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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방에

오디오 소파 

책 씨디 가득가득 채워놓고

그렇게 딱 한 달만 살았으면 좋겠다

밤마다 형광등 말고 스탠드 몇 개랑 캔들만 켜놔야지

스마트폰은 없애고

외국으로 여행 간다 뻥치면 아무도 굳이 안 찾겠지?(평소에도 날 찾는 사람 얼마 없지만ㅋ)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줘야겠다

일주일에 하루 저녁은 비워둘게 날 보고싶은 사람은 그 시간대에 언제든지 와서 날 볼 수 있게


자유!!!!!!!!!!!!!!!독립!!!!!!!!!!!!!덕질!!!!!!!!!!!!!!!!


이글도내일보면부끄러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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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2. 00:32 from 흘러가는대로

1. 한국에 도착하고 몇 달을 카페에tj 카라멜 마끼아또만 마셔댔다. 프랑스에서는 그로노블에서 기차를 한시간 반동안이나 타고 나가야 먹을 수 있는 음료였다. 귀국한 게 12월 말이니 이제 5개월쯤 됐으려나. 세보니 질릴 때도 됐다. 요즘 나의 초이스는 연유 라떼/사이공 라떼/아시안 라떼 etc. 달긴 마찬가지지만 카라멜 시럽만큼 인공적인 맛은 아니고 부드러워서 커피 우유 같다. 역시 최종 메뉴 선택은 달라져도 어린이 입맛은 어디 안 간다. 커피 체인에서는 안 팔고 개인 가게에서도 흔히 팔지않는 메뉴가 아니라서 메뉴판에 보이기만 하면 고민 없이 연유 라떼를 고른다. 찾아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2. 시간이 흐르는게 무섭다. 대학에 입학한지 5년째. 제일 신기한 것은 고등학교를 3년 밖에 안 다녔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내게 고등학교 생활은 너무 길고 어두운 터널같이 느껴진다. 내 인생의 암흑기!!!!!!!!!! 왜 이렇게 시간이 후딱 갔나 싶더니, 내가 마지막으로 학기를 다닌 3-2땐 아직 3년차여서 크게 안 와닿었나보다. 3년과 5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고등학생의 내가, 신입생 내가 25살의 스그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멋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흐흐


3. 나도 이제 슬슬 구직활동을 해봐야겠다- 싶다가도, 공강날 평일 오후 해가 중천에 떠있을때 소파에 누워서 오디오에 재즈를 틀어놓는게 너무 좋아서, 느즈막한 오후 대로변 옆의 카페에 앉아 멍하게 하늘색 바뀌는걸 바라보는게 너무 좋아서. 이번 여름은 그냥 집에 있을까 하는 게으른 생각들이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졸업하면 잉여로워도 학생 때와 같은 여유는 없을거 아닌가? 뭐? 자기합리화라고? 맞다. 흠흠


3-1. 나중에 내 집을 갖게되면 소파와 오디오만은 최상급으로 구비할 생각이다. 


4. 나만의 공간 나만의 책 나만의 음악 나만의 시간. 나의 세계에 유난히 집착하는 내가 과연 누군가의 와이프,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걱정이 오랫동안 함께 하고픈 사람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그 전에는 전혀 걱정이 안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기적이게도 내 안에 멋대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놓고는 금새 떠나버렸다. 나는 그래서 더더욱 나를 '나만의 것'들로 채우려고 했다. 타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어도 자리가 부족해 못 내줄 정도로 꽉꽉 채우고 싶었다. 그 이후에 등장한 한 사람은 자기를 위한 공간은 없냐며 상처를 받는다. 오랜 외로움, 보답받지 못한 감정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봐왔다. 외로움이 사람을 얼마나 삐둘어지게 만드는지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겁이 난다. 역시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여자는 그냥 평생 혼자 사는 것이 나은걸까? (고양이를 키우면서 늙고 싶기도 했는데, '더러운 집사랑 살아야 하는 고양이는 무슨 죄인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여기까지가 4/27일 쓴 글


1. 김작가랑 칵테일을 마셨다. 김작가는 칵테일 하나,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알딸딸하게 취해선 눈을 야하게 깜빡거렸다. 너 이 년아나중에 '아무런 사심없이 알고 지내던 오빠랑 가볍게 술을 마셨는데 그 다음날부터 계속 카톡이 오니 피곤하다'는 소리 따위 하지마라 너 술마시면 눈을 요상야리꾸리하게 떠.. 나는 칵테일 두 잔을 마셨는데 마실 때 술 맛이 안 느껴진다며 커피마냥 포풍 드링킹하다가 결국 두 잔에 얄랑얄랑해졌다. 목감기 때문에 밤이 깊어질수록 목소리가 허스키해졌다. 술을 마시니 그것도 기분 좋게 들리더라. 김작가와 나는우리 너무 저렴하게 취하는거 아니냐며 좋아했다. 술 두 잔에 이런 감정적 호사를 누릴 수 있다니 술 약한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1-1. 우리가 갔던 칵테일바는 작고(테이블이 세 개 뿐) 적당히 깔끔해서 컷팅엗지 모던 삐까뻔쩍은 아니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거기에 카운터 하나, 드럼 세트 한 개와 재즈가 나오는 큰 오디오. 바라기 보다 남의 집에 하우스파티 간 느낌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거 하나 있엇음 좋겠다. 좋은 음악 들으면서 술도 같이 마신게 너무 오랫만이라 감동적이었다.

 

2. 밤공기가 너무 좋다. 이런 날씨엔 밤마실만 나가도 기분이 금방 좋아진다. 너무 오랫만에 느끼는 기분이라 왜인가 되짚어보니 프랑스로 떠난게 작년 겨울 끝자락이라 그런거였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간절기 밤마실을 만끽한게 2013년 가을,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이라는 얘기다. 와.. 남자친구를 만나기전이라니 이젠 기억도 안 난다. 내가 언제 싱글이었던 적이 있었나?(재수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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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22. 23:00 from 흘러가는대로


1. 고민이다. 블로그에 좋은 것들을 많이 올리고 싶은데 요즘 글빨에 자신감이 떨어져서 글은 못 올리겠고, 글을 못 쓰겠다면 좋은 컨텐츠를 추천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생활에 치이다보니 여의치 않다. 그래서 일기도, 추천도 아닌 .들만 잔뜩 올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투데이가 10을 넘나드는 걸 보며 매일 내 블로그에 오는 사람들은 뭘 기대하고 방문하시는걸까 싶다. 우연이든 의도든 간에, 방문하시는 분들 모두 고마워요!


2. 요즘 학교 도서관 앞에서 비평과 창작이 매대를 세워놓고 책들을 싸게 팔고 있다. 책을 사도 다 읽을 확률은 50%도 안 되는 주제에 이상하게 책 욕심은 많아서 어제 오늘 내내 침을 흘리다 결국 세 권이나 샀다. 그 외에도 내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책들이 많았으나 너무 두껍고 비싸서 아쉬운 척(!)하면서 포기. 비싼데다 사봤자 다 읽지도 못하고 결국 표지만 훑은 다음 끝내지도 못한 책을 추천하고 다니는 한심한 짓을 할게 뻔했다. 몇 년 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다던 친한 군인 친구에게 한때 읽다가 포기했던, 하지만 '좋은 책'임은 분명한 철학 입문서를 추천해줬었다. 그 친구는 그 책을 다 읽고 어마어마하게 좋은 책이라며 나를 다시 보게 됐다고 했다. 1/3도 못 읽은 책을 추천해서 칭찬을 받다니. 뿌듯하기보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요즘 여러모로 느끼지만 배움에 대한 내 열의는 호기심이라기보단 지적 허영심에 더 가까운거 같다. 지적 호기심을 지녔다고 하기에 나는 너무 게으르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책은 커녕 신문 기사 하나도 한 호흡으로 읽어내리질 못하니 가히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내 친구들 중에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오해를 풀고 싶다. 사실 너한테 추천한 책을 내가 읽었을 확률은 50퍼 밖에 안돼.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도망)


3. IZE 매거진의 여성 혐오 엔터테인먼트 특집 기사 '이것이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이 기사를 쓴 최지은 기자의 글로 아이즈에 입문했었다. 오피니언 글을 논리적이면서도 무겁지 않게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요즘 실감하고 있는데 최지은 기자는 이 진지함과 가벼움의 줄타기를 잘하는 것 같다. 게다가 요즘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이란 주제와도 관련 있어서 엄청 재미있게 읽음.


기사의 요지는 텔레비전이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관련된 소구들을 끊임없이 차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와 예능, 개그 프로그램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다뤄지는 여성 비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에 우리는 너무 무감각해져있고 또 너무 익숙해있다. 누군가 기분 나쁜 농담을 했는데 여기에 '기분이 나쁘다'라고 피력하면, '농담일 뿐인데 왜 그렇게 진지하냐. 찔리는 것 있냐'며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는 격. 현대 텔레비전의 여성 비하는 딱 이 수준이다. '기분 나쁜 농담' 축에도 못 낀다. 뭔가 기분 나쁜데 딱히 뭐가 기분 나쁜지 찝어서 설명 못할거 같은 그런 농담이랄까.  


텔리비전 폭력물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커뮤니케이션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이다. 그 중에서도 Aggressive cue와 Priming effect 은 텔레비전이 지닌 '학습'의 효과를 여실히 보여주는데, 그 과정은 이러하다 : 


1. 시청자가 폭력이 일어나는 상황의 맥락적인 디테일을 관찰한다.

2. 반복적으로 1의 화면에 노출되면 시청자는 폭력이 일어나는 상황과 그 속의 디테일(특히 폭력의 대상)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다.

3. 시청자가 현실에서 폭력이 일어났던 상황과 비슷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평소 텔레비전에서 봐왔던 폭력물과 관련있는 생각 혹은 행동을 하게 된다. 텔레비전 속에서 펼쳐줬던 가상 현실이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 상황에서 할 사고/행동 방식에 영향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폭력물에서 악당 흑인을 백인 경찰이 잡아서 무찔렀다면 이런 화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아이들은 '흑인은 때려도 된다'라는 고정 관념을 형성하고 이것이 현실 세계에서 흑인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이 이론을 설명하시면서 개그 프로그램들이 여자개그맨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와 연결지어 설명하셨다. 뚱뚱하고 못생긴 개그우먼이 구박을 당하는걸 보며 시청자가 웃을때, 아이들은(어른도 예외인거 같진 않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는 천대받아도 된다'라고 생각하게 되는거다. 그래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사소해보일지언정 절대 '가벼운 농담'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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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8. 05:13 from 흘러가는대로


1. 시간이 무섭게 간다. 4월 1일엔 기분이 이상했다. 작년 바로 그 날, 프랑스 어학연수 기관에서 첫 수업을 했었다. 만우절이라 프랑스 만우절의 유래를 소개하는 텍스트를 읽었었는데, 집에 와서 모르는 단어를 줄치다보니 무려 프린트의 70%를 색칠해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선생님이 뭐라 하시는지도 안 들리고 일년 동안 공부한 양이 고작 이건가 싶어서 앞에 놓였던 8개월이 막막하게만 느껴졌었다. 이젠 꿈같은 얘기지만 지금도 방 구석구석에서 교통카드라던가 영화표 같은게 삐져나오면 내가 프랑스에 있긴 했었구나 싶다. 12월 말에 돌아왔는데 벌써 4월 중순이라니. 프랑스에선 어떻게 그렇게도 시간이 느리게 갔나 싶다. 그곳에서 품고 오고자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이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 잃어버렸다기보단 그 곳에서의 경험과 생각들도 이젠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떠날 땐 다시 못 돌아올까 그렇게 아쉬웠는데,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했던 것만큼 팍팍하진 않다. 내 집이라 편안하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재충전 이후에 다시 시작해서인지 요즘은 공부도 재미있다. (열심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2 시간이 무섭게 간다2. 얼마전 여지와 얘기하다가 우리가 알고 지낸지 올해로 9년째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9년이라니. 11살짜리가 스무살이 될 수 있는 시간이다. 그중 고등학교 생활이 3년 뿐이었다는 게 더 놀랍다. 그땐 왜 그렇게 다시 시작하는게 늦었다 생각했을까.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나이였는데... 


요즘 고등학교 때 들었던 노래들을 다시 꺼내듣고 있다. 나는 대학 입학 이후로 가요를 잘 듣지 않았으니, 내 평생동안 가장 활발하게 한국 가요를 들었던 시기의 노래들인 셈이다. 하나둘씩 찾아 들으니 그 시기에 들었던 다른 노래들도 꼬리물기식으로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 탐색전의 결과로 찾은 몇가지 팩트 :

- 아이비표 발라드는 7년이 지난 지금도 꽤 들을만함..

- 휘성의 With me는 무려 중1때부터 재수때까지 7년동안 내 엠피쓰리에 있었다.

- 하우스룰즈 1집. 존잘러 바로는 언더 뮤지션은 비쥬얼이 딸린다는 내 선입견을 상큼하게 깨주었었다. 

- 러브홀릭을 좋아했었나보다. 나도 생소함;; 심지어 러브홀릭 1집은 집에도 있더라.

- 클래지콰이 1, 2집

- 거미 노래도 꽤 들었었나보다. 노래는 좋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그닥 내 취향이 아니다.

- 난 거미보단 린이었다. ...사랑했잖아(노래방 가서 검색하려면 앞에 점 세개 붙여야 나온다)는 여전히 내 노래방18번이다.

- 아이돌 곡으로는 소녀시대-키씽유(1학년 겨울, 동아리 선배들 졸업할때 이 노래 맞춰서 춤 췄었음), 빅뱅-눈물뿐인 바보, 원더걸스-텔미(역시 수능 위문 공연으로 준비했었음), Anybody 


난 일기를 안 써서 그나마 과거의 기록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것들이 엠피쓰리 목록이다. 근데 어떤 기기든 한 번 쓰면 망가질 때까지 쓰는 버릇 때문에 들여다볼 수 있는 엠피쓰리가 없다. 고1때부터 재수할때까지 쓴 아이팟 1세대가 먹통인데 안에 기록들이 궁금해서 고칠까 싶다가도 그거 고치는데 돈을 쓸 가치가 있을까 싶어서 무한 보류 중. 


요즘은 어떤 일이든 돌이켜보면 억울하다거나 후회한다는 감정보다 사필귀정이었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크고 작았던 역경들이 지금의 날 만들었다. 현역 때 운좋게 대학을 합격했더라면 난 고등학교 때의 한심한 마인드에 대한 반성 없이 성인이 됐을테고, 그때 그 남자한테 호되게 차이지 않았으면 블로그를 열지 않았을테고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날 의지도 얻지 못했을거다. 다만 지난 15년간 내가 이뤄온 변화들을 긍정하는만큼 그 과정을 기록하지 않은 건 많이 후회가 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그래도 2013년 여름 이후의 기록은 이 블로그에 있다는거다. 더 늦어지지 않은게 다행이지. 요즘 글 쓰는게 소홀해서 미안하다. 시험만 끝나면 다시 예뻐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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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6. 21:40 from 흘러가는대로

1. 개강한지 한 달이 되어간다. 계획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읽어갈 것들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 하고 있고 과제도 제출 전날 허겁지겁 처리하고 있다. 신문도 일주일에 잘 하면 한 개 읽고 있고 인문학 스터디를 위해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읽어가는 것도 완벽하게 해내고 있지 못하다. 그 와중에 벌려놓고 싶은 건 많아서 몸이 근질근질하다. 몇 달 째 운동을 쉰 탓에 죽어가는 엉덩이를 보고 있자니 내일이라도 헬스에 등록하고 싶어지고 얼마전엔 백예린 노래를 듣다가 나도 다시 보컬이나 배워볼까 싶은 생각도 했다. 참고로 후자는 집에 아무도 없을때 해봤는데 다시 한 번 나는 몸으로 할 수 있는 활동 중에서 노래를 제일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포시 접었다. 학교, 보컬, 운동에다 피아노와 과외, 주4일 불어학원까지 다닌 시절이 있었다니 그때의 내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땐 왜 이 간단한 것도 못할까 자책했지만 이제보니 그건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스케쥴이었다.


2. 저번주부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다. 근거없는 추측이었지만, 제목이 말도 안 되게 좋아서 책까지 좋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근.거.없.었.다.ㅋ 소설책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가 내 독서 철칙임에도 불구하고 인상깊은 구절이 나올때마다 책 모서리를 접다가 1부를 다 읽었어갈때 쯤 이 기세로 가다간 책 전체를 접어버리겠다 싶어서 포기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름을 많이 들었었고 마침 엄마 서재에 꽂혀 있어서 언젠가 한 번 읽어야겠다 싶으면서도, 오히려 너무 찬양 받아서 혼자 저항하고픈 그런 책이었다. 왜 진작에 안 읽었지 하는 생각보다 지금 이 나이에 이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년 전에 읽었더라면 이해를 못하고 '왠지 좋은거 같지만 왜 좋은진 모르겠고 그냥 남들에게 책 좀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해 제목을 외워둘' 책이 됐을거다. 엄마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사촌동생이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자 그저 소장용으로 한 권을 더 샀다.


3. 어제 정치경제번역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은밀한 칭찬을 받았다. 나는 과제 제출이 의무는 아니었지만 이번 학기에는 학문에 열을 올려보기로 했으므로 그냥 내버렸다. 교수님은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을 타박하진 않으시지만 막상 과제의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으시면 공개적으로 지적을 하시는, 대쪽 같은 면이 있으신 분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과제 제출 직전에 마지막까지 손을봤고 혹여나 지적 당할까 맘을 졸이며 제출했었다. 어제 출석을 부르시면서 내 이름을 부른 직후에, 머리는 여전히 출석부를 향한 채로 안경은 콧등까지 내려 눈동자만으로 날 응시하시며(교수님의 시그니처 표정이다) 고개를 여러번, 진중하게 끄덕이셨다. 어리둥절했지만 그 의미를 깨달은 후엔 수업 시간 2시간 내내 싱글벙글했다. 별 거 아닐 수 있고 어려운 과제도 아니었지만, 작은 과제를 해도 너무 많은 성의를 붓는 바람에 무슨 일이든 완성하기까지 남들보다 두세배 걸리는 나는 이런 칭찬이 너무 고맙다.


4. 어제 친부에게 몇 년 동안 성적 학대를 받아온 자매의 기사를 읽었다. 14년을 성폭행과 성추행에 시달린 언니는 결국 작년에 자살했고 3년 동안 성추행을 당한 동생은 일을 하며 홀어머니와 사는 중이다. 자매는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병원 놀이'라며 학대를 받았고 부모가 이혼하고 나서도 친부는 자매를 찾아와 괴롭혔다고 한다. 자살한 언니는 4살 때 친할머니에게 이 얘기를 했으나 할머니는 오히려 이 얘기를 밖에서 하면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고 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타계한 2010년에서야 친부의 성학대를 어머니에게 공개, 이후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나 작년 25살의 나이로 자살했다. 동생은 올해 24살로 한남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경찰에 구조되면서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친부는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동생이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구속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놀랐다는 대목을 읽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모녀는 시간이 많이 지났고 직접적 피해자인 언니가 자살해서 법적으로 처벌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또 어제 다른 사이트에서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강간범들에게 들었던 말을 써놓은 포스팅을 봤는데, 그 중에 "This is what all fathers do to their little girls... You know I love you"를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저버린 25살의 청춘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나. 지금까진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24살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악몽 속에서 살아야 하는걸까.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치사한 폭력. 


우리 사회는 갖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계층 간 '갑질'에 민감하면서, 너무 일상적으로 보도가 된 탓인지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갑질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듯하다. 원체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지 않는 내가 작년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댓글로 논쟁을 했다. 기사는 여고생이 문신을 하러 갔다가 시술자한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다뤘는데, 거기 댓글이 '그러게 왜 여고생이 문신을 하러 가냐'가 지배적인걸 보고 나는 경악했다. 그래서 나도 흥분한 나머지 '여기서 여고생이 문신을 왜 했냐는 얘기가 도대체 왜 나오냐. 그래봤자 머리에 허세 찬 고딩일텐데 문신을 하러 갔으니 성폭행 당해도 싸다는거냐'라고 써놨더니 누군가 나더러 너나 댓글들 제대로 읽으라고 누가 성폭행 당해도 싸댔냐 그냥 문신을 하러 간 여고생도 잘 한 게 없단거지 라고 반박하는 댓글을 보고 할 말이 없어졌다. '진짜 이 사람 답이 없다'는 생각 밖에 안 났지만 그렇게 얘기했다간 비웃음을 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지금도 저런 사람을 현실에서 만나면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득해야할지 모르겠다. 논리학을 배우지 않은게 천추의 한이 된 순간이었다. 


5. 문제의 게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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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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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4. 01:24 from 흘러가는대로


1. 1월 내내 글을 쓰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한가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멍-)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에 매일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한때 한참 글쓸땐 10명 넘기도 힘들엇는데 왜지..? 이유야 어찌됐든, 고맙습니다ㅠㅡㅠb !!!!!


3. 귀국 전, 여유를 가져보자 라고 다짐했던게 무색하게 결국 불어 학원, 인문학 스터디, 헬스장 3단 콤보를 완성하고야 말았습니다! 이 정도면 병도 불치병이라 할 수 있을듯. 게다가 시작한지 얼마 됐다고, 벌써 허우적대고 있다. 슬슬 지쳐가는 이 패턴에 끝을 맺어야할텐데.. 어디서부터 공략해야할지 모르겠다. 난 분명 욕심을 너무 부리다가 보아뱀마냥 배가 터져 죽게 될거야.


4. 여자의 '예뻐보이고 싶은' 욕구에 있어서, 자기표현과 허영의 경계선은 어딜까? 여자가 예쁜 옷을 입는거에 대해, 여자는 "그 옷이 나에게 잘 어울리고 그걸 입었을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라고 할 때, 혹자는 "그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들이 널 예쁘다고 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 아니냐. 그러므로 그건 허영이다"라고 할 수 있는걸까? 여자는 자신이 평소보다 예쁘다고 생각할 때 태도가 달라진다. 내 경우엔 안면근육의 움직임이 한결 여유로워지고 걸음걸이도 살짝 달라진다. 향수를 살짝 뿌린 날엔 예기치 않은 동작으로 향수 냄새가 퍼질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자의 예뻐지고픈 욕구는 본능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 본능이 우월한 숫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다르게 말해 자신을 꾸미려는 여성의 dna가 자연적 선택에 의해 전해 내려와 여성의 본능에 새겨진거라면, 예뻐지고픈 욕구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본능이 아니라 학습된 허영이 본능의 일부가 된 것이라고 해석해야할까? 시작이 학습적인 본능은 본능이라 할 수 없을까?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추가)

 

 

...!


5. 클래식 피아노에 입문했다. Glenn Gould. 어디까지 갈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선은 피아노 소리보단 허밍이 좋아서 듣는 중. 피아노로 들어가서 연주하는 사람인거 같다. 엄마가 피아노는 구조상 음이 분절될 수 밖에 없는데, 글렌 굴드의 연주는 끈김없이 물 흐르는 듯 해서 신기하다 했다. 관심이 가서(=잘생겨서) 조사를 좀 한 결과,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손수 제작한 의자를 들고 다니며 연주했는데 이 의자가 엄청나게 낮아서 거의 코를 건반 사이에 박고 연주를 했다 한다. 글렌 굴드를 십대 초반에 가르쳤던 스승은 그를 위해 위에서 아래로 피아노를 '치는' 손가락 연주법 대신 손가락을 건반에 댄 채 움직이며 '누르는' 연주법을 개발했고 그 뒤로도 글렌 굴드 본인이 계속 자신의 연주법을 연구했다 한다. 잘생긴 얼굴에다 엄청난 결벽증과 기인 행각으로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평론의 기대와 달리 라이브 연주는 8년 밖에 안했다. 이유는 콘서트장의 음향 기술이 녹음실의 음향 기술을 못 따라가는게 불만스러웠기 때문. 그래서 은퇴한 뒤론 주구장창 녹음만 해댔고, 최신 음향 기술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기이한 장인 정신이다. 



보조개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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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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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31. 02:16 from 흘러가는대로

1. 귀국 D+10


2. 아무리 돌아온지 얼마 안 됐다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되는건가 싶다. 


3. 지난 일주일은 약속과 외식의 향연이었다. 다들 한국 음식 그립지 않았냐며 하나같이 매운 메뉴를 골라주는데, 내 배도 오랫만에 먹는 매운 음식이 반가운지 매번 잊지 않고 요란한 환영식을 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X구멍에 불난다는 속담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돈도 너무 많이 나갔다. 사실 요즘 그닥 땡기는게 없다. 문득문득 생각나던 한국 음식도 막상 귀국하니 입 안에 넣어도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프랑스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요즘 프랑스 음식이 그리운거냐 하면 그렇진 않다. 그냥.. 입맛이 부재한 상태랄까. 친구 만나면 할 거 없으니 먹는 격이다. 어젠 ㅇㅈㅎ랑 만나서 오일파스타를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짜증이 났다. 친구가 기숙사 키친에서 올리브 오일에 마늘 대충 볶아 만들어줬던 그 스파게티가 훠얼씬 맛있었다. 암튼 그렇게 내 피같은 만원과 다른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었던 내 소중한 식사시간이 날아갔다. 식후 커피는 선택이 아닌 필수! 결제할때매다 비싸서 욕이 나올거 같다. 난 진짜 맥심이면 되는데.. 커피의 ㅋ도 모르는 저렴이 입맛으로 기본 오천원씩 내고 커피를 마시려니 약이 오른다.  요즘은 외식할 돈을 몇 달 모아서 차라리 코딱지만한 자취방을 구해 거기서 살며 친구들을 초대해 거기서 밥 먹고 커피 마시는게 돈이 덜 들겠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건 오반가..


+ 외식으로 쏟아부은 돈만큼 살이 쪘다. 이건 뭐 돈 내고 살 사는 격;;;;


4. 이제 슬슬 시차에 적응해간다. 오늘 목표 취침 시간은 2에이엠. 저번주까지 시차적응+짐 정리가 목표였지만 너무 성급한 목표였나보다ㅎㅎ;;; 그래도 요즘 새벽 3시 쯤엔 잠이 오고 짐의 오십프로였던 옷들을 정리했으니 그래도 많이 했다고 뿌듯해하기로 했다. 스스로 스트레스 주지 않기로 한 목표는 착실히 이행 중^,^ 그나저나 어서 신문 구독을 신청해야할텐데..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신문 구독은 아직 못했지만 대신 오늘 ㄹㅅㅇ이 재미있는 사이트를 추천해줬다. 뉴스퀘어 란 사이트로 ㄹㅅㅇ말론 스타트업이라는데, 중요한 이슈들을 맥락 설명까지 덧붙여 처음부터 그 이슈를 따라가지 않았던 사람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을 올려놓은 일종의 언론 사이트다. 다만 기존의 기사들을 그대로 갖고 오는게 아니라, 사이트 측에서 기사들을 이용해 직접 글을 쓰고 출처까지 올려놓는다. 이슈별로 글들이 정리되어 있어서 해당 사안에 대해 새로운 글이 떠도 타임라인같이 그 전 글들을 같은 창 안에 볼 수 있다. 이런 플랫폼 덕분에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도 그 전에 일어났던 일들과 전체적인 맥락을 한번에 읽을 수 있다. 이거에 대해선 따로 포스팅을 해야겠다. 인터넷 언론매체에 있어서 굉장히 유의미한 모델을 제시한 것 같다.


5. 헤드셋을 잃어버린 이후로 음악을 안 듣고 있다. 이제 그 빈 공간만큼 텍스트를 읽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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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극세사 스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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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3. 04:24 from 흘러가는대로

1. 귀국 완료


2. 출국 준비와 출국일에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요약하자면 1. 배낭 1개 + 짐가방 3개 (23kg, 12kg, 10kg) 2. 기관사의 운행 거부로 기차 취소됨 3. 1.로 인해 기차를 바꾸는 바람에 예약해뒀던 TGV 좌석표가 무용지물이 됨 = 복도에 쭈구려서 파리샤를드골까지 2시간을 감 4.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공항에 사람들이 겁나 많았음 5. 비행기 이륙 지연  


3. 한국이 어색해서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한때 친했지만 한동안 연락을 안 하다가 갑자기 만난 친구마냥 어색하다. 분명히 아는 풍경인데, 내가 있을 자리라는 느낌이 도무지 들질 않는다. 일 년도 안 나가 있었는데, 프랑스에 지나치게 적응을 잘 했던 것일까 생각해본다. 곧 좋아지겠지. 한때 두고 떠났던 이 모든 것들에 다시 익숙해지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지만. 


4.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한국으로 꼭 갖고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했던 가치는'여유'였다. 사실 이건 프랑스에서 배운 가치라기보다 내가 10개월 동안의 휴식기를 가지면서 익힌 거라 해야 맞을거 같다. 


한국에서의 삶은 항상 급박했다. 나는 항상 부족했고 항상 배우고 싶은게 너무 많았고 욕심도 많았고 또 자존심까지 세서 포기할 줄을 몰랐다. 기껏 대학교에 들어와서 야자와 학원에 묶였던 시간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는데,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얻은 자유를 도무지 어디다 써야할지 몰라했다. 결국 수학, 언어 학원에 등록하듯이 피아노, 재즈댄스, 알바, 헬스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로 내 일과표를 채워넣었고, 나중엔 호기롭게 벌려놓았던 일과표에게 오히려 주체성을 뺏겨버리고 말았다. 좋아서 시작했던 것들도 나중엔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내가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끝을 봐야 하는 일'이 되어 오히려 마음의 짐으로 변질되었다. 참고로 나는 휴학계를 내기 전 한 학기 동안, 18학점을 들었고 주5일 최소 3시간씩 프랑스어 학원에 다녔고 일주일에 한 번 보컬 수업(+연습),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수업, 일주일에 한 번 과외, 헬스를 했었다. 


프랑스에선 이 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딱히 프랑스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여유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우선 내가 프랑스에선 일을 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어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데 취미 강좌니 운동이니 할 겨를이 어딨는가. 어차피 일을 벌리지 못할 상황에 처해졌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여유로움=죄악'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좀 해방될 수 있었다. 결과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 실제로 얼굴이 펴지더라. 석회물로 매일 세수를 해댔는데도 피부가 좋아졌고 컨디셔너 없이 샴푸만 썼는데도 머릿결이 좋아졌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올 마음의 준비를 하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내 삶(공부/일)을 영위하면서도 최대한 여유로움을 지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 돌아가면 4학년이랍시고 취업 게시판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채워야할 부분이 뭘까 찾다하다보니 한국에 가서 해야할 리스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나는 영어 말하기 시험 점수가 없었고, 토익이 만료됐고, 엑셀을 다룰 줄 몰랐고 통계학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거기다 여기 와서 운동을 소홀리 해 자세가 안 좋아졌으니 돌아가자마자 요가를 시작해볼까 했고, 좀 더 재미있는 운동을 찾다가 폴 피트니스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한국가면 불어 유지하는 것도 문제일텐데 불어 학원도 알아봐야지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해야할 것들이 뿅뿅 나타났다. 


여유로움을 잃고 싶진 않은데, 정체되는 느낌도 싫었다. 그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사람 두 명에게 조언을 얻었는데, 한 명은 목표를 정하라 그랬다. 졸업 후에 취업을 할 건지, 그렇다면 어디에 취업을 할 건지, 아님 공부를 할 건지, 그렇다면 어느 나라로, 어느 전공으로 갈건지 이런걸 생각해보랬다. 원하는 걸 모두 건드려보기에 나는 시간이 별로 없단다. 그녀의 근거에 모두 동의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주장 자체는 분명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모르니 그냥 좋아보이는건 닥치는대로 해보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지인은 급한 일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라 했다. 다음에 할 수 있는건 다음으로 미루고 필요에 의해 지금 시작해야하는 것들만 고르란 말이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을땐 그냥 인정하고 포기하란다. 그 말을 들으니 막판에 하기 싫은걸 끌고 나가게 한 원동력을 결국 내 고집일 뿐이었단걸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추려낸 건

피아노, 달프 준비(독학), 불어 대화 수업(일주일에 한 번)    +엑셀(옵션)


적고보니 저것도 적진 않네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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