란 교양을 수강했었다. 수업 시간엔 영화만 보여주는 꿀 교양이었는데, 출석과 수업 당일날 내는 반페이지짜리 영화 감상문에 학점이 달려있었다. 꼭 당일날 제출하는 과제에 반항심을 느끼면서도 쥐어짜다보면 매번 스스로 그럴듯하다 싶은 글을 제출했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밖에 나갈 수 없게 되자 퇴근 후 침대에서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음악도 듣고 유튜브도 보고. 말라버린 해초같이 저녁 시간들을 흘러보내길 몇 달, 요즘 들어서야 내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 누가 주제만 잡아주면 신나게 써내려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근데 돌이켜보니 써야겠단 의무감으로 종이를 폈어도, 몇 줄 써내려가다보면 공간이 채워져있고 그랬더라. 그래서 오늘은 글쓰기에 대한 글을 썼다. 대학교 졸업할 무렵엔 글빨이랄 게 좀 있었던 거 같은데 역시 많이 무뎌졌다. 잘 하기보다 몸을 움직였단 것 자체에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날도 있어야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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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7

2021. 1. 18. 00:49 from 흘러가는대로

1. 2020년이 그렇게 가 버린 걸 아직 납득할 수 없는데, 2021년의 첫 달이 반이나 지나갔다는 건 정말 믿고 싶지가 않다.

 

2. 올해 만으로 서른이 된다. 28, 29에 이대로 20대가 끝나는 걸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거짓말 같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니 설렘만 남았었다. 성인으로 보낸 첫 10년을 뒤로 하고 30대로서 10년을 써내려갈 빳빳한 새 종이 한 장을 얻은 느낌. 20대를 시작했을땐 미숙했고, 나조차도 나를 몰라 우와좌왕했었다. 하지만 서른이 된 나는 커리어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중요한 것, 잘하고 싶은 것이 뭔지 이젠 안다. 앞으로의 10년은 더 잘 써내려갈 수 있을거야.

 

좋은 선택들로만 채우고 싶다. 인생이 매번 평탄하게 흘러갈 순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정신줄만 잡고 있으면 무언가는 얻어갈 수 있다. 사람이든, 평판이든, 자신감이든, 하다못해 교훈이라도. 요즘 그게 내 가장 큰 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잃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여기서 하나라도 더 얻어 나가야 된다고 밀어부치는 것. 20대엔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크게 성장했고, 그때마다 나에 대해 하나씩 배워갔다. 그렇게 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같은 어려움에 처하지 않게 된다면 그 어려움은 결국 득인거야. 

 

3. 30대가 반가운 이유가 20대를 알차게 보낸 덕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감사하게도 존경할 수 있는 선배들과 안정적인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아 6년차가 됐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실력도 쌓았고 직장에선 핵심멤버로 인정받았다. 그 자신감으로 얻은 단단함이 드러나는 게 느껴진다. 지금 내 얼굴에선 여전한 호기심, 20대에 한 자기관리, 커리어로 쌓은 자신감이 모두 보이는 거 같다. 30대의 얼굴에도 지나온 삶이 새겨지는구나 싶었음.

 

4. At the end, only three things matter: how much you loved, how gently you lived, and how gracefully you let go of things not meant for you.

 

5. 가장 최근 뉴스: 거리두기+재택근무로 미루고 미뤄온 연차를 지난주에 썼는데 화요일에 골프 연습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수요일부터 누워만 있었다. 중간에 ㅅㅇ이네 홈파티 다녀온 거 빼고. 사실 나조차 지난주 날짜로 휴가 적어낸 걸 잊고 있다가 그 전 금요일에 부장의 리마인드로 급작스럽게 알게 되었는데, 카페도 닫고 할 것도 없어서 좀 짜증이 났었다. 근데 결과적으론 누워만 있게 돼서 차라리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외적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라고 자기위로 하게 됨. 그 덕에 누워서 진짜 잘 쉬었다. 그리고 내일 출근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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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글을 단 한 개도 쓰지 않았다니. 2013년 블로그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포스팅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은 해가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쉰 것도 안 쉰 것도 아닌" 모든 게 애매한 해였지만, 내게 무척이나 필요했던 휴식을 길고 얇게 받은 것 같은 그런 1년이었다.

 

그럼에도 정리하는 의미에서 정산을 해본다. 

 

1월 - CES 2020을 다녀왔다. ㅁㅁ선배가 퇴사하기 전, 이 일을 하면서 한번은 다녀와야 한다고 했던 전무후무한 테크 행사. 자동차 회사의 멤버로 참석했는데, IT 역시 내 담당이었기 때문에 꾸역꾸역 전자회사들의 행사도 기웃거리다 왔다. 오후에 구경하고, 정해진 스케쥴 틈틈히 다른 회사들 부스 다녀오고 얼굴 도장도 찍고. 밤새 기사를 쓰고,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호텔 아침 식사를 넘기던 그 4일이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다. 몸은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쓰고 또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면서 본 재미있는 것들을 내가 느낀 만큼이나 흥미롭게 글로 풀어내기 위해 머리를 싸맸던 그 시간이 너무 감사했다. 우리 팀이 전체 하는 일과 중 3분의 1을 일주일 내내 소화해냈다. 그건 나를 위해서기도 했지만 우리 회사로선 직원을 CES에 보내는 게 n년만이었기 때문에 내가 잘하고 성과를 내야 내년에도 누군가에게 기회가 갈 거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때문에 CES 전체가 온라인 행사가 됐기 때문에 그 누군가의 다음 기회는 오지 않았다. 

 

CES로 라스베가스에 머물던 그 며칠 새에 대학원 두 곳에 원서를 넣었다. 미리미리 했으면 문제 없었을 터인데 나는 그런 위인이 못되지. 출장을 가서 이동 버스 안에서도 원서를 쓰고, 다른 멤버들은 시간 떼우라고 아울렛에 내려줬을 때에도 나는 벤치에 앉아 쓰고 고쳤다. 마지막엔 거의 울다시피 했던 거 같다. 친구들에게 고맙다. 나같이 게으른 징징이의 칭얼거림도 참아주고.

 

정신 없이 며칠을 보냈지만, 결과적으로 출장은 성공이었다. 임무는 맡은 바 이상으로 해냈고, 대학원 원서도 무사히 넣었고, 분실물은 카드 두개 뿐이었다.

 

4월 - 지원했던 학교 두 곳 다 합격했고 장학금도 받았다. 조금 긴가민가했지만 솔직히 합격은 자신 있었다. 장학금은 의외였다. International student, 그것도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후보생에게 그렇게나 많은 장학금을 줄 줄은 몰랐다. C대학에선 학비의 반이 조금 안 되는 장학금을 제안 받았고 N대학에선 fellowship을 받았는데, 돈 밝히는 이미지의 N대학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서 뿌듯했다. 

 

그 당시엔 합격 자체보다, 지난 3년 간 해온 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인정 받은 기쁨이 더 컸다. 한국에 기반을 두고 영어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꾸준히 느껴온 한계가 미국 대학원을 지원한 큰 계기였다. 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두 학교가 장학금을 제안한 건 훈장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코로나 때문에 두 학교 모두 가을에 입학하지 못했지만, 2019년 내내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던 내게 대학원 합격 통보는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딱 그 시기에 입사한지 1년이 갓 된 후배가 경쟁사로 이직을 했다. 회사에 기둥이 하나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였고, 선배로서 그를 지키지 못했단 죄책감, 내가 선배로서 부족했기 때문에, 본받고 싶은 선배가 아니었기 때문에 떠난 게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동시에 나마저 대학원으로 빠지면 우리 팀은 어떡하지, 라는. 회사와 개인의 삶을 분리하지 못한 4년차 병아리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만 생각해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냉철하게 굴지 못했다. 

 

마침 그 시기에 코로나가 아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도 확산이 심각해져서 겸사겸사 가을에 출국하는 걸 무르게 되었다. 

 

이후 - 미국에 가는 걸 미루기로 결정한 순간부터는 순탄했다. 퇴사한 후배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입시 학격으로 얻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2019년보다 훨씬 안정적인 정서에서 일할 수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게 60%인 일이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고 없고는 업무 피로도에 큰 영향을 줬다.

 

초년생 땐 모르는 게 있어서 거래처에 전화를 할 때면 "이것도 모른다고 속으로 업신여기지 않을까" 걱정 했었는데, 이젠 "내가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거야"라는 뻔뻔함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한지 만 4년. 항상 나보다 최소 5년은 더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거래처로 만나기 때문에 20대 중반이라는 내 나이가 날 위축되게 만들었던 시간도 있었다. 작년에 30대로 진입하면서부터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더 편해지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편하게 대할 수 있어서 스스로 "좀 노련해졌나?"라고 느끼는 한 해가 되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대학원을 걸어놓고 1년을 더 직장을 다닐 기회는 오지 않았겠지. 그건 마치 취뽀 통보를 받아놓고 입사 전까지 백수로 지내는 느낌과 비슷했다. 이 회사 이후의 단계를 고민하지 않고,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1년 남짓의 시간. 

 

그리고 다시 1월이 되어, 나는 C대학에 넣을 원서를 또 쓰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입학을 취소한 학생들은 작년 서류를 그대로 재활용해도 된다는 지침을 받았지만, 나는 지원서류를 다시 쓰겠다고 자원했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사실 후회하고 있다. 이번에 또 붙을지 안 붙을지 확신 못하지만, 한 번 붙여준 걸 또 안 붙여줄까 싶다. 장학금 더 많이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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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ytheking - Lemonade

2019. 11. 24. 17:50 from 듣고

 

 

올해 들어서 장르명을 알 수 없는 둥둥거리는 음악에 많이 빠졌었다.

대학교 내내 들었던 알앤비와 힙합과 비교하면 베이스는 더 강한데 팝에 가깝다. 미국 청소년들이 사춘기 때 빠지는 음악의 느낌,,

케니더킹은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에 나온다고 해서 예습 차원에서 찾아 들었었는데 오히려 알고 간 가수들보다 더 빠짐. 아직 활동한지 얼마 안 된 건지 곡이 많이 없다.

가을 무렵 주구장창 지인들한테 추천하고 다녔는데,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Baby you, you're like the lemon in my ginger teas~~

귀여워 귀여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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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