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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6. 11:28 from 흘러가는대로

1. 이번주 일요일 귀국 예정. 이쯤되니 아쉬움이고 뭐고 그냥 생각 자체가 사라진다. 공부는 무슨ㅋ 친구들한테 인사나 다 하고 가면 좋으련만 이러고 있다.


2. 오랫만에 캐스커의 <POLYESTER HEART>를 찾아 들었다. 고3 일년을 함께한 앨범 중 하나! 앨범을 찾은지 얼마 안 된 날이었던 거 같은데, 하루는 온종일 들었는데도 잠들기 아쉬울 정도로 좋아서 메가스터디 기출 300제를 풀어보면서 밤을 샜었다..는 오바고 결국 다섯신가 잠든 듯. 근데 그 다음날 하루종일 자서 어차피 공부 못한건 함정ㅋ;; 캐스커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날 탈뮤직뱅크로 인도한 최음악구루님의 추천으로 알았다. 고삼때 공부하기 싫어서 한참 이것저것 앨범 들어보기 시작할 때 마침 캐스커 정규가 나왔다길래 생각없이 틀었던 4집 POLYESTER HEART는 대학 입학 후에도 꽤 오랫동안 들었던거 같다. 생각해보면 중3때 음악을 찾아듣기 시작했을땐 최구루님의 영향을 받아 일렉+홍대감성이 짬뽕된 음악을 많이 들었었다(이런 장르를 시부야..라고 했던가). 클래지콰이, 다이시댄스, 캐스커 정도 생각나는데, 그때 발견한 하우스룰즈 1집이랑 클래지콰이 1,2 집은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다 나는 고1때 우연히 알게된 Corinne Bailey Rae로 흑인 음악의 문을 열었고 대학교 신입생 때 발견한 Musiq Soulchild로 완전히 길을 틀어버린다. 참고로 최구루양은 꾸준히 한 길을 파셔서 지금은 일렉 쪽에 완전히 자리잡으신거 같다. 나는 지금은 따로 일렉 음악을 거의 찾아 듣지 않으니 시작점을 같았지만 이렇게 종착점이 달라진게 신기하다. 그래도 여전히 캐스커 4집은 옳다. 사실 그 직후에 나온 앨범은 어쿠스틱한 사운드에 일렉스러운 비트만 입힌 4집과는 달리 너무 일렉일렉해서 내 취향과는 맞지 않다고 맘을 정했는데, 그 이후 나온 앨범들은 딱히 들어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3학년 초까지는 이것저것 잡다하게 들었던거 같은데, 작년과 올해는 주구장창 블랙블랙하게만 들었네. 


3. 어제 들은 이진아가 캐스커 노스텔지어를 자극한거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첫 곡보다 이번 곡이 훨씬 더 좋았는데, 특히 멜로디라 그래야하나 곡 구성이 좋았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느낌을 주는 노래였는데, 듣고 있다가 '다음엔 이런 음이 나오겠지' 싶으면 전혀 다른 멜로디가 나와서 당황에 당황을 연속케 하는 곡이었다. 개인적으로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좋아하진 않지만 멜로디를 짜내는 능력이나 피아노 실력(제일 부러움)만큼은 이미 아티스트라 해도 손색 없을듯. 노래에서 날것의 느낌이 나는게 매력적이다. 다만 어차피 유희열이 데려갈거 같고 아이돌 육성이 목표인 케이팝스타와는 어울리지 않으니 그냥 어서 빨리 유아저씨께 몸을 의탁해 주셨음 한다. 2-3년전까지만 해도 홍대 인디씬의 아티스들도 꽤 주목을 받았던 거 같은데, 그러고보면 요즘 가요계엔 정말 힙합/알앤비 붐이 일고 있는게 맞다. 한국형 힙합 알앤비가 새롭게 느껴진 시기도 있었는데.. 가요계의 큰 손 제왚이 홍대 씬에선 실력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새로운 걸 창조했단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이진아에게 그렇게 놀란 것도 지금 가요계가 얼마나 획일적인지를 보여주지 않나 싶다. 힙합알앤비를 앞세운 가요트렌드도 포화 상태에 이를테고,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음악이 될 때 쯤 또 다른 스타일이 치고 들어오겠지. 역사는 돌고 도는게 맞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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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8. 07:25 from 흘러가는대로


1. 귀국이 2주 남았다. 다다음주 일요일 아침엔 한국땅을 밟고 있겠지. 으으 세미멘붕 중. 한국 침대에서 일어나 "프랑스를 갔다온 것은 꿈이었나"하고 허우적거리는 꿈까지 꿨다. 일어나 보니 아직 그르노블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안도감이란..ㅋ 이 정도면 중증ㅎ;; 아무튼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출국 준비를 한다.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친구들과 내가 사랑하던 공간들에 마지막으로 눈도장을 찍어둬야 한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주말을 런던에서 보낼까 하다가, 남은 2주 중 하루라도 그르노블을 벗어나긴 싫다고 결론 내려서 런던행은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차라리 시원하다. 앞으로 살면서 이 작은 도시에 올 확률보단 런던에 갈 확률이 높은거 같았다. 게다가 다음 번에 오더라도 그 땐 Martin네의 하숙생이 아닐테고, 내 바로 옆 방에 애니가 살지도 않을테고, 지금 그르노블에 있는 한국인 친구들도 없겠지. 프랑스를 떠나는 것 자체도 아쉽지만 그보다도 지난 9 개월 동안 여기서 내가 만들어놓은 세계가 사라진다는게 너무 아쉽다. 다시는 이 마을에 24살의 스그스로 돌아올 일은 없을테니... 흐규흐규울ㄴ얼 가기시졍러ㅏㅇ니


2. 8월에 벨기에 지혜네 놀러갔을때 지혜네 부모님께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었다. 아버님의 해외 지사 발령으로 지혜네 부모님은 몇 년 전부터 벨기에에 사신다. 첫 날 밤 저녁식사를 하면서 프랑스 와서 느낀 것들을 지혜 아버님께 열심히 설명드렸는데 아버님은 열심히 들으시더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는 ~가 잘못됐다. 외국은 ~한 것들을 하는데 얼마나 좋으냐"라는 소리만 할 줄 알지, 그 좋은 것들 중 어떤 걸 취할 것인지, 어떤 걸 우리 나라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발전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지적은 불평과 다를 바 없노라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간과하고 있던 점이라 반성이 됐다. 


2-1. 현실적으로 "~이 잘못됐다"라고 말하는 것은 "~보다 ~하게 해야한다"보다 백배 쉽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판단은 거의 본능적이다 싶을 정도로 빨리 이루어진다. 물론 이 모든 과정 속엔 개인의 양심, 가치관, 이익 따위의 계산들이 숨어 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고방식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무엇이 자신을 이런 결론에 도출하게 만들었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래서 우리는 ~을 해야 한다'를 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스케일의 사고를 요구한다. 사안을 다각도로 파악해야 한다. 무엇을 고칠지 설명하기 위해선 무엇이 잘못됐는지 짚어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 주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왜 싫어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싫다"라고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의견이 없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지만 맹목적인 싫음은 그 자체로 악이 될 수 있다는 걸 역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비판하는 것과 불평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대안을 내놓는 것까진 못해도 최소한 자신이 왜 그거에 반대하는지는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2-2. 정치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프랑스에 오기 직전 나는 한국 사회에 불만이 굉장히 많이 쌓인 상태였다. 똥이 쌓인 현실을 부정하고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일종의 도피 심리? 지옥같은 학창 생활을 끝내고(재수까지 해서 +1년) 대학에 들어왔는데 3년 과제와 시험, "자기계발"에 치이고 나니 4학년ㅋ 이제 남은 건 취준? 짜증 펔발ㅋ 솔직히 그 때만해도 막연히 외국에 나가면 모든 게 다 나을 것만 같은 환상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당시에도 프랑스에 대한 꿈이 환상일거란 예상을 안 했던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것이 아닌 걸 갈망하고,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내 경우엔 유학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그건 아마 내가 결국엔 끝까지 국내 교육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거다. 사실 이런 환상의 기본은 무지다. 나는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다 못해 단점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프랑스에 대해선 그렇지 못했다. 단편적이고 긍정적인 정보들만이 내 프랑스에 대한 지식의 정보였고, 그걸 토대로 내 상상력이라는 살을 붙여 만들어낸 프랑스의 이미지는 한없이 핑크빛이었다. 이 모든게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라는걸 알면서도, 외국에 나가 환상을 깸과 더불어 더불어 내 나라 역시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어학 실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얻게 되는 것 아닌가 하며 프랑스행을 결정했다.


예상대로 도착한 직후엔 프랑스의 모든 것이 좋아보였다.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옷 막 입는 것도 좋았고, 책 음악씨디 디비디가 잔뜩 꽂힌 프랑스의 거실이 좋았고, 심지어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까지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단 몇 개월만에 깨달은 건 누가 더 옳고 누가 그른게 아니라 단지 두 나라가 다르단 것이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는 흔하디 흔한 명제를 14시간 떨어진 땅에 도착해서야 제대로 이해한 셈이다. 프랑스엔 있지만 한국엔 없는게 있고, 한국엔 있지만 프랑스엔 없는게 있는거다. 그러나 지구 반바퀴 떨어진 두 나라는 사뭇 다른 기후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다른 음식을 먹어왔으며 접점이 없는 완전히 다른 역사를 갖고 있으니, 이토록 다른게 당연한거 아닌가. 이 당연한 이치가 한 나라에만 갇혀 있을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야를 넓힌다는 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다른거라는 걸 알면 된다, 우리나라엔 없는 것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단순히 아 한국엔 이게 없다 라며 탄식할게 아니라 이 나라엔 왜 그것이 자리잡았는지 이해하면 된다. 이 문제의식이 침투할 수 있는 범위는 엄청 광범위한데,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낱 치즈 하나에서도 새로운 걸 발견한다.


프랑스 치즈는 종류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치즈가 프랑스의 심볼인건 단순히 숫자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로.프랑스인들의 식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Fromagerie라는 치즈 전문 가게가 있으며 대형마트엔 치즈 코너가 따로 있다. 치즈의 근원은 우유고 우유의 근원인 소는 지구 곳곳에 존재하는 동물이지만 유럽 내에서도 프랑스만큼 치즈 문화가 발달한 국가는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소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유/크림/치즈에 대한 문화가 발달하진 않았다. 그 차이는 기후에서 나오는데, 프랑스는 농경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보유한만큼 목초지도 쩌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단순히 목초지가 많은게 아니다. 진짜 겁나 많다. 여기 처음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캠퍼스 안에 조그만 잔디밭들이 많은데 잔디 퀄리티가 무슨 올림픽 축구경기장 뺨친다는거다. 프랑스엔 목초지가 많은만큼 소도 많았고, 잔디를 우걱우걱 먹은 소들은 우유를 쭉쭉 뽑아냈을거다. 냉장 보관 시설이 없던 시절 치즈는 잉여 우유를 장기 보관하는 수단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심어놓은 잔디도 잘 안 자라는 기후였던데다가 소가 그 정도로 흔하지 않았다. 가정에 소 하나 있으면 그게 온 가족을 먹여살리는 중요한 재산이라 됐다 하니 모든 가구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게다가 소는 음식을 위한 동물이었다기보다 농경을 위한 동물이라서, 한국소는 잔디나 뜯어먹으면서 우유나 뿜어내는 프랑스소와는 달리 팔자가 기구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보관할 우유까지 쏟아낼 힘은 없었을거다.


치즈 얘기를 하려고 시작한 포스팅은 아니다.(...기승전치즈?) 다만 치즈에서도 두 나라가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단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이런 차이 하나하나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대개 종교 역사 기후 이렇게 세가지로 원인이 압축되더라. 아무튼 결론은 역시 사람은 자기 세계를 좀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는거다. 그리고 나가서, 단순히 아 외국 좋다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완 어떻게 다른지, 왜 그렇게 달라졌는지, 이 나라의 가치들 중 무엇을 취할 것이고 계속 안고 갈 것인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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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2011년 늦봄에 그린 그림들이다. 남자친구가 없던 단 두달 동안 나는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 제일 많은 그림을 남겼는데, 남자친구가 있었던 2년 동안은 하나도 안 그렸단게 함정^*^ 이래서 예술은 고독한 사람들이나 하는건가보다. 지난 주 미술사 시간에서 샤갈을 다뤘는데, 샤갈은 생전에 예외적으로 굉장히 많은 돈을 벌고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화가였단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그를 위대한 화가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예술가치고 너무 화려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서;


* 그때나 지금이나 색이나 빛의 표현에 중점을 맞춘 그림보다도 연필선들이 마구 보이는, 낙서 같은 그림을 좋아한다. 크로키같은,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 좋다. 완벽한 형태의 미술이 아니라서 더 친근한 느낌을 준다 해야 하나.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수험생일 당시 미대 입시까지 했었으면서, 대학교에 들어와서 등록했던 그 수많은 잡스러운 학원 중에 미술 학원은 없었다. 요즘은 수채화가 주는 느낌이 좋다. 한국 돌아가면 미술 학원이나 등록해볼까.. 프랑스에 와서야 여유를 찾은 이유는 한국에서 끊임없이 일을 벌려놓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성미 때문인걸 알면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욕심부리지 말고 여유롭게 살아야지 하면서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헬스장, 학교, 학원들을 생각하면 내가 과연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싶다. 으으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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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4. 00:40 from 흘러가는대로


1. 델프 B2를 끝냈다. 시원하기도 하고 벌써 학기를 혼자 끝낸거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수업 네시간을 띵땅 까먹었다(아직 합격 통보도 안 받은 건 비밀^x^) C1도 보고 싶은데 경험담들을 듣고 나니 도저히 12월에 합격할 엄두가 안 난다. 그래 합격하면 하는거고 안 되면 또 보면 되는거고 수능처럼 일년에 한 번 있는 시험도 아닌데 스스로를 그렇게 쪼아댈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막상 준비하기 시작하면 마치 이거 떨어지면 내일도 없는 사람처럼 맘 졸이는 내 꼴이 우습다. 사실 맘 편한게 시험 보고 싶으면 미리미리 준비를 하면 되는데 또 성실하진 못하고. 하필 시험 공부해야 하는 기간엔 그 과목 말고 모든 게 다 재밌어 지는게 아니겠음? 평소엔 글 쓰고 싶은 맘이 잘 들지도 않는 블로그에 들락거리고, 남의 블로그 들어가보고 페이스북도 들어가고 뭐 새로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고 네이버 정규 웹툰을 싹쓸이 한 담엔 다음 웹툰 작가들이 그 전날 뭘 잘 못 먹어 혹여나 정각 직후에 새 웹툰을 올렸을까 들어가서 확인한 다음 레진웹툰을 공략함으로써 하루를 마감..은 개뿔 네이트 판과 다음 미즈넷이 남았지. 쓰레기 같은 글들을 보면서 눈과 뇌를 소모한 담엔 정화를 하러 IZE로 ㄱㄱ 허핑턴 포스트도 가끔 들어가보지만 왠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우선 광고가 많아서 잡다스럽고 외국 허핑턴포스트와 달리 소모적인 기사가 많은거 같음. 기존의 깔끔한 플랫폼을 어쩌다 그리 만들었을꼬.. 아 요즘은 뒤늦게 유튜브에 빠졌다. 불어 공부한답시고 프랑스인 유튭 구루들 영상을 돌려보고 있다. 공부가 되는진 모르겠는데 쌍쓰러운 단어는 참 많이 배웠다. 말이 너무 빠른데 영상이랑 같이 보니 80%는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 이게 어디야. 


2. Cafe Jules Verne




요즘 제일 애정애정하는 공간. 엄마가 묵던 숙소 앞에 있는 카페인데 엄마가 귀국한 이후에도 종종 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엄마 숙소 앞에서 만나 엄마는 더블 에스프레소를 나는 카푸치노를 시켜놓고 마셨다. 엄마가 묵었던 15일 중에 여기서 오전 커피를 마신건 고작 이삼일 밖에 안 되는데도, 여기는 '엄마와 나'의 공간이 되었다. 그래선지 카페 자체의 인테리어와 상관 없이 여기 오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너무 좋고.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데 묘하게 잘 어울려서 인상적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 인테리어가 범상치 않다 하며 앉아있는데, 사장님께서 아침 뉴스가 끝나자마자 티비를 끄고 재즈 음악을 틀어주셨다. 여기서 완전 뿅감. 나에게 영적인 체험에 가장 가까운게 뭐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그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비쥐엠이 흘러나올 때라고 대답할 수 있다. 소름이 쫘악. 카페의 비쥐엠은 이만큼 중요하다. 사실 커피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 나한텐 커피보다도 음악이 중요할 때도 있음. 그런 의미에서 내 전전세대에 존재했다던 '음악 감상실'의 정체가 상당히 궁금하다. 음악을 듣고 생산하는게 수월해진 지금, 사운드 자체가 너무나 풍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듣는 행위가 너무나 일상적이게 돼서 그런지 '음악 감상'이 하나의 번듯한 여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슬프다


다시 카페로 돌아와서, 무뚝뚝하신 사장님은 흰 머리에 배가 불뚝하시고, 회색 양복 조끼 주머니에 와인색 손수건을 접어 꽂아 넣을실 줄 아시는 멋쟁이시다. 게다가 월요일에는 오전 영업만 하시고 평일은 물론 토요일에도 오전 영업은 열두시에 딱 맞춰 가게를 닫고 점심 시간을 가지시는 진정한 유러피안. 게다가 오후 영업은 4시부터라 오전에 못 가면 꼬박 반 나절을 기다려야 한다. 저녁엔 바로도 운영하지만 나는 주로 오전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데 매번 칼같이 열두시면 쫓겨난다(?)ㅠㅠ 처음엔 무뚝뚝해 보이셨는데 몇 번 오니 서비스로 한 개씩 나오는 비스켓을 한 바구니씩 주시는 츤데레. 단골의 소소한 기쁨이닼 


2-1. 참고로 나에게 소름은 준 비쥐엠은 이거. 


 



3. 사운드 클라우드는 여전히 열심히 파는 중. 찾아 들어가는 맛이 쏠쏠하다. 그 덕에 오히려 메이저 아티스트들 작업들은 놓치고 있음. 근데 뭐 자랑하려고 음악 듣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귀 호강하려고 듣는건데 아마추어 메이저 따질게 뭐 있담. 라이크한 곡이 벌써 120개를 찍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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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6. 09:59 from 흘러가는대로

 엄마가 이주 간의 체류를 마치고 지난 월요일 한국으로 돌아갔다. 원래 비행기는 그 전 금요일 오후에 뜰 예정이었으나, 에어프랑스의 파업 덕에 월요일에 대한항공 껄로 표를 교환했다.(엄마는 파업의천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진면모를 느끼고 돌아갔다) 금요일전까지는 사실 조금 부담이 됐었다. 엄마는 자기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 하라 했지만, 나는 엄마가 온 이상 혼자 내버려두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자주자주 보러 갔었고 그 와중에 새로 시작한 반의 레벨이 맘에 들지 않아 이걸 사무실에 말해 말아 고민하며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엄마는 내심 미안해했던거 같다. 나는 휴가 3 주동안 한국어만 해서 불어가 엄청 퇴화한 것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 와중에 공부는 못하고 엄마와 더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엄마한테 괜히 불안감을 내비추기도 했다. 엄마는 나한테 혼자 있는 것도 좋으니 걱정말라고 했지만 나는 장녀병이 있는지라 엄마를 혼자 두는 것도 맘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금요일이 다가오자 나는 아쉬웠다. 갑자기 아쉬웠다. 비행기가 미뤄졌다는 소식을 목요일에 듣고 속으로 많이 기뻐했다. 그리고 금 토 일 더 주어진 시간이 선물이라도 된 마냥 엄마와 나는 10일 간 했던 대화보다 더 많은 얘기를 했다. 첫 며칠과 달리 엄마와 손을 잡고 걷는게 익숙해졌고 나는 학교가 끝나고 엄마를 보러 가는 일이 설레기 시작했다. 엄마네 숙소에서 자고 난 아침엔 숙소 앞 예쁜 카페에서 나는 생크림 올라간 카푸치노를, 엄만 더블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가을이 되자 손이 건조해져서 손을 더 많이 뜯었다. 엄마는 내가 식탁 밑으로 손을 뜯을 때마다 기껏 손까지 예쁘게 낳아줬거만 아직도 그걸 괴롭힌다며 타박을 주기도 하고, 제발 그만 뜯으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가끔은 자기 손에다 핸드크림을 잔뜩 묻혀 내 손에 발라주기도 했다. 엄마 손은 내 손보다 살짝 더 차갑고 더 부드럽다. 부드러운 엄마 손이 까칠해진 내 손 끝에 닿을 때마다 내 손이 얼마나 거친지 느껴지는게 싫어서, 엄마가 핸드크림 발라주겠다고 할 때 마다 나는 매번 핑계를 대며 도망치려 했다. 엄마가 떠난 날, 나는 수업이 있어서 엄마가 기차역에서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대신 길거리에서 포옹을 했는데, 그게 더 잘된 걸 수도 있다. 기차역에서 혹은 공항에서 하는 이별은 너무 슬프다. 그 사람이 멀리 떠나는게 너무 명백한 장소가 아닌가. 그 날은 공허했지만 버틸만 했다. 새삼스러웠다. 평생을 같이 산 엄마에게도 며칠 새에 '정'이 들 수 있구나다음날은 오전 수업을 하는데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그래서 공강 시간 동안 숙소 앞 카페로 가보기로 했다. 첫 날 다소 쌀쌀 맞으셨던 아저씨는 이제 날 반갑게 맞아주셨다. 내가 주문을 하기도 전에 더블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하나씩 달라고 직원에게 말했는데, 내가 엄마는 어제 떠나서 없다고, 카푸치노만 달라고 했다. 엄마와 항상 앉던 그 자리에 앉았다. 이틀 전 그 자리에서 엄마가 내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줬었다. 진짜 찌질한데 조금 눈물 났다. 카페 사진을 찍어서 한국에 도착한 엄마에게 보내주었다. 그르노블에 엄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생겼다. 


일을 하던 엄마. 다른 아줌마들과 달리 결혼 후에도 자기 이름을 걸고 일을 하는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엄마가 딸 둘을 키우면서 커리어가 늦어진만큼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마자 '독립'에 대한 강박증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엄마가 맘 편하게 일하려면 내가 엄마 없이도 잘 해야 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잘 해야 해. 순전히 내 능력으로 얻지 않은 것은 언젠가는 빼앗기게 돼있어. 라며 자신을 강하게 채찍질했다. 자매 아니랄까봐, 나와 내 동생은 그런 면에선 똑 닮았다. 남자한테 얹혀가려는 여자를 한심하게 보고, 여자로서 자신의 일은 자기만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남자도 장애물이라고 망설임 없이 규정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내가 꽤나 독립적인 여성으로 자라는데 성공했다고 은근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면에서 엄마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단 거 자체가 나에겐 작지 않은 사건이었다. 겉으론 강하고 아무도 날 건들이지 말라고 내 인생의 결정은 내가 한다고 고집 부리지만, 사실 나는 아직 엄마품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부끄럽거나 하진 않다. 이게 나인걸 어떡해. 몸만 컸지 아직도 출근하는 엄마를 보내면서 현관 앞에서 목청 떨어져라 울던 4살 여자아이다. 혼란스럽기도 하다. 엄마는 나에게 '엄마'라기보다 '친구'이길 바란다. 모든 엄마는 딸의 친구이기를 바랄테지만, 나도 정말로 엄마와 '친구'같은 사이가 되기 전까진 이런 관계의 의미를 잘 알지 못 했다. 엄마와 친구가 된다는 건, 더 이상 엄마가 '엄마'라는 신성한 위치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엄마'는 희생적이고 사랑이 넘치고, 나를 위해 존재하며 모든 걸 포용한다. 그녀는 완벽한 어머니이자 완벽한 아내. 악이 내재해선 안 되는 사람. 내가 맞게 설명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어머니'란 말엔 무언가 신성한, 불가침영역적인 무언가가 있다. 한편, 엄마와 친구가 된다는 건 엄마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보는거다. 엄마도 실수를 하고, 욕망을 가지고, 원인 모를 우울이나 분노에 휩싸이는 평범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엄마의 체류 동안, 나는 엄마와 '사람 대 사람다운' 대화를 많이 했다.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알아가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특히나 엄마를 신성화하고 이상향으로 삼아온 사람에겐 더더욱. 가장 무서운 것은 엄마가 저지른 실수들을 내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될 까봐 하는 우려이다. 어떤 사람의 의견이나 삶에 대한 가치들에 대한 비판적 수용, 즉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견해의 차이로 남길 것인가의 문제는 상대방을 객관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반면 나는 엄마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보는 과정을 거치고 있긴 하지만 나에게 여전히 엄마는 엄마다. 내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존재이고 여전히 그녀는 나의 롤모델이다. 이런 내가 엄마를 친구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엄마의 가치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성숙한 어른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닐까?


이십대 중반의 여성이 블로그에 엄마 글을 쓰는건 유치하거나 상투적일 것이다. 나는 24살의 허세녀라 유치한 것도 싫고 상투적인 것도 싫지만 나의 팔할은 엄마를 따라하면서 만들어낸 자아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적는 블로그에서 엄마 얘기가 빠진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 같았다(쓰길 잘 한 거 같다. 이렇게 긴, 글다운 글이 나올 줄은 예상 못 했다). 엄마에 대한 보고싶음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보고 싶을 때 그 감정은 확실하다. 속상한 걸 얘기하고 싶다거나, 손을 잡고 싶다던가. 키스를 하고 싶다거나, 아님 그보다 더 한 걸 하고 싶다거나. 하지만 스킨쉽도 서툴고 사랑한다는 말도 서툴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떠들지 못했던 애교 없는 딸은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던 그 부드러운 손이 그립다고 밖엔 할 수가 없다. 그것 마저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서 오늘도 아마 '엄마 뭐해?' 정도의 메시지로 말을 걸고, '한국 돌아가니까 좋아?'라는 쪼잔한 질문으로 섭섭함을 내비치겠지. 난 분명 엄마 배에서 나왔을텐데, 알고 지낸지(?) 만으로 23년. 그녀는 여전히 나에겐 어려운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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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3. 07:54 from 흘러가는대로

※※※현재 해외체류 중인 주인장의 한국어 실력이 인생의 최저점을 찍은 관계로, 문장의 질이 매우 조악함을 경고하는 바입니다. 


* 백만년의 포스팅. 나른한 오후에 취한 블로그에 가뭄이 왔다. 


그 이유를 분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 

1. 멜론 작동 불발 -> 음악 스트리밍 불가능

2. 하이디스크 작동 불발 -> 영화 다운로드 불가능

3. 음악/영화로의 접근성과는 별개로, 주인장이 요즘 그냥 생각 자체가 없.음

4. 불어 아니면 영어만 해대서 한국어가 퇴화함 ->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도 한국어로 표현할 수가 없음. 근데 불어나 영어 역시 생각을 표현하는 단계까진 이르지 못해서 외국어로 포스팅할 엄두는 차마 못 낸다는 슬픈 이야기 = 진정한 의미의 언.병이 됨.(일년 중 60%를 언어에 쏟고도 언어 때문에 삼수 문턱까지 갔던 시절에도 이보다는 말을 잘했나니..)


* 그러던 중, 오늘도 저녁 식사 후 어김없이 침대 안으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하다가, 5월 핸드폰을 잃어버리기 직전 컴퓨터에 백업해두었던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노래 저 노래 돌려 듣다, 그 노래들을 들으며 썼던 포스팅이 생각나 내 블로그에 방문, 마치 쓴 기억이 없는 사람 마냥 글들을 훑어보기 시작함. 불과 작년-올 초인데도 몇 년 전 일기를 꺼내보는 듯한 낯섦과 반가움에 '기록'의 중요성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뭐라도 써야겠다 싶어, 황급히 글쓰기 창을 눌렀지만 정말 요즘 머리가 굳었는지 쓸 것도 없고 문장도 매끄럽지 못 해 그 동안 절블한 것이 심히 후회된다. 블로그 시작 초기만 해도, 글 하나 하나 심혈을 다해서 올렸었고 여러모로 어설펐지만 모두가 내 새끼들마냥 예쁘기만 했다. 시작하는 게 반이란 말에 동의하지만, 백년의 사분의 일을 살아본 결과, 시작하는 것보다도 어렵고 중요한 건 미약하게나마 시작한 걸 지속하는 거라는 생각. 


* '기록'을 위한, 몇 가지 근황

1. 7/31-8/6 Morocco 방문. 절친 파티마 자라(first name이 Fatima Zahra다. 줄여서 "파티마"나 "자라"라고 불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꼭! 붙여서 불러줘야 한다)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날 초대했다. 추후 여행 요약 포스팅 예정. (사실 해변가에서 태닝한 것 말곤 딱히 한 게 없다고 한다.)

2. 건담 프라모델 제조 시작.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 타입이다. 신입생 때부터 재즈 댄스, 보컬, 피아노 등등 취미 활동에 몸을 불사른 이유도 본격적으로 사회에 입문하기 전에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 외의 모든 걸 잘하고 싶어하는)완벽주의 때문에, 뭐든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더 이상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 그나마 찾은 것은 피아노. 근데 여기선 레슨을 받을 수 없으니 또 뭘 시작해볼까 하다가 건담 프라모델에 꽂혀버려서 아마존으로 구입했다. 내 어린시절 장난감 중 중요한 것들을 모아놓은 장농을 열어보면 미미와 쥬쥬 상자 사이 사이에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가 아름답게 자리잡은 것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미를 학교(=부엌)에 보내고 나는 집(=내 방)에 남아 몇 시간씩 매뉴얼을 쳐다보며 스타워즈 우주선들을 만들곤 했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그 때 기억이 떠올라, 손으로 하는 작업이 잡생각도 안 들고, 조립은 잘 하고 말 것도 없기에 꽤 괜찮은 대안이다 싶어 주문. 배송이 한 달이나 걸리긴 했지만, 꽤 만족스럽다. 다만 상자는 겁나 큰데 완성품은 쪼매나 보이는 게 아쉬움. 난 뭐든 큰 게 좋아. 비록 첫 건프라지만, 더 나아가 샤넬 건담, 프라다 건담같은 커스텀 건담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사실 아직 다 완성하지도 않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음.

3. 9개월 프랑스 체류의 반이 지남. 지난 4개월. 공부도, 여행도 열심히 하지 않아 아쉽지만 생존력만큼은 200% 상승.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 안 하는 강심장의 소유자로 거듭나는 중. 대신 스트레스와 슬럼프의 영향으로 전반적으로 예민해진 상태. 체중은 +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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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9. 11:44 from 흘러가는대로

프랑스에 온 지 3달이 다 되어간다.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어, 그러면 좀 더 자신있게 내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을까 싶어서 라고 말했을때, '왜 굳이? 알고보면 사람 사는 모습 다 비슷해.'라며 내 말문을 막았던 친구가 있었다. 3개월만에 한국에 돌아가서 그 친구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이 생겼다.


- 중국엔 선거가 없다. 중국이 정치체계상으로 아직 공산주의 국가라는걸 아는 사람에게 저 문장은 당연한 원리겠지만, 막상 중국애들이 저 내용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했을땐 새삼 놀라웠다. 이 애들은 선거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전무하다. 4월 달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시장 선거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프랑스인 선생님이 각 나라의 선거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자 반의 절반을 넘는 중국애들이 웅성웅성거렸다. 설명을 들어보아하니, 그들은 선거 자체가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물론이요 대통령도 자기 손으로 뽑아본 적이 없고 어느 날 일어나보면 대통령이 바뀌어 있는 상황이 그닥 낯설지 않다는 것이었다.(그 와중에 어떤 중국 여자애가 살며시 손을 들어서 자기 아버지는 선거권이 있다고 용기 있게 말해주었다ㅎㄷㄷㄷ) 얼마나 선거에 대한 개념이 안 잡혀있냐면, 빨간색이 진보당을 의미하고 파란색이 보수당을 의미한다는 것조차 잘 몰라했다. 극우당과 극좌당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 조금씩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당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개념도 살짝 어려워하는 듯 했다. 


-프랑스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혁명과 혁명 정신(자유 평등 박얘)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그 연장선으로 이민자를 수용하는 개방 정책이 매우 활발한 나라이고 실제로 영주권을 따는 것이 비교적 까다롭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실제로 거주하는 이민자들(본인이든 그 2세든)이 입 모아 하는 말은 프랑스가 그렇게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일부 프랑스인들이 인정한 바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요인은 외국인들이 일으키는 사회적 혼란, 즉 범죄와 치안 불안정이다. 나 역시 외국인이라, 이 나라에 머무는 외국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인식이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프랑스인들이 외국인 이민자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는 충분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고 교육이나 직업 면에서 프랑스인들의 자리를 차지하는건 사실이지 않은가. 게다가 프랑스는 무상 교육의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라서 교육비가 싸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대학교 등록금은 거의 반공짜나 마찬가지..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영어권 국가 대신 프랑스 유학을 택하는 한국인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 내는 프랑스어 학원비나 어학 연수비에 대학 등록금까지 합쳐도 영어권 국가의 대학 등록금보단 싸기 때문이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불쑥 들어와 대학이나 직장에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면, 그리고 필요한 교육을 받거나 돈을 벌고 나서는 자기 나라로 휭하고 돌아가버린다면, 혹은 눌러앉아서 문제나 일으키고 있다면, 프랑스인들로선 이민자들을 싫어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문제를 일으키는 이민자 민족으로 눈총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아랍인이다. 우리가 흔히 아랍계라고 부르는 국가들은 대부분 북 아프리카에 위치한다. 프랑스에서 만나는 아랍계 출신들은 대개 알제리아, 튀니지아 그리고 모로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많고 그 중에 여럿은 여전히 일상에서 프랑스어를 쓰며 대학교부터의 고등 교육을 아예 프랑스어로 제공하기도 한다. 프랑스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쓰기 때문에 프랑스에선 오히려 흑인보다 아랍인들이 더 많다. 

아랍계 유입의 역사가 오래 되었고 그 숫자가 많음에도 그들과 프랑스인들의 관계에 여전히 긴장감이 존재하는 것은 지배의 역사 때문이다. 프랑스는 한떄 이들은 '지배'했었기 때문에 살짝 낮추어 보는 경향도 없지 않고, 독립 전쟁을 치룬 나라의 경우 한 때 적국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그런 묘한 기류..? 부모님이 알제리아에서 이주해왔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빨간색 프랑스 여권을 지닌 한 친구는 자라면서 자신이 겪어온 은근한 차별, 그랑제꼴을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을 하는 불량청소년으로 비춰졌던 경험들을 얘기해주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모아 다시 부모님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고, 대학교를 들어가고 직장을 구하는 큰 틀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 같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서 종종 과정 자체를 목표로 삼는 거 같다는 인식을 받은 적이 많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결국 중요한 건 '행복'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따라서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거다. 내가 지내고 있는 홈스테이 부모에겐 도에가인 딸이 있다. 어제 그녀와 단 둘이 저녁 식사를 했는데, 내가 미대를 나왔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자신이 체육을 전공했다고 말해주었다. 어렸을 때 운동이 좋아 온갖 운동을 섭렵했고 대학도 체육학과를 들어갔는데, 체육 선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하고 소방관 시험을 치룬다. 시험엔 합격하지만 자리가 나질 않아 결국 소방관이 되는 일에 실패하는데, 그러다가 1년짜리 도예 교육 과정을 발견하고 거기에 등록한다. 그게 2006년, 그녀는 8년째 도자기를 굽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하는 대화는 그래서 항상 재미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만 들어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공교육-대학-취업 이 큰 틀은 있지만, 그들은 이 길이 아니란걸 알았을 때 돌아가는 것을 크게 주저하지 않는거 같다. 그래서 바꾸고 쉬고 여행 다니고 또 시작하고. 반면 한국 일본 중국이 추구하는 좋은 삶의 방정식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공교육+사교육*10=>좋은 대학+스펙=>좋은 직장.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가 지형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도 든다. 유럽은 경계선으로만 이루어진 대륙이다. 프랑스만 해도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맞닿아 있고 경계선만 넘으면 바로 이웃 국가이다. 프랑스는 워낙 이민자가 많아 더더욱 그렇겠지만 '순수 혈통'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은 유럽 전체에 해당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렇듯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교류하고, 또 공존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중국 한국 일본은 좀 다르다. 한국은 중국 대륙과 붙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분단 이후 남한은 섬나라나 다름없었다. 중한일은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교류가 불가능하다보니 사회가 자연스럽게 폐쇄적이게 된게 아닐까 싶다, 폐쇄적이라는게 공산주의 국가같다는 말을 하는게 아니다. 다만 타 사회와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획일화되고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한정된 자리들을 차지하려다 보니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사는 게 각박하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거다.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보기 힘든 환경에 놓여있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의 방식 외에 다른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온전히 깨닫는게 매우 어려워진다, '나는 너희와 다르게 살거야!'라고 해도, 내 왼쪽에 있는 사람과 내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똑같은걸 하고 있다면 이 연쇄를 끊는 게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중일 사회에서같이 '틀리는 것'과 '튀는 것'을 꺼리는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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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3. 04:30 from 흘러가는대로


* 프랑스에 도착한지 6일째. 애인씨에게 정말 가서 정말 공부만 할거니 걱정말라고 얘기해두긴 했는데, 솔직히 정말로 공부  밖에 할 게 없을 줄은 몰랐다.(...) 6일 내내 어학원 이틀 간 거 빼곤 방 이불 속에 있었다. 흠흠 변명을 하자면, 방이 추웡ㅜ. 차라리 밖이 더 따뜻하다. 그럼 밖을 나가면 되잖아 멍청아. 라고 하신다면, 밖은 무서웡ㅜ. 내가 지금 있는 동네는 촌동네의 촌동네라, 나같이 키 크고 예쁜 동양여자가 드물다. 모두의 시선이 부담스러웡^_ㅠ!.. 은 개뿔, 그냥 무섭다. 회화할 때 단어는 얼추 나열할 수 있는데, 듣기가 잘 안 된다, 머리도 프랑스 오기 직전에 부산 피난민 마냥 민자 단발로 잘라버려서 자신감이 바닥을 기고 있다. 외국에서도 말은 좀 못해도 목소리라도 커야 무시 안 당하는데 말이 자신없다 보니 목소리가 자꾸 기어들어간다. 그래서 며칠째 방 침대에 누워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랑 카톡하다가 홈스테이 집주인인 마리앙쥬가 와서 저녁을 해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까지 와서 집벌레가 됐다. 나는 벌레가 되더라도 프랑스 벌레가 될테야!!!!! La BURLE francaise!!!!! 


그 와중에 레벨테스트 결과는 쓸데없이 좋아서, 우리 반에 한국인 나 밖에 없다.(...) 우리 반은 중국인이 점령했다. 15명 중에 8명이 중국인인 듯하다. 그 와중에 땅덩어리는 진짜 크구나 느끼는 8명 다 다른 도시에서 왔다ㅋㅋㅋㅋㅋㅋㅋ 대륙의 사이즈란! 사실 한국이었다면 "아 쟤네 중국인이구나"라고 생각했을텐데 프랑스에 오니까 "와 쟤도 동양인이다"라고 하면서 묘하게 반가워진다. 게다가 중국애들 착하다. 인사도 잘해주고 옆자리에 앉아서 눈 인사해주고 웃어주고. 오늘 묘하게 이연희를 닮은(아주 눈꼽만큼) 중국 여자애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줘서 나도 중국어로 '니하오'라고 받아쳐줬다. 중국 여자애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줬다. 고마웠엉 내일은 니 이름을 물어볼거야^^ 나는 까탈스러운 도시 여자지만 외로움 앞엔 장사 없나보다. 나도 다음 달에 새 반 편성되서 새로운 차이니즈 걸이 오면 반갑게 맞아줄거다. 미국에서 온 애들이 3명 있다. 그 중 남자애 두 명은 아랍계라서, 당연히 아랍계에서 온 줄 알았는데 미국인이라고 하니까 왠지 이상했다. 미국에서 아랍애들 보면 아 아랍계 미국인이구나 싶은데 여기서 아랍인 보면 아랍인이어야 할 거 같다. 하긴, 여기 있는 프랑스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기 전엔 다 내가 중국인인줄 안다. 이해하기로 했다. 


* 지금까지 배운 것들 >>

- 프랑스 가정에서 밥을 먹을때 주의할 것은 첫째, 밥을 먹으면서 얘기하지 않는다. 둘째, 쩝쩝거리지 않는다.

- 프랑스 가정 내에서는 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녀선 안된다.

- 프랑스 남자들은 생각만큼 잘 생기지 않았다. 잘 생긴 애 있고(난 아직 못 봤지만(...)) 못 생긴 애 있고. 그냥 여기도 사람 사는 나라다. 

- 프랑스 여자애들은 그닥 마르지 않았다. 여기가 파리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의외로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미인도 없음. 

- 생각만큼 최첨단의 패션을 선보여주는 나라는 아니다. 나 있는 그르노블은 대학 도시이고, 내가 공부하는 곳은 대학들이 모여있는 그르노블 대학촌(?) 안에 속한 한 대학에 속한 어학원이다. 우리 나라 대학생들은 잘 꾸미고 유행에 되게 민감한데, 여기 애들은 정말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오고 학교를 오기 때문에 옷을 입는거 같다. 옷을 벗고 학교를 갈 순 없잖아...? 어느 나라를 가든 아 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옷을 입는다 대충 파악할 수 있는데 여긴 아직 잘 모르겠다. 진짜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옷 입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ㅂ쇼퍼백? 보스턴백? 그런거 없음. 여학생들도 닥치고 백팩ㅇㅇ

-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 사람만큼 친절하진 않다. 근데 물어보면 대답은 잘 해준다. 소심한 사람은 와서 공부할 때 고생 좀 할거다. 


* 반 애들이랑은 인사도 하고 그러지만 아직 같이 다니는 친구는 없다. 여기서 한국인들 만나면 불어 안 늘까봐 굳이 친해져야겠다는 생각 안 하고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심심하다. 아직 혼자 돌아다니기는 주눅 들고 외롭기도 하고. 근데 내가 걱정한 것 만큼 외로움 타고 있지는 않다. 초중고 내내 학기 초를 굉장히 힘겨워했던 기억이 난다, 학기 초엔 같이 다닐 그룹이 정해지려면, 얼굴에 철판도 좀 깔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나는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인데다가 여자가 많은 환경을 항상 어려워했다. 게다가 나는 그 시절 아주 길고 얇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소외감을 느꼈었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게 된 건, 내가 혼자 시간 보내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친구가 많아야한다" 혹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거 같다. 그러다보니 남들에게 내 본모습이 아닌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학교에 와서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던 건 더 이상 하루 열두시간 이상을 닭장 같은 곳에 갇혀서 똑같은 아이들과 일 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었던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얻은 친구들만으로도 내 인생은 충분히 풍요로울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지 보고싶다. 

어쨌든 지금은 걱정과 달리 큰 외로움이나 소외감 느끼지 않고 어학원 다니고 있다. 낮에 심심해서 죽을거 같은때 빼고. 아 그래도 여기 미리 정착한 누군가가 알려주면 참 좋을거 같은 사항은 몇 가지 있다. 버스 카드는 어디서 사는지, 체류증 서류를 보낼 봉투는 어디서 사는지, 핸드폰 요금제는 어느 회사 것이 좋은지 등등. 큰 거에서부터 작은 거부터 '이거 다 아는 사람이 옆에 있음 좋겠다'라고 생각하다보면 급 외로워지지만, 이런거 하나하나 다 부딪혀보는 것도 인생 경험이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독고다시 내 인생ㅡ


* 영화 보고 싶은데 아줌마가 와이파이 너무 많이 쓰면 돈 더 나온다고 조심하라고 하셨다. 아... 영화 든 외장하드 안 갖고 온 거 진짜 후회된다. 시간 남을 때 영화 리뷰나 실컷 쓰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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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