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ost Blue - Chet Baker

2014. 6. 28. 05:51 from 듣고
 

*세번째로 산 재즈 앨범이 쳇 베이커의 베스트 모음집이었다. 고3 수능이 끝난 겨울부터 듣기 시작했고 재수하는 동안 꽤 열심히 들었었다. 차분해지고 싶지만 우울해지고 싶지 않을 때는 쳇 베이커를 찾는다. 멜로디가 아무리 음울해도 목소리 자체가 무겁지 않아서 그런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쳐지지 않아서 좋다. 종종 거실 오디오에 쳇 베이커를 틀어놓곤 했는데, 한 번은 엄마가 듣다가 '쟤는 목소리에 힘이 없는게, 마치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노래한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재수학원을 다니면서 지각하거나 빠진 날이 거의 없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라서 벌점 같은 것도 없었는데, 그땐 결석하는게 뭐 그렇게 큰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근데 하루, 주민등록증 만드는 거 때문에 점심 시각이 지나서 학원에 들어간 날이 있었다. 동사무소에 들렀는데 의외로 너무 일찍 끝나서, 집으로 돌아와 뭘할까 하다가 거실 오디오에 쳇 베이커를 크게 틀어놓았었다. 그리고 나는 소파에 누웠는데, 그 뒤로 한 시간 동안 나는 반 수면 상태에서 쳇 베이커를 듣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었다. 평일 오전 열한시에, 재수생이, 소파에 누워서, 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쳇 베이커를 듣는게 얼마나 감동적인 경험이 될 수 있는지는 정말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학교 생활 동안 내세울게 개근상 밖에 없던 재수생에게 그 한 시간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종류의 자유였다.  


*내게 쳇 베이커를 소개시켜준 사람은 내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그의 추천으로 My funny valentine을 들은 순간부터 나는 그저 ㅄ같이 웃긴 새끼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단박에 쫄아버렸다. 세상에. 이런 노래를 듣는 19살짜리 남자애가 있다니. 당시 나는 내 또래 남자애들을 피시방이랑 허세 밖에 모르는 멍청이들이라고 간주했었다. 요즘도 일년에 한두번씩 연락이 오곤 한다. 나는 쳇 베이커 앨범을 찾듯이 그를 찾았다. 아주 가끔 생각나지만, 잊혀지진 않는. 여전히 토나올정도로 거만한 그는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내게 쳇 베이커를 소개시켜준 남자로 남을거다. 하필 쳇 베이커라니. 재수도 좋다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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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ON WILLIAMS

2014. 6. 24. 02:14 from 듣고

* Jesse  Boykins III 덕분에 알게된 쌔끈한 어빠. 아 혼자 왕건이 레어템을 건졌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막상 구글링해보니까 이미 그래미 노미네이트 경력있는 굵직한 뮤지션이셨음... 과연 덕의 길을 멀고도 험하도다. 

*     http://www.bwilliamsmusic.com/
http://soundcloud.com/bwilliamsmusic
디트로이트 출신. 12살(..) 때부터 음악 활동 시작. 현재 30대 초반 추정. 믹싱, 프로듀싱은 기본이고 15개 이상의 악기들을 다를 줄 안다.  He was named 2012 Entertainer of the Year and 2013 Drummer of the Year by the Detroit Black Music Awards, nominated for a Grammy in 2009 for Vickie Winans’ “How I Got Over”, and was also featured in the Who’s Who In Black Detroit as one of the “Men To Watch” in 2010.(귀찮아서 번역 포기. 그냥 졸라 유능한 음악인이라는 겁니다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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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픽사로 넘어갔지만 나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 영화의 최강자는 디즈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디즈니의 모국 미국에 살 때는 비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꽤 접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화들을 접했던 경로는 케이블의 디즈니 채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디즈니 채널이 영화를 틀어주는 시간을 외우고 있다가 공 비디오에 녹화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 인생 최초의 '수집'이 아니었을까 한다. 


매번 엄청 공들였던 기억이 난다. 영화 시작 삼십분 전부터 초 긴장 상태에 돌입하는데, 공 비디오에 이미 다른 동영상이 녹화된 건 아닌지 확인하고 버튼 누르는 순서 까먹을라 다시 확인하고 영화가 재생되는 시간 동안은 다른 채널로 절대 돌아가지 않게 아빠로부터 리모콘도 사수해야 했다. 아무튼, 난 이미 디즈니 비디오는 정품으로 풀 구비했놨었기 때문에 녹화본의 대부분이 비디즈니 애니였는데, 나중엔 그렇게 손수 녹화해서 그런지 그 비디오들에 더 큰 애착을 가지게 됐었다. 지금도 생각나면 유튜브에 그 영화들을 찾아보곤 하는데 15년이 넘었는데도 지금도 노래 부르는 장면들은 디테일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잊고 있던 것들을 귀와 눈이 기억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의 감각은 요상시럽다. 그 당시엔 영어도 못 알아들었으면서 지금도 얼추 발음대론 따라부를 수 있는거 보면 진짜 많이 보긴 엄청 많이 봤나보다. 


그 중에 Cats don't dance라는 Turner 사 영화가 있었다. 엄청 재미있다 라고 말하진 못하겠고 찾아보니 실제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는 아니라고 한다. 근데 처음으로 내 손으로 녹화한 영화라 그런지 굉장히 자주 봤었고 애착을 많이 가졌던 영화였다. 오늘 첨부한 동영상은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로 여자 주묘공> <의 솔로곡인데, 영화 보다가도 이 노래 들으려고 다시 뒤로 돌리곤 했었다. 어린 나이에도 목소리가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데, 찾아보니 부른 가수가 Natalie Cole;;;ㅎ;;;  


성인이 된 후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을 쭉 찾아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재즈풍의 노래들이 많아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엔 재즈를 듣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그런 분위기의 음악들을 좋아했던게 신기한거다. 나는 내 첫 재즈 경험이 고등학생 때 친구의 싸이비쥐엠이었던 Eddie Higgins Trio-Alice in Wonderland라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이미 10년 전부터 나는 이미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고 있던 셈. 그렇게 보면 취향은 어느 정도의 선천성이 작용하는걸지도..? 나중에 엄마한테 태교할 때 무슨 음악 들었냐고 물어봐야겠다.



 

이건 음원만 있는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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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 Going Back to the corner
where I first saw you
Gonna camp in my sleeping bag
I'm not gonna move
Got some words on cardboard
got your picture in my hand
saying if you see this girl
can you tell her where I am

Some people try to hand me money
they don't understand
I'm not broke, I'm just a broken hearted man

I know it makes no sense
but what else can I do
How can I move on
when I'm still in love with you

Cause If one day you wake up
and find that you're missing me
and your heart starts to wonder
where on this earth I could be

Thinkin maybe
you'll come back here
to the place that we'd meet

And you'll see me waiting for you on our corner of the street
So I'm not moving
I'm not moving

Im the man who can't be moved

* 나는 락이라는 장르와 그닥 안 친하다. 지식은 거의 전무하고 찾아 듣지도 않는다. 내게 락은 정복할 수 없는 바다 같은 장르다다. 너무 광활해서 감히 범접할 엄두도 안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 것도 문제지만 솔직히 그 넓은 바다를 탐험할 정도로 끌리지 않는 탓도 있을거라 본다. 그래도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한 중학교 3학년 이후 내 엠피쓰리에 남은 락 장르곡이 딱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The man who can't be moved다. 

떠나간 여자친구를 잊을 수 없는 남자가 그 여자를 처음 만난 곳에서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찌질한 곡이다. 아 이렇게 요약해놓으니까 정말 찌질한데, 나는 한참 예민했던 재수 시절 이 노래 들으면서 몇번이나 눈가가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흑인 음악을 좋아한다고 (감히) 말하고 다니고 실제로 내 엠피쓰리의 99퍼는 재즈 힙합 알앤비지만, 흑인 음악을 들으면서 '애가 타는' 경험을 해 본 적은 한번도 없는거 같다. 둘의 느낌적인 느낌 차이를 설명해 보자면, 연인이랑 헤어지고 나서 술 진탕 마시고 전화해서 '하시바나너무힘들어진짜너무힘들어죽을거같아'라고 퍼부어대는게 락이고, '내가 너랑 헤어진다고 눈 깜짝할 거 같아?'라고 눈 한 번 흘기고 돌아서는게 흑인 음악이다. 

한마디로 흑인 음악은 떠나간 애인을 그리워하고 찌질거리기엔 너무 쿨한 음악인 거 같다. 이 때 '쿨'은 '멋지다'의 쿨이 아니라, '날 놓친 넌 후회할거야. 난 아직 섹시하거든.'의 쿨이다. 반대로 락은 슬퍼할 수 있는 힘껏 모든 힘을 다해 힘들어하며 이별을 감내하는 이미지라 해야되나. 그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느낌이, 평소엔 시끄럽더라도 어떨 땐 훨씬 더 절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우연히 듣게 된 락 장르의 곡이 엄청 가슴아프게 꽂힐 때면 락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흑인 음악은 세련되고 멋지지만, 락엔 확실히 사람을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는거 같다. 락 추천좀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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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뒤늦게 사운드 클라우드에 빠져서 틈만 나면 들락날락거리고 있다. 도시에서 벗어나 전원 생활을 하면 문명의 이기들과 바이바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한국에 있을때보다 더 양질의 인터넷 덕후질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유는 간단함. 다음, 네이버, 네이트의 메인과 정규 웹툰은 물론, 베스트 도전, 네이트 판, 다음 미즈넷을 두 번 순회하고도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공부를 해...! 라고 하신다면ㅋ 이미 늦었어ㅋ 내가 그럴 줄 아는 인간이었다면 이 정도 덕력까지 쌓지도 못 했어ㅋ


그래도 잉여력이 넘치다 못해 귀도 호강시켜주고 눈도 호강시켜주는 단계까지 왔다. 뭐랄까.. 막장 드라마들을 모두 섭렵하고 막장의 끝판왕 사랑과 전쟁까지 섭렵한 후에 정말 더 이상 볼 게 없어서 EBS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한 느낌...?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난 요즘 인터넷 상으론 매우 풍부한 문화 생활을 하고 있다 이거야^0^ 비핸스도 열심히 서핑하고 사운드 클라우드도 열심히 서핑하면서 라이크 목록을 피둥피둥 살찌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뭐 하나 꽂히면 그거에 대해서만은 직성이 풀릴 때까지 파고 들어야했다. 다만 관심이 꾸준히 지속된 건 없고 내 스스로 만족했다 싶으면 얌체같이 발을 뺐기 때문에 판 건 겁나 많은데 어느 하나 '덕후'라고 자신있게 명함 들이밀 수 있는 건 없다는거^_ㅠ 최초의 덕질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네이버 이미지에서 카드캡터 체리의 일러스트들을 저장하는 거였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기능을 몰라서 무식하게 한글 파일 하나에다 복사 붙이기 하다가, 결국 처음으로 컴퓨터 드라이브에 나만의 '파일'을 만들었었다. 그렇게 결국 며칠만에 네이버에 존재하는 모든 양질의 카드캡터 체리 이미지들을 저장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첨엔 무식하게 보이는 대로 저장하다가, 점점 더 겹치는게 많아지니 뭐가 희귀한 이미지고 뭐가 화질이 좋고 색이 선명한 지 보는 눈도 생겨서 초기에 뒤집어 엎고 신중에 신중을 가해 수집하기 시작했다. 암튼 카드캡터 체리를 시작으로 클램프에 중독돼서 클램프의 일러스트들을 저장해서 작품 별로 분류해놓고 심지어 나중엔 일본 유명 일러스트들까지 파기 시작해 일러스트레이터 이름별로 저장했었다. 아.. 그립다 그 파일 어디 있을텐데. 


아무튼, '수집' 덕후로서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성과물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사이트들이 있다는 건 나한테 매우 고마운 일이다. 라이크 기능도 고맙다. 예전 같았으면 일일히 저장했을텐데, 지금은 라이크 하나만으로도 한 페이지 안에서 정리된 걸 볼 수 있다. 근데 이런 기질을 타고나는 걸로 보아, 나는 인터넷이 없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표 수집이라도 했을거다. 피는 속일 수 없다고, 사실 우리 외할아버지는 평생 수집하신 우표로 병풍을 두 개나 제작하셨다.


글이 쓸데 없이 길어졌다. 원래 이 글의 목적은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찾은 노래들 올리는 거였눙디.. (뜬금없지만) 생각난 김에 갑시다.






ㅁ...뭐야 이거 올리고 보니 왜케 큼;;;

ㄴ..ㄴㅏ도 그냥 플레이리스트 캡처해서 올리는거 아니라 인터넷 상으로 바로 들을 수 있게 올릴 수 있게 댐..!!> <

헤헤 나도 기술 좀 쓸 줄 안다 이거야ㅎㅎㅎㅎㅎㅎ다들 사운드 클라우드해여. 다음 미즈넷 네이트 판 이런거 하느니 음악 하나 듣는게 더 생산적이라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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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INNE BAILEY RAE

2014. 3. 12. 23:01 from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 감상을 '대중 가요'로 시작한다. 모두가 듣는 음악을 같이 듣다보면 그 중에서 더 유난히 귀에 꽂히는 노래, 더 좋아하게 되는 노래가 생기고, 그 노래와 비슷한 노래를 듣고 싶어서 그 가수의 다른 노래들을 들어보게 되고, 그 가수와 비슷한 가수들의 노래도 찾아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장르가 생긴다. 어떤 예술적 영역이든, 취향은 큰 바다에서 시작한 물고기가 물살을 타고 강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오늘 소개할 아티스트는 나를 음악 감상의 큰 바다에서 강물의 초입으로 이끌어준 파도, 코린 베일리 래Corinne Bailey Rae이다.

 

 

 

 

인기가요에 나오지 않는 음악들을 듣기 시작한 건 2006년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나랑 같이 학원을 다니며 급속하게 친해졌던 여자애는 다이시댄스, 클래지콰이 등의 말랑말랑한 하우스 음악과 파스텔 뮤직에서 나온 홍대 인디씬 음악들을 들었는데, 순위권 차트에 나오는 발라드들만 듣던 나는 그 애가 인기가요에 나오지 않는 노래들을 듣는게 엄청 멋있어 보였다. 그 때 결심했다. 나도 인기가요에 나오지 않는 노래들을 들어보기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다짐은 일탈이라고 해봤자 하루에 만화책 다섯 권 빌려 보는 게 전부였던 범생이 중딩이 할 수 있던 최고레벨 허세였던 거 같다. 그 친구에게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주로 네이버 블로그들을 뒤져가며 좋은 음악들을 찾아 듣곤 했었다.

 

당시만 해도 멜론보단 소리바다가 우세했던 시기였는데, 소리바다에 없는 음악들은 인터넷 쿠키 뒤져가면서 다운받았었다. 그 때 처음 깨달았다. 텔레비전 밖에도 음악이 있고 심지어 거기엔 훨씬 훨씬 더 많은 음악이 있다는 걸. 그 때 내 힘으로 혼자 발견해냈던 가장 첫 노래가 Corinne Bailey Rae의 Like a Star였고 그 노래 하나 듣고 산 Corinne Bailey Rae 1집은 내 용돈으로 산 첫 번째 음반이 되었다. 그 다음해에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매일 아침 스쿨버스의 등굣길에 이 음반을 들으면서 창문에 기대어 잠들었고 이 앨범을 들으면서 첫 짝사랑의 실패를 넘기기도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3년 뒤, 공백기를 깨고 나온 2집은 2010년 1월, 첫 수능의 실패로 인생의 바닥을 온 몸으로 느끼던 그 시기에 발매되어 겨울 내내 나를 위로해줬다. 그리고 신입생이었던 2011년 봄, 코린 여신이 처음으로 한국에 내한했다. 그래서 나는 코린 여신과 나는 DESTINY라고 주장한다.(근데 쓰고 보니 별로 개연성 없음..) 

 

 

)

 

 

2006년 초 발매된 정규 1집 CORINNE BAILEY RAE는 예뻤다. 이렇게 말하면 좀 오그리 토그리한데 진짜 사랑 터지는 앨범이다. 평소 티격태격하던 남자와 썸도 타고(Like a Star) 가슴 벅차게 사랑도 하고(Breathless) 그 놈의 사랑 때문에 잠도 뒤척이고(Trouble Sleeping) 그이의 전화도 기다려본다(Call me when you get this). 당신이 짝사랑을 심하게 하는 중이라면, 이 앨범 듣는거 그닥 추천하지 않는다. 가사에 너무 감정이입하게 되면서 실제보다 상대를 더 미화하게 되는 아주 안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솔직히, 경험담이다. 이 앨범을 듣다보면 왠지 짝사랑하는 자신을 아련하게 여기면서 혼자 하는 그 사랑을 아주 아름답게 여겨 짝사랑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그런 이상한 변태적 결말에 이를 수 있다. 코린을 빵! 터뜨린 데뷔 싱글 Like a Star는 국내에서도 수많은 소녀들의 싸이 BGM으로 명성을 얻었고, '소울메이트'라는 매니아 드라마의 OST 덕분에 더 많은 일반인들에게 유명세를 탔던 기억이 난다.(이 드라마 OST 정말 좋다. 소울메이트 자체가 시청률이 그닥 높진 않았지만 매니아층이 두터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OST 또한 딱 그러했다. 유명한 노래들도 아니고 아티스트도 생소한데 한 번 들으면 찾아서 다시 들어야 하는 그런?) 여중에서 남녀공학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십대 여학생이 사랑을 꿈꾸기에 딱 좋은 앨범이었던 거 같다. 확실히 2집보단 발랄한 1집이 더 귀가 편안하긴 하다. 하지만 2집 The Sea가 아릿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면 코린 여신도 내겐 '1집이 좋은 가수'로만 기억되지 않았을까 싶다.

 

 

)

 

 

 2010년 1월 발매된 정규 2집 THE SEA는 오랜 공백기에 종지부를 찍은 앨범이다. 코린이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던 2008년 3월, 남편 Jason Rae가 리즈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난다.(참고로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사인은 만취 상태에서의 약물 과다 복용. 둘은 코린이 22살이던 2001년에 결혼했으며 그녀의 남편은 밴드에 속한 색소포니스트로 마크 론슨, 에이미 와인하우스와도 작업한 적이 있는 뮤지션이었다. 자신이 음악을 하도록 격려해준 남편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은 정규 1집에 그대로 나타나있다. 사실 그거 따로 읽지 않아도, 음악만 들어도 알 수 있지 않나. '아 이 여자가 허벌나게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구나' 라고 앨범 전체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코린은 남편의 죽음 이후 일년 동안은 음악에 손도 못 댔다고 한다. 제이슨은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고, 마약 역시 매우 매우 드물게 했으며 술을 마실 때에만 했다고 한다. 심지어 제이슨 부검 당시 몸에서 나온 약물들은 코린이 알기론 그 밤 이전엔 그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약물이었다고 했다. 이 사건이 그녀에게 얼마나 갑작스러웠는지는 그녀만 알리라. 그래서인지 서른을 갓 넘긴 코린의 2집은 1집보다 무거운만큼 깊다. 1집이 사랑, 애정, 희망이었다면 2집은 슬픔, 극복, 성장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해서 발랄하고 낙천적이었던 소녀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그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고 나서야 진짜 '여자'가 되었다. 인터뷰에 의하면, 코린은 4년만에 발표한 2집을 들고다니면서 전세계의 콘서트장에서 사별한 남편의 얘기를 해야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궁금해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2집 자체가 떠난 남편과 별개로는 논할 수 없는 앨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감정적이지 않게 되려고 대본을 외워서 읽었는데 그것조차도 너무 싫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건지, 자신을 가십거리로 삼으려는 것인지 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시 고삐를 잡은 것은 결국은 남편 제이슨 덕분이다. 그렇게 자신의 음악과 제이슨의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제이슨을 위한 일이라고 그녀가 결론 지었기 때문이다. 4년 새에 그녀가 상처를 극복하고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2집을 들으면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2집은 내게 무척 의미가 크다. 2집이 발매됐을 2010년 1월, 나는 첫 수능을 망치고 떨어질 각오로 넣은 원서들이 진.짜.로. 다 떨어진지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 때 코린의 앨범이 나왔다. 그 앨범을 처음 들으면서 한강 옆 산책로를 걸었었는데데 어째서인지 밤인데도 안개가 자욱히 길을 덮고 있었다. 기다리던 아티스트의 앨범이 나온 날, 흰 안개가 솜이불 같이 내려앉은 산책로를 걸으면서 만물이 나한테 힘내라고 얘기하는 거 같아서 코끝이 찡했다. 그 날 차가운 겨울 밤바람에 맞서 파워워킹하면서 마음이 엄청 따뜻해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1집 활동 당시 한 콘서트에 코린은 자신의 음악이 '힐링하는 음악'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그 코어만은 여전히 2집에도 존재한다고 느꼈다. 1집은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지고 사랑해요@^^@'였다면 2집은 '나도 일어섰으니 당신도 일어설 수 있어요'랄까. 하 우리 여신님 앨범 얘기하니까 오그리토그리한 대사들이 아주 그냥 쏟아진다 쏟아져. 언니 내가 이렇게 사랑해요. Corinne, just in case you're reading this, I love you. You are my ideal M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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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st - Jhené Aiko

2014. 3. 7. 18:08 from 듣고

 

I don't need you, I don't need you, I don't need you, but I want you

I don't mean to, I don't mean to, I don't mean to, but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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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Cry Me A River - Julie London

2014. 2. 16. 00:21 from 듣고




Now you say you're lonely
You cry the whole night through
Well, you can cry me a river, cry me a river
I cried a river over you


Now you say you're sorry
For bein' so untrue
Well, you can cry me a river, cry me a river
I cried a river over you


You drove me, nearly drove me out of my head
While you never shed a tear


Remember, I remember all that you said

Told me love was too plebeian
Told me you were through with me and
Now you say you love me
Well, just to prove you do
Come on and cry me a river, cry me a river
I cried a river over you


* 백인 재즈 보컬들은 애잔함이나 쏘울로는 확실히 흑인 보컬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뭔가.. 후자에게는 아티스트 개인의 성장 배경이나 감성과 독립적으로 그들의 선조부터 뿌리깊게 전해져 내려오는 설움이 목소리에 짙게 베어있는 느낌적 느낌? 하 언병이라서 서글프다. 이 정도로 밖엔 표현 못하겠어요. 물론 에이미 와인하우스 같은 괴물도 한 세기에 한두명씩 나타난다만 역시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재즈나 알앤비 등 흑인 음악의 영역 안에서 백인들은 태생적으로 흑인들보다 쏘울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겐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겪어야했고 지금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은 아픔의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의 역사에 적지 않은 백인 아티스트들이 이름을 올린 걸로 보아 백인 아티스들에게도 정체성은 존재한단 말인데, 그 느낌적 느낌을 굳이 말로 뽑아보라 하면 본인은 emptiness라 하고 싶다. 굳이 한국말로 하자면.. '허무함'? 모든 백인 보컬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가장 유명한 백인 재즈보컬인 프랭크 시나트라는 가벼우면서도 경쾌한 분위기의 곡들을 위주로 냈으니까. 그러나 감성과 힘이 넘쳐 애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흑인 보컬들과 비교했을때 백인 아티스트들에게선 대체로 노래에서 힘과 감정이 절제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쳇 베이커가 그랬고 오늘 포스팅한 줄리 런던도 그렇다. 재즈 피아노의 거장 빌 에반스도 힘 빠진 듯 약간 차가운 연주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끌 수 있었던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 백인 아티스트들이 지닌 감성은 미국의 역사와 결부시켜 설명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이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초토화되고 전쟁 자금으로 인해 엄청난 빚을 축적하고 있을 때, 미국은 전쟁터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들에게 무기를 팔며 순식간에 서방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른다. 미국은 더 이상 영국의 일개 식민국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어머니격인 영국의 왕관을 뺏어온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렇게 미국은 종전 후 1920년대, 개국 이래 최대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사람들은 The Jazz Age라 명명한다.

 

미국을 '미개하다'고 손가락질했던 유럽인들조차 전쟁 후에 미국을 희망의 땅이라 여기며 하나 둘 건너오기 시작했고, 승리의 기운은 미국의 국민들에게도 퍼져 "아무리 출신이 낮은 자라도 열심히 노력한다고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미국 사회 전반에 깔리게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그토록 익숙한, American Dream의 시초이다. 이 긍정적인 에너지는 원칙적으로는 청교도에 기반했던 미국 사회를 '해방'시킨다. 하지만 미국은 갑자기 찾아온 부를 감당할 수 있을만큼 성숙된 사회는 아니었나보다. 세상의 모든 화려함을 모아두었던 그 곳의 이면에는 탐욕, 부도덕함, 이기주의가 팽배해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술'이다. The Jazz Age에는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는데, 당시 가장 돈을 많이 벌며 떠올랐던 신흥부자층은 불법 주류 제조업자와 주류 밀매업자였다고 한다. '새로운 땅'으로 이주했을때부터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미국의 선조 청교도인들이라지만 본래 청교도는 부를 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전히 잔재해있는 청교도적 가치 위에 감당할 수 없을만큼 갑작스레 이루어진 경제 성장과 개방이 더해지자, 미국은 겉으로 화려할지언정 속으론 뼛속까지 썩어갔다. 이러한 미국의 모순적인 현실을 여과없이 제시한 게 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은 바로 귀향 군인들이었다. 나라를 승리로 이끈 '영웅'들, 사실 그들 하나하나는 따지고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다가 전쟁터로 내몰린 청년일 뿐이었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았을 그 청년들에게, 수많은 전투를 살아남아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조금의 돈과 훈장 정도. 이미 미국 땅에 팽배해있던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는 그들의 허무함을 한 층 더 고조시켰으리라.

 

화려한 껍데기.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존재하는 정신적 빈곤. 이 모든 게 그 당시 한창 부흥하고 있던 흑인 문화의 음악적 장르인 재즈를 백인들이 소화하는 과정에 녹아 들어가 White Jazz의 정체성을 형성한 것이다.

 

*<참고>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가 통째로 군수 물자 공장으로 변신했을때 부족한 노동 수요를 채우기 위해 전국의 흑인들이 북부로 밀려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 떠오른 흑인들의 대표 거주지가 뉴욕의 할렘인데 이 지역을 중심으로 재즈 음악을 대표로 한 흑인 문화가 꽃을 피운다. 더불어 라디오의 발달과 함께 라디오에서 주 노동자 층을 이룬 흑인들을 위해 재즈 노래들을 틀어주던 것이 재즈의 부흥에 한 몫하기도 했다.


*(오늘은 포스팅다운 포스팅에 도전하고자, 위키피디아를 검색했습니다아!!!!) Julie London. 1926-2000. 본명 Gayle Peck.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음악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십대에 노래를 하며 대중 앞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엘리베이터걸로 일하던 중 픽업되어 배우 생활을 시작한다. 지금은 가수로 회고되지만 1955년 Cry Me A River로 정식 가수 데뷔를 하기 무려 11년전 영화배우로 먼저 데뷔했고 일생에 걸쳐 2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미모와 쩌는 몸매, 좋은 자세로 세계2차 대전 당시에 군인들이 선호하는 핀업걸 1위였다고 한다. 완벽한 비쥬얼에 노래, 연기까지 잘하는, 스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여자가 줄리 런던이다. 




하.. 저 눈빛으로 "난 론리걸이에요"하는데 어떤 남자가 안 넘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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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