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온 지 3달이 다 되어간다.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어, 그러면 좀 더 자신있게 내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을까 싶어서 라고 말했을때, '왜 굳이? 알고보면 사람 사는 모습 다 비슷해.'라며 내 말문을 막았던 친구가 있었다. 3개월만에 한국에 돌아가서 그 친구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이 생겼다.
- 중국엔 선거가 없다. 중국이 정치체계상으로 아직 공산주의 국가라는걸 아는 사람에게 저 문장은 당연한 원리겠지만, 막상 중국애들이 저 내용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했을땐 새삼 놀라웠다. 이 애들은 선거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전무하다. 4월 달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시장 선거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프랑스인 선생님이 각 나라의 선거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자 반의 절반을 넘는 중국애들이 웅성웅성거렸다. 설명을 들어보아하니, 그들은 선거 자체가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물론이요 대통령도 자기 손으로 뽑아본 적이 없고 어느 날 일어나보면 대통령이 바뀌어 있는 상황이 그닥 낯설지 않다는 것이었다.(그 와중에 어떤 중국 여자애가 살며시 손을 들어서 자기 아버지는 선거권이 있다고 용기 있게 말해주었다ㅎㄷㄷㄷ) 얼마나 선거에 대한 개념이 안 잡혀있냐면, 빨간색이 진보당을 의미하고 파란색이 보수당을 의미한다는 것조차 잘 몰라했다. 극우당과 극좌당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 조금씩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당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개념도 살짝 어려워하는 듯 했다.
-프랑스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혁명과 혁명 정신(자유 평등 박얘)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그 연장선으로 이민자를 수용하는 개방 정책이 매우 활발한 나라이고 실제로 영주권을 따는 것이 비교적 까다롭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실제로 거주하는 이민자들(본인이든 그 2세든)이 입 모아 하는 말은 프랑스가 그렇게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일부 프랑스인들이 인정한 바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요인은 외국인들이 일으키는 사회적 혼란, 즉 범죄와 치안 불안정이다. 나 역시 외국인이라, 이 나라에 머무는 외국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인식이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프랑스인들이 외국인 이민자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는 충분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고 교육이나 직업 면에서 프랑스인들의 자리를 차지하는건 사실이지 않은가. 게다가 프랑스는 무상 교육의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라서 교육비가 싸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대학교 등록금은 거의 반공짜나 마찬가지..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영어권 국가 대신 프랑스 유학을 택하는 한국인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 내는 프랑스어 학원비나 어학 연수비에 대학 등록금까지 합쳐도 영어권 국가의 대학 등록금보단 싸기 때문이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불쑥 들어와 대학이나 직장에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면, 그리고 필요한 교육을 받거나 돈을 벌고 나서는 자기 나라로 휭하고 돌아가버린다면, 혹은 눌러앉아서 문제나 일으키고 있다면, 프랑스인들로선 이민자들을 싫어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문제를 일으키는 이민자 민족으로 눈총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아랍인이다. 우리가 흔히 아랍계라고 부르는 국가들은 대부분 북 아프리카에 위치한다. 프랑스에서 만나는 아랍계 출신들은 대개 알제리아, 튀니지아 그리고 모로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많고 그 중에 여럿은 여전히 일상에서 프랑스어를 쓰며 대학교부터의 고등 교육을 아예 프랑스어로 제공하기도 한다. 프랑스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쓰기 때문에 프랑스에선 오히려 흑인보다 아랍인들이 더 많다.
아랍계 유입의 역사가 오래 되었고 그 숫자가 많음에도 그들과 프랑스인들의 관계에 여전히 긴장감이 존재하는 것은 지배의 역사 때문이다. 프랑스는 한떄 이들은 '지배'했었기 때문에 살짝 낮추어 보는 경향도 없지 않고, 독립 전쟁을 치룬 나라의 경우 한 때 적국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그런 묘한 기류..? 부모님이 알제리아에서 이주해왔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빨간색 프랑스 여권을 지닌 한 친구는 자라면서 자신이 겪어온 은근한 차별, 그랑제꼴을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을 하는 불량청소년으로 비춰졌던 경험들을 얘기해주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모아 다시 부모님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고, 대학교를 들어가고 직장을 구하는 큰 틀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 같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서 종종 과정 자체를 목표로 삼는 거 같다는 인식을 받은 적이 많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결국 중요한 건 '행복'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따라서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거다. 내가 지내고 있는 홈스테이 부모에겐 도에가인 딸이 있다. 어제 그녀와 단 둘이 저녁 식사를 했는데, 내가 미대를 나왔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자신이 체육을 전공했다고 말해주었다. 어렸을 때 운동이 좋아 온갖 운동을 섭렵했고 대학도 체육학과를 들어갔는데, 체육 선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하고 소방관 시험을 치룬다. 시험엔 합격하지만 자리가 나질 않아 결국 소방관이 되는 일에 실패하는데, 그러다가 1년짜리 도예 교육 과정을 발견하고 거기에 등록한다. 그게 2006년, 그녀는 8년째 도자기를 굽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하는 대화는 그래서 항상 재미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만 들어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공교육-대학-취업 이 큰 틀은 있지만, 그들은 이 길이 아니란걸 알았을 때 돌아가는 것을 크게 주저하지 않는거 같다. 그래서 바꾸고 쉬고 여행 다니고 또 시작하고. 반면 한국 일본 중국이 추구하는 좋은 삶의 방정식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공교육+사교육*10=>좋은 대학+스펙=>좋은 직장.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가 지형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도 든다. 유럽은 경계선으로만 이루어진 대륙이다. 프랑스만 해도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맞닿아 있고 경계선만 넘으면 바로 이웃 국가이다. 프랑스는 워낙 이민자가 많아 더더욱 그렇겠지만 '순수 혈통'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은 유럽 전체에 해당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렇듯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교류하고, 또 공존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중국 한국 일본은 좀 다르다. 한국은 중국 대륙과 붙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분단 이후 남한은 섬나라나 다름없었다. 중한일은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교류가 불가능하다보니 사회가 자연스럽게 폐쇄적이게 된게 아닐까 싶다, 폐쇄적이라는게 공산주의 국가같다는 말을 하는게 아니다. 다만 타 사회와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획일화되고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한정된 자리들을 차지하려다 보니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사는 게 각박하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거다.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보기 힘든 환경에 놓여있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의 방식 외에 다른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온전히 깨닫는게 매우 어려워진다, '나는 너희와 다르게 살거야!'라고 해도, 내 왼쪽에 있는 사람과 내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똑같은걸 하고 있다면 이 연쇄를 끊는 게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중일 사회에서같이 '틀리는 것'과 '튀는 것'을 꺼리는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